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웃집 토토로> 포스터.

영화 <이웃집 토토로> 포스터.ⓒ 대원미디어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였을 때, 그러니까 20대 중반쯤 아내가 몇 번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스무 살 때까진 동물과 얘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훨씬 어렸을 때는 남들 눈엔 안 보이는 걸 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난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느끼게 된다. 때론 귀여운 느낌으로, 때론 뼈저리게. 동심을 느낄 때면 행복에 졌지만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생각하면 슬프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비단 나나 아내뿐만은 아닐 테다. 만화의 천국 일본에서도 굴지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해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사실적 판타지를 선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랬나 보다. 50세에 가까운 나이, 1988년에 <이웃집 토토로> 같은 작품을 내놓은 걸 보니. 자그마치 30년이 넘은 이 작품, 작년 30주년을 맞이해 중국에서 리마스터링으로 최초 개봉을 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가져와 재개봉을 했다. 한국에서도 최초 개봉은 2001년으로, 비로소 일본과의 문화 교류가 시작되어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2번째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하고 내년쯤 복귀한다고 한다. 그 사이에 국내에 그의 명작들이 재개봉, 최초개봉했다. 201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재개봉, 2015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재개봉, 2017년 <루팡 3세> 최초개봉, 2019년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재개봉 등 그야말로 '러시'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그의 명작들이 수두룩한 바, 개봉 러시는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토토로의 등장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스코트 토토로.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스코트 토토로.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이웃집 토토로>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숙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1985년에 세워진 지브리 스튜디오로서는 불과 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토토로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스코트가 되어 지금까지 로고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이자 캐릭터로 군림하고 있다. 

1950년대 일본, 사츠키와 메이는 아빠와 함께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온다.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가 퇴원하면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자 이사를 온 배경이 있지만, 아이들은 처음 보는 환상적인 환경이 그저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는 무수히 많은 검댕이들을 발견하고, 숲에서는 그림책에 나오는 토토로들을 발견한다. 

이웃집 할머니는 검댕이의 존재를 안다. 아무도 없는 낡은 집을 먼지투성이로 만드는 존재들. 할머니는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어렸을 땐 검댕이가 보였다며  아이들에게 맞장구쳐준다. 아이들은 검댕이가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섭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음날 사츠키는 학교에 가고 메이는 혼자 놀다가 도토리를 흘리는 꼬마 토토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큰 토토로를 만나는 메이, 처음 보는 낯설고 큰 괴생명체이지만 전혀 무섭지 않고 그러기는커녕 토토로의 품이 한없이 포근할 뿐이다. 다음 날, 혼자 있기 싫은 메이는 사츠키의 학교에 찾아오고 함께 집으로 향한다. 유난히 비는 쏟아지던 날 이들 앞에 큰 토토로가 나타나고 이때부터 꿈같은 환상적인 경험이 시작된다. 

더불어 사는 삶의 발로
 
 단순히 아이들 동심의 발로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의 발로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단순히 아이들 동심의 발로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의 발로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어른 아닌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고 아이들하고만 얘기를 하는, 오직 아이들만의 환상적인 경험을 다룬 이야기들은 많다. 비단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특출난 게 아닌 것이다. 그런 류의 많은 작품들에선 어른들로 대변되는 '적'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걸 무시하고 부러워하고 없애버리려 하던가 이용하려 하던가 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웃집 토토로>에선 적이 없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의 토착 사상을 가져와, 어른과 노인도 아이들의 허무맹랑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이들 눈엔 그런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라면서 아이들의 말에 지지해준다.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한 면이라고 말이다. 

토토로는 단순히 아이들만의 동심이 발로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큰 틀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발로된 결과물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는 영혼 세계까지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이웃집 토토로>의 현실적이지만 판타지적이기도 성격들은 앞으로 계속될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을 보여준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을 보여준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이웃집 토토로>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완벽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그곳엔 아빠만 있을 뿐 엄마가 없다. 10살 사츠키와 4살 메이에게 물론 아빠도 꼭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존재가 엄마일 수 있다. 근데 엄마가 아파서 거의 볼 수가 없으니 아이들의 마음엔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 불안이 항시 자리 잡고 있다. 불안으로 인한 상처와 그리고 오묘한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인한 쾌감이 공존한다.

이 상반된 두 감정은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감정일 것이다. 한편, 호기심에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아이들의 긍정적 경험이 담겨 있다. 그건 세계를 이루는 기본에 해당되는데, 누구나 무엇이든 이 기본을 거치게 되어 있기에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반면, 불안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아이들의 부정적 경험이 담겨 있다. 그건 세계를 이루는 변칙에 해당되는데,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이 변칙이 들이닥칠지 몰라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고 하겠다. 영화는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믿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를 이루는 또 다른 무엇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것들은 무섭지 않고 나쁘지도 않으며 그저 우리처럼 살아갈 뿐이라는 걸. 몸과 마음이 풍성해지는 걸 느낀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얼마나 든든한가 말이다.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건, 그 얼마나 꿈만 같은 일인가. 다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본 적이 없으니 돌아갈 때도 없겠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것일까. 꿈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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