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공주 너 이리와봐라."

부산에서 올라온 시어머니는 며느리 혜상을 쥐잡듯 잡았다. 호통을 치고, 지적하며 훈계했다. 호칭만 아리따운 '공주'였을 뿐, 표정과 말투는 '하녀'를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나 대신) 내 아들의 밥을 챙겨주고 시중을 드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며느리가) 내 아들 굶길까봐'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는 시어머니의 말은 이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지난 번 방문 때처럼) 가스레인지 청소 상태를 확인했고, 냉장고 내부를 살폈다. 시어머니는 과자와 탄산음료가 가득 쌓여있는 것에 못마땅해 하며 그 책임을 며느리에게 돌렸다. 정작 그 과자와 탄산음료를 먹는 건 자신의 아들인데 말이다. 훈계를 한다면 응당 아들에게 해야 마땅할 텐데, 이상하게도 화살은 며느리에게 향했다.

"네가 밥을 안 챙겨줘서 그렇잖아."
"네가 관리를 잘 안 해서 그런 거야."


혜상은 익숙한듯 멋쩍은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남편 규택은 그 부당한 상황에서 침묵했다. 규택은 평소에는 요리뿐만 아니라 집안일에 적극적이지만, 시어머니가 오기만 하면 아예 손을 떼고 거실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걸까? '아들이 주방에 들어가면 엄마가 속상해 할 것 같아서'란다. 그뿐일까? 그러면서 주방 구조에 익숙지 않아 허둥지둥하는 아내에게 '자가 어떻게 알겠노'라며 핀잔을 주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내와 어머니 사이, 방관자가 돼버린 규택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시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미처 치우지 못한 이불이 남아있는 걸 확인하고 또 다시 혜상을 호출했다. 그리고 왜 따로 자냐고 따져 물었다. 왜 아들에게 따져 묻지 않고, 며느리에게 해명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혜상은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빛에 쩔쩔매며 규택의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시어머니는 천상배필은 코골이가 자장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따로 자지 말라'며 간섭했다. 

보다못한 MC 권오중이 남편 규택에게 "아내가 계속 공격을 당하고 있잖아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라고 물었다. 규택은 대답은 한심스러웠다. "그 사이에 제가 끼어들면 오히려 어머니가 더 크게 혼내지 않을까 해서..." 흔히 기혼자들은 남편을 '중간자'라 해서 시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잘못된 훈수를 두곤 하는데, 규택은 그마저도 포기한 채 아예 '방관자'가 돼 있었다. 

규택이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외면과 침묵을 선택하자, 혜상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다. 시어머니가 방문할 때마다 죄인이 된양 어쩔 줄 몰라 해야 했다. 남편은 정말 남(의)편이었다.

미디어 평론가 김선영은 "한 번은 일을 크게 만드실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이 상황이 부당하다는 걸 크게 알리셔야 시어머니도 '그게 잘못됐구나'라고 아시죠"라고 조언했다. 과연 규택은 일을 크게 만들 수 있을까?

남편은 중간자가 아닌 당사자가 돼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여기에서 일을 크게 만들라는 말은 부모와 대판 싸우라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리 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시어머니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넘어가라는 의미다. 그 역할을 며느리가 수행하는 건 버겁다. 그건 아들의 몫이다. 그때 아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에서 그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간자가 아니라, 나와 아내의 결혼 생활에 과도하게 참견하는 엄마를 저지하는 당사자여야 한다. 

혜상은 앞으로 자신의 남편이 오정태처럼 (시어머니가 있어도) 집안일을 함께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실제로 오정태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통해 가장 많이 변화한 출연자로 손꼽힌다. 한때 그도 '중간자'인 척 했고, 아내를 고립시켰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학습효과로 오정태는 갈등 해결에 앞장서는 당사자가 됐다.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백아영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부 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수'에 가깝다. 이 땅의 며느리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때 며느리들이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중간자' 혹은 '방관자'가 돼 자신을 외면하는 남편이다. 그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 심리적인 지지선을 잃은 상실감이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규택과 같이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남성들이 소수라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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