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 권성민 PD 제공

 
지난 5월 19일부터 4주간 매주 일요일 저녁 방송되는 파일럿 방송 <가시나들>은 잔잔한 감동을 주며 '힐링 예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가시나들>은 인생은 진작 마스터했지만 한글을 배우고 싶은 할머니들, 그리고 한글은 대략 마스터했지만 인생을 배우고 싶은 선생님-짝꿍들의 동고동락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시나들> 기획과 제작 과정이 궁금해 <가시나들>로 첫 단독 연출을 맡은 권성민 MBC PD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권 PD와 나눈 일문일답.

"<가시나들> 반응 좋은데 시청률은... 정규편성 바라지만 걱정도 든다"

- 파일럿 프로그램인 <가시나들> 단독 연출은 처음이시잖아요. 부담도 됐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걸 여러 가지 책임지고 할 수 있어서, 단독 연출에 더 좋은 점이 많아요. 하지만 부담스러웠던 건 많은 스태프를 저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더라고요. 특히 <가시나들> 같은 경우 같이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나 출연자들이 다 너무 애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한 것을 잘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은 좋아요. 언론에서도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많이 칭찬해 주시고, 시청자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동시간대 워낙 '센'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청률이 잘 안 나오고... 정규 편성을 받길 바라지만 그런 부분이 걱정되긴 합니다."

-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은데요. 예능으로 제작할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칠곡 가시나들> 영향을 받은 것이라기보다 사실 <칠곡 가시나들> 제작사인 단유필름이 저희 MBC의 외주제작사예요. 예능 프로그램의 실질적 제작은 MBC가 하지만, 그쪽과 원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거죠.

원래 제가 노년층, 특히 한글 배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관심 있었고, 개인적으로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님과 아는 사이입니다. 영화 개봉 전에 이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걸 들었어요. 저도 같은 소재로 예능을 해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만들고 계신다면 소재가 겹치니까... 차라리 시리즈처럼 공동 작업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씀드렸어요. 김재환 감독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셔서 잘 진행된 거예요."
 
 <가시나들>을 연출한 권성민 MBC PD

<가시나들>을 연출한 권성민 MBC PD ⓒ 이영광

 
- 한글 배우는 할머니를 소재로 예능을 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노인 문맹률이 워낙 높으니, 성인들의 문예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에서 5~6년 전부터 성인문해학교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여기서 처음 한글을 배운 노년층들이 쓴 글들이 인터넷에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거든요. 저도 그런 글을 봤어요. 몇 글자 안 되는 글씨 속에 많은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원래 노년층이 나오는 예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제 예능을 기획할 기회가 되어서 그런 아이템을 시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할머니들과 첫 만남은 어땠나요?
"처음 만난 건 1월 쯤인데, 함양에 내려가서 거기 있는 성인문해학교 다니시는 할머니를 만났어요. 젊은 사람이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반가워하세요. 처음 뵙는 분들인데도 대화를 시작하면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이 하세요. 저도 어릴 적에 시골에서 할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이 있어요. 하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오랫동안 그런 걸 잊고 지냈죠. 그러다보니 (할머니들과의 대화가) 반갑고, 할머니들이 너무 반가워 해주시니까...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촬영하기 위해 한 노력들

- 노년층이 한글을 배우는 학교가 함양에만 있는 건 아닐 텐데, 굳이 함양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성인문해학교가 어떤지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서 보시면 알 수 있는데요. 마을 회관 같은 조그마한 공간에서 할머니들 7~8명이 소반 펼쳐 놓고 공부하시는 게 보편적인 형태예요.

그런데 함양은 독특하게 사립학교에서 공간을 내주셨어요. 거기선 중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데, 다른 층에 할머니들이 공부하는 학급이 두 개 있어요. 한 학급에 20명 정도 계시는 것 같아요. 대규모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거기서 공부하는 할머니가 많다 보니 저희 섭외 폭도 넓었고요. 학교라는 공간이 있다 보니 촬영하기도 수월할 것 같았어요. 학교가 너무 예뻐요."

- 할머니들에게 처음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어요?
"기본적으로 신기해하셨어요. 저희가 처음 갔을 땐 방송 촬영하러 왔다고 하지 않고 매주 찾아뵙고 말씀 나누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부드럽게 흘러갔던 거 같아요. 생각하시는 것처럼 가자마자 촬영한 게 아니라서, 할머니들도 놀라거나 당황스러워 한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 알고 지내다 보니 조금 더 자연스럽게 진행한 것 같아요."

