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국들이 가끔 수준이 낮은 방송을 제작하거나 같은 콘텐츠의 방송을 여러 방송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줄 때 이에 지친 시청자들은 '전파낭비'라며 방송국을 비판하곤 한다. 실제로 방송국들은 질 좋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해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가 2년에 한 번 '전파낭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시기도 있다. 바로 동·하계를 합쳐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올림픽 시즌이다.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감동적인 순간이나 세계적으로 관심이 가는 종목의 결승전(예를 들면 육상 남자 100m)이 열리는 시간에는 지상파 3사가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방송해도 시청자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편이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개최지가 결정되지 않은 오는 2026년 동계 올림픽부터는 지상파 3사가 같은 경기를 동시에 중계하는 장면을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지난 4일(한국시각)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4개 동·하계 올림픽의 중계권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올림픽 중계를 도맡아 오던 지상파 방송국들은 곧바로 성명서를 내고 JTBC의 중계권 독점 확보에 크게 반발했다.

지상파 방송국들은 시청자들의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편적 시청권'이란 큰 스포츠 대회 등을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다. 방송법에서는 월드컵, 올림픽 등의 대형 스포츠 행사를 전 국민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관해 JTBC 측은 "JTBC는 인터넷·모바일을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어 사실상 전국민을 가시청 가구로 확보하고 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화려한 폐막식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공연 모습(자료사진).ⓒ 이희훈

 
JTBC의 독점중계 발표 전에는 지상파 3사의 '코리아풀' 어땠나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JTBC의 저주'라는 우스갯소리가 꽤 유명하다(물론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만들어진, 과학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JTBC의 저주'는 지난 1월 신태용 해설위원이 출연한 아시안컵 홍보 영상에도 "JTBC가 중계하면 맨날 진다며?"라는 멘트가 나왔을 정도로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특정 방송국이 중계한 대회의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그 방송국의 중계 자격이 박탈되는 것도 아니고 JTBC의 중계로 인해 한국의 경기력이 나빠진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JTBC의 저주' 때문에 JTBC가 국제대회 중계에 참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상파 방송국과의 경쟁에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낸 JTBC로 인해 다른 방송국에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코리아 풀'이라고 불리는 해외 스포츠 중계권은 KBS, MBC, SBS 지상파 3사의 협력체가 도맡아 왔다. 하지만 JTBC는 그 동안 단독입찰했던 '코리아풀'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JTBC의 손을 들어 중계권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JTBC의 올림픽 중계권 확보 소식이 전해지자 지상파 3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 방송협회(회장 박정훈 SBS사장)는 곧바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일제히 JTBC를 비판했다. 

한국방송협회의 주장은 JTBC의 단독중계로 인해 무료 직접수신을 택하고 있는 국민들이 올림픽 중계로부터 배제되며 '보편적 시청권'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2007년 개정된 방송법에서 도입된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 행사는 모든 국민들이 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상파3사의 합동 협력체인 '코리안풀'은 JTBC의 독점 시도가 있기 전에도 스스로 합의한 '보편적 시청권'을 그리 잘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우루과이와의 16강 경기가 열린 26일 밤 서울광장에 모인 붉은악마들이 경기가 시작되자 대형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우루과이와의 16강 경기가 열린 2010년 6월 26일 밤 서울광장에 모인 붉은악마들이 경기가 시작되자 대형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유성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0년 SBS의 밴쿠버 동계 올림픽과 남아공월드컵 독점중계였다. 당시 SBS는 '코리아풀' 결성 직후인 2006년6월 IOC를 방문해 밴쿠버 올릭픽 중계 계약을 맺었고 월드컵 중계권을 가지고 있던 스포츠 마케팅 기업 IB스포츠와 단독 계약을 맺으며 많은 비판받은 바 있다. 당시 SBS는 한국 선수단이 밴쿠버 올림픽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월드컵에서도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하면서 큰 유·무형의 이득을 취했다. 

물론 SBS의 단독중계에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전 종목을 SBS 소속, 혹은 SBS와 계약한 중계진들이 소화하다 보니 전문성이나 경험 부족이 드러났다. 특히 동계 올림픽의 경우 한국 선수들 경기 위주로 중계가 집중되다 보니 밴쿠버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다른 스타 선수들의 활약이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또한 SBS 내부적으로도 기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잦은 결방으로 광고수익에도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스포츠 중계 노하우 부족한 JTBC, 올림픽 단독 중계 괜찮을까

JTBC는 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 SKY캐슬 >의 시청률이 20%를 훌쩍 넘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채널이 됐다. 하지만 JTBC는 케이블이나 위성, IPTV 같은 유료방송 서비스에 가입한 가구만 시청할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이다. 아무리 유료방송 가입률이 점점 높아진다곤 하지만 분명 올림픽에서 소외되는 시청층이 나올 수도 있다. 방송협회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시청권'이 훼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계의 질 저하'도 스포츠 팬들이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수십 년의 올림픽 중계를 거치면서 각자 구축해 놓은 자신들만의 중계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인기 종목은 물론 비인기 종목 역시 자사 케이블 채널을 통해 꾸준히 중계하며 중계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인기 캐스터와 해설위원들 역시 대부분 지상파(혹은 지상파 산하 케이블 채널)에 모여있다. 

하지만 JTBC의 경우 WBC와 아시안컵, 그리고 LPGA 투어를 단독중계하는 골프 채널 정도를 제외하면 스포츠 중계의 노하우가 오래 쌓인 편은 아니다. 또한 2017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과 2019 아시안컵의 메인 캐스터가 모두 같은 아나운서였을 정도로 종목별 전문성도 높지 않은 편이다. JTBC 역시 지상파처럼 자사 스포츠 채널(JTBC3 FOX스포츠)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계하는 종목은 K리그와 분데스리가, 테니스 정도로 분야가 다소 한정돼 있다. 

물론 JTBC가 올림픽을 단독 중계하기까지는 아직 6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다. JTBC의 올림픽 단독중계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지상파 방송국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JTBC의 갑작스러운 올림픽 중계권 독점 발표는 지상파 방송국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혼란을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사 간의 경쟁으로 인해 유료방송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올림픽을 즐길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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