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 독>(1999) 스틸 컷

영화 <고스트 독>(1999) 스틸 컷ⓒ 아티잔 영화사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건 동물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능을 넘어 갈망의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느낌을 불가항력적으로 받는다. 물론 한국에서 그렇다. 대체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저리도 행복을 갈구하는 걸까. 가끔은 행복해지기 위해 저런 일까지 해야 했던 것인지 고민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나도 행복을 갈망했던 적이 있었다. 작년 일이었다. 편입학한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했고 연애도 잘 되지 않았다.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달고 살았다. 다음 학기에는 소모임이라도 들어가 인맥을 쌓자, 이제 그만 '아싸'에서 벗어나 '인싸'로 거듭되자! 나는 이를 갈았다. 2학기가 되자마자 개강총회에 달려가 영화제작팀으로 들어갔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나는 이후에도 고시원에 기생하는 영화광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로 남았다.
 
아르바이트를 다녀와서 노트북을 열었다. 감독이 회의에서 강조한 레퍼런스 영화들이 빼곡했다. 이미 봤던 영화들과 처음 보는 영화들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영화를 먼저 볼까. 나는 감독이나 배우의 필모그래피와는 상관없이 스틸 컷이 매력있는 영화를 고르는 버릇이 있다. 내가 고른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였다.
 
고작 다섯 대의 카메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 앞에 있는 커피와 담배가 열 한 번의 짧은 호흡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에 나는 몰입됐다. 이상한 영화였다. 별 다른 의미 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괴상한 템포 앞에서 비흡연자였던 나조차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짐 자무쉬 감독에게 매료되었다.
 
 
 영화 <커피와 담배>(2003)스틸컷.

영화 <커피와 담배>(2003)스틸컷.ⓒ Asmic Ace

 

짐 자무쉬 감독은 80년대 미국 인디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를 가진 능력에 비해 부끄러움이 많았던 남자로 기억한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시대를 공유했던 감독들(이를테면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과 짐 자무쉬를 비교하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는 자국보다 유럽에서 인지도가 더 높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는 영화 뿐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남자다. 실제로 청소년기에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고스트 독>(1999) 촬영에서는 RZA의 힙합을 직접 믹스해 사운드 트랙으로 삽입하며 재능을 뽐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관심을 가장 많이 투영시킨 영화는 <고스트 독>, 하다못해 <이어 오브 더 호스>(1997)도 아니었다. 바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였다.
 
대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는 톰 히들스턴이 나온다. 톰 히들스턴은 캐릭터가 좋은 배우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연기한 록키를 통해 특유의 자조와 창백함마저 그에게는 마력으로 발휘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그는 수천 년을 살아온 창백한 뱀파이어 뮤지션 '아담'이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담을 이끌 뿐 아니라 그들 삶의 당위를 찾아내는 건 '이브' 틸다 스윈튼이었다.
 
신기한 배우다. 이미 널리 알려진 성별을 가늠하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부터, 작품마다 변하는 눈빛과 어조는 도저히 이 배우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한지 의문을 품게 한다. 매력을 넘어 고혹적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비정상적으로 큰 동공을 영화 내내 보여주는데, 이보다 더 뱀파이어 '백작'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
 
이 커플은 수십세기를 살아왔다. 멀리는 소크라테스부터 가깝게는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까지. 인류의 일원으로 세상의 기록들을 모조리 경험한 셈이다. 어느 날 그들이 '좀비'라 부르는 인간들에게서 아담이 염증를 느끼고 이를 보다 못한 연인 이브가 모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다.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 하지만 갑자기 이브의 동생 애바가 이들의 꿈에 나타나고, 아담은 8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불안을 느낀다.
 
아담과 이브는 뱀파이어지만 철저히 현대에 적응해서 생활한다. 이브는 아이폰을 사용하고 정체를 감추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여권과 이름을 사용한다. 아담은 뮤지션으로써 나름대로 경제활동을 이어나간다. 촌스러운 구식인 흡혈보다는 RH-O형 피를 마시는 걸 선호한다. '생계형 뱀파이어'같이 이들의 생활은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 단지 밤낮이 바뀌었을 뿐이다. 현대적 뱀파이어인 이브는 불평을 털어놓는 아담에게 현실적인 조언까지 해준다.

"세상 문제에 집착하면 자기만 고달프잖아. 차라리 그 시간에 건설적인 걸 해봐."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스틸컷.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스틸컷.ⓒ Sony Pictures Classic

 

현실적인 이브에 비해 아담의 물건이나 악기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전으로 시간대가 멈춰있다. 그의 기타는 영화에서 거의 홈쇼핑처럼 소개된다. 수포로, 핵스트롬, 실버스톤, 그레치 등 1960년대에서 70년대 제작된 기타들부터 하다못해 1905년 산 깁슨L2까지. 나는 이 장면들이 짐 자무쉬가 자신의 음악적 관심을 자랑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주의 감독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아닐까. 짐 자무쉬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이 같은 '덕후'영화 한두 편을 더 추가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피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담과 이브는 거의 죽어가던 상황에서 어느 커플을 발견한다. 그들처럼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그러다 아담과 이브는 다른 생각을 한다.

"원거리 유령작용이라는 거 알아? 분자가 분리되서 두개가 되고 그 둘이 서로 떨어져 우주 반대편에 있어도 한쪽이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한쪽도 영향을 받는다는 거지."

결국 그들은 커플을 흡혈한다.
 
타인에 대한 착취를 전제로 보존되는 누군가의 행복이란 얼마나 불안정할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역설적이다. 아담과 이브가 피를 구매해서 마신 것은 그들이 뱀파이어로서의 폭력성을 버려서가 아니었다. 그저 스타일의 문제였던 것이다. 폭력과 갈취, 협박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 뱀파이어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영화의 제목을 아담과 이브가 내뱉는 자기변명으로 결론내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들은 흡혈을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는 누군가를 흡혈해야만 했다는 논리.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논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마냥 뱀파이어의 논리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식당출입을 막는 어느 커플의 고함이나, 동성애 커플에게 키스를 강권한 뒤 행사된 폭행 모두 자신들의 행복을 우선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도 그들과 같이 이기적으로 굴었어야 했을까. 작년의 나에게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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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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