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화이트리스트 실행혐의와 위증죄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어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2018년 10월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화이트리스트 실행혐의와 위증죄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어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희훈

 
"힘도 없는 날 또 구속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짜놓은 적폐청산 게임판에 던져진 졸."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후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글 중 일부다. 허 전 행정관은 '박근혜 청와대'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상대로 각종 보수단체에 약 68억 원을 지원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1심에서 강요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 국가공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4월 법원이 보석을 허가해줬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서 재구속됐던 허 전 행정관은 지난 4월 열린 2심에서 1년으로 감형됐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징역 1년 6개월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본인을 구속한 게 억울했을까. 허 전 행정관이 자신의 재판을 두고 '적폐청산의 게임판'이라 표현하며 자신을 그저 일개 '졸'로 비유한 것이 꽤나 인상적이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화이트 리스트'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가 나왔으며, 전경련의 금고는 물론 국민의 혈세까지 술술 새어나간 것이 이미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나.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오히려 징역 1~2년이나 집행유예라는 판결은 사건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닐까. 지난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는 허 전 행정관이 관제데모를 직접, 수차례 지시했던 보수단체 고엽제전우회의 어제와 오늘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이미 알려진 사안이지만, 박근혜 정부와 관제데모 단체 간의 커넥션은 다시 봐도 울화통이 치밀기에 충분했다.

고엽제전후회 전 간부가 폭로에 나선 사람

"역대 대통령 중에 박근혜 대통령만큼 깨끗하고 개혁적 사고로 밤잠을 자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 발전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대통령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

지난 2015년 10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지지 집회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한 말이다. 당시 5천여 명이 참석한 이 집회를 고엽제전우회가 주도했고, 군복을 입은 전우회 회원들은 집회 현수막 설치를 막는 서울역사 직원들을 막무가내로 폭행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김무성 "박 대통령, 밤낮 나라발전 위해 노심초사" http://omn.kr/fggm).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같은 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장에서도, 국정교과서 강행을 반대하는 학술대회장에서도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은 폭언과 폭력을 불사하며 정권 호위에 여념이 없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이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은 바로 박근혜 청와대였다.

<스트레이트>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고엽제 전우회 행동대장으로 갖가지 친정부 집회를 이끌었다는 고엽제전우회 이철호 전 조직부장의 수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관제데모의 A부터 Z까지 고스란히 담긴 그 수첩 속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허 전 행정관이었다.

"이른바 관제 집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의 기록입니다. 2014년 1월, '파란집 행정관 본회방문'이라는 메모. 몇 장을 넘기자, '허현준 행정관 본부 방문, 사총'이라는 글귀가 또렷하게 써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이 고엽제 전우회 사무실에 직접 찾아와 사무총장을 만났다는 뜻." (MBC 박진준 기자)

"엄청 왔다 갔잖아, 2~3일에 한 번 왔다 어쩔 때는 이틀 만에도 오고"라는 이 전 조직부장의 증언에서, 허 전 행정관이 관제데모에 고엽제전우회를 얼마나 이용했는지, 또 직접 만나 집회를 지시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직접 지시를 내리면 사무총장 등 고엽제전우회의 간부가 시나리오를 짜고, 일사분란하게 회원들이 동원돼 일종의 '쇼'가 벌어진 셈.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스트레이트>는 이 모든 시나리오와 지시한 단체, 인물 등이 수첩 속에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허 행정관은 수시로 당시 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과 전화 협의를 했고, 사무총장이 청와대로 찾아간 일도 수차례였다고 한다. 청와대뿐만 아니었다. 방송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 역시 고엽제전우회를 정권비호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스트레이트>는 "2014년부터 3년간 기록된 것만 국정원 직원 20차례, 기무사 직원은 11차례 고엽제 전우회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거간꾼 노릇한 청와대 행정관, 정권 비호 아래 특혜 수익사업 벌인 관변단체
 
"근데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박근혜 정부 내내 계속 됐다는 얘기인데요. 이거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힘든 일 아닙니까." (진행자 김의성)

"사실 저분들 움직이는 게 돈입니다. 그 집회가 다 돈이고요. 의자도 있고, 음향기기, 그리고 음료수도 먹어야죠, 밥도 먹어야 하죠, 차도 불러야 하죠. 그런데 그 돈을 누가 댔겠습니까. 그 돈의 출처를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진행자 주진우)

 
방송에서는 군복을 입은 중장년 남성들이 한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힘을 쓰게 하기 위해서 돈이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전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 돈은 전경련에서 나왔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4년 1월,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김완표 전무의 주선으로 청와대 신동철 전 국민소통 비서관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의 비밀회동이 이뤄졌고, 이 자리에서 전경련을 통한 보수단체 자금지원이 결정됐다.

"이렇게 2014년부터 2016년 2월까지 전경련은 이 단체에 5억 6천여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고엽제 전우회가 보훈처에 보고한 후원금 지출 내역.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 한창이었던 2014년 5월, 고엽제 전우회는 전경련 지원금 가운데 2천여만 원을 맞불 집회에 썼습니다. 2015년 5월 입금된 2천2백여만 원은 막 출범한 세월호 특조위를 공격하는 신문 광고비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MBC 박진준 기자)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전경련과 고엽제 전우회 사이에서, 허 전 행정관은 '돈줄'과 '행동대원들'을 이어주고 어르고 달래는 거간꾼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행정관은 전경련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고엽제전우회를 꼼꼼히 챙기라고 전화를 하기도 하고, 고엽제전우회 측엔 돈이 더 나올 거라 귀띔도 했다고 한다.

박근혜 청와대가 오로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인 '바닥'이 이 정도였다. 전경련의 자금 유입은 꽤나 알려진 사실일 터. 여기서 더 나아가 고엽제전우회 간부들은 이러한 정군의 비호를 틈타 각종 특혜와 이권을 챙겼다. 청와대를 등에 업은 고엽제전우회를 비호해 준 기관은 다름 아닌 박승훈 보훈처장이 활약(?)했던 국가보훈처였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고엽제전우회는 뜻밖에도 경기도 여주시의 남한강 일대 골재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단체 성격과는 전혀 안 맞는, 4대강에서 파낸 모래와 자갈 등을 판매하는 사업. 고엽제전우회의 집회 동원이 급증했던 2015년, 고엽제 전우회는 마침내 남한강 골재사업권을 따냈습니다. 골재사업은 100억 원 가까운 수익을 이 단체에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상한 특혜는 또 있었습니다. 2013년에 주택 사업을 하겠다며 위례 신도시에 축구장 6개 규모인 약 4만2천㎡의 땅을 LH로부터 분양받은 겁니다. 박승춘 당시 보훈처장이 추천서까지 써준 덕분이었습니다. 고엽제 전우회는 이후 분양 사업권을 중소 건설사에 넘겼고, 이 과정에서 회장단 3명은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MBC 박진준 기자)


고엽제전우회의 만행,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실로 충격적이다. 고엽제전우회가 단체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은 수익사업을 정권 차원의 비호 아래 보훈처와 감사원의 느슨한 감시 아래 공공연하게 펼쳐왔다는 내용이 방송에서 전해졌다. 고엽제전우회가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된 '엄마부대', '어버이연합'보다 관제데모에 월등히 참여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수익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고엽제전우회의 이러한 질주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야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말 보훈처의 감사에서 적발된 전우회의 과거 미승인 수익사업 목록. 의료기기, 풋살장 임대, 동영상 광고업까지 진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보훈처의 사전 승인 없이 이뤄진 문어발식 불법 수익사업입니다. 고엽제 전우회 측은 이들 사업으로 2014년부터 3년 동안 70억 원 정도를 챙겼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를 발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정부의 묵인, 방조가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간부들이 이렇게 수익을 챙기는 사이, 아스팔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세월호 유가족을, 일반 시민들을, 또 여주시청 공무원을 폭행하고 욕설을 퍼부었던 일반 회원들은 수익을 나눠갖기는커녕 수익사업의 정체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현재 회원들이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회를 조직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스트레이트>에 제보를 한 이유일 것이다.

"지금 알 수가 없는 거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얼마를 수익사업을 하는지도 아무도 몰랐으니까. (이 조직에서 얼마에 수익 사업을 하고 있고, 몇 개 사업장이 있는지 누구만 알아요?) 그러니까 그 회장단들." (이철호 고엽제 전우회 전 조직부장)

"이 사업을 해서 돈이 생기면 회원들한테는 단 10원도 안 가고 회원들 동원만 시켜서 사업이 성사가 되면 회원들은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뭐 복지라든지 혜택은 전혀 10원도 없고 몇 놈들이 전부 다 이걸 착취한 겁니다." (배성환 고엽제 전우회 적폐청산위원장)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10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관제데모 행동대장의 비밀'편 중 한 장면.ⓒ MBC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자, '화이트 리스트'라 일컬어지는 관제데모를 만들어내고 조장한 이들의 형량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최소한 특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고엽제전우회의 수익사업 과정에서 불법과 위법은 없었는지 진상이 드러나거나, 또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이들이 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불투명한 것 아닌가.

과연 <스트레이트>의 보도를 접한 국민들 중 고엽제전우회와 같은 보수단체와 보수단체 간부들에게 혈세가 수십억 쓰인 것을 두둔할 이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건, 고엽제전우회의 '적폐청산'이 요원해 보이는 것 만큼이나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정권 출범 직후부터 일관되게 공격을 받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의 범죄를 스스로 입증해내야 하는 난처한 상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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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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