- 제작진이 방송 중 수업에 쓰일 한글 교과서를 집필했다고 들었어요.
"고민할 부분이 글씨 크기였어요. 엄청 크게 했어요. 저희끼리 얘기한 게 '이렇게 크게 만들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크게 만들자'였어요. 글씨가 커서 시원시원 하니 할머니들도 좋아하셨고, 표지 그림은 제가 그렸죠. 기존 교과서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텐데, 저희는 짧은 방송 기간 안에 최대한 할머니들이 듣고 싶은 단어를 보게 하기 위해서 기존 교과서를 참고하고 방송용(교과서)으로 만들었어요."

- 할머니들이 아예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표현하고 쓰시는 걸 담고 싶었기 때문에 아예 '가나다'를 모르는 분과 촬영을 하면,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이 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에 어느 정도 학교를 다니신 분 중에서 섭외를 했고요. 조금 틀리고 어려워하시긴 하셔도 기본적으로 조금 쓸 수 있는 분들을 섭외했죠. 저희 촬영 기간이 길었다면 아예 쓰기 어려운 상태에서 조금씩 써나가시는 걸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았을 텐데, 파일럿이다 보니 기간이 짧아서 그랬어요."
 
 <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 권성민 PD 제공

 
- 배우 문소리씨와 육중완씨 그리고 아이돌 스타들을 할머니들의 짝꿍으로 섭외했잖아요. 섭외에 관한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할머니들은 방송이나 카메라를 낯설어하는 분들이에요. 최대한 그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저희 출연진들도 다른 방송 활동은 하더라도 예능에 많이 나온 적 없는 분들이에요. 세팅된 상태에서 예능 방송을 잘 하시는 분들과 촬영하다 보면 할머니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보다는 저희가 구성하고 세팅한 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였어요. 그래서 예능에 출연한 적 없는 연예인 위주로 섭외했고요.

또 하나는 할머니와 소통하고 할머니와 관계를 맺는 게 익숙한 사람 아니면 쉽지 않아요. 예의 갖추고 하다 보면 서먹서먹해질 수 있고... 할머니들은 저희와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서 할머니와 유대감 있는 연예인으로 했어요. 특히 조부모와 오랫동안 살았다든지 아니면 지금도 친밀하게 관계를 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죠. 

짝꿍들 다섯 명 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할아버지나 할머니하고 친밀하게 지내온 친구들 위주로 섭외를 했거든요. 문소리씨도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고요. 익숙한 기억이나 애틋한 감정이 있는 분들 섭외했더니 긴 시간 촬영한 게 아닌데도 금방 할머니들과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문소리씨를 선생님으로 섭외한 이유가 있다면요?
"일단 할머니들은 70~80대고 짝꿍들은 20대라 거의 증손주뻘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 역할을 해주실 분은 그 중간 세대 즈음 되는 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문소리씨가 사범대 교육학과를 나오셨어요. 그래서 애초에 선생님 자격이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작품 안팎으로 보여준 모습을 볼 때 여러 세대와 잘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섭외를 요청했어요. 문소리씨가 흔쾌히 좋다고 해서 섭외가 어렵지 않았어요."

"할머니들의 느린 호흡 그대로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

- 아무래도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많이 의식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고 했으니까, 카메라를 의식하고 낯설어하시면 촬영이 어려울 것 같았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촬영하기 전에 3개월 가까이 거의 매주 내려가서 저희가 낯설지 않도록 시간을 가졌어요. 사실 석 달이란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짝꿍이 있으니까 짝꿍 보느라고 정신없으세요. 그래서 옆에 카메라가 있든 말든 신경 안 쓰시죠.

다른 걸 할 땐 짝꿍과 이야기 하는 게 즐거워서 생각보다 저희(스태프)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셨는데, 뭔가 드실 때는 자신들만 드시는 게 힘드셨나봐요. 사람 세워놓고 식사하는 게 웃긴다고 해요. 촬영 중에도 자꾸 먹을 것을 주시려고 하셔서 제가 처음 촬영할 때 스태프들에게 '할머니들이 주시려고 하면 다른 예능처럼 없는 척하지 말고 감사히 드시라. 그런 게 할머니들 매력이니 그런 것도 자연스럽게 담기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 할머니들 한글 공부하시는 걸 보시며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시나 글을 써내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과연 이틀씩 두 번 촬영해서 좋은 글이 나올까, 걱정됐어요. 오랫동안 할머니들이 문해학교에서 한글 배우셔서 시를 담아 펴낸 책이 있는데, 그건 몇 년 동안 쓰신 걸 추리고 추린 것이거든요. 짧은 기간 동안 찍은 것 안에서 좋은 표현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글을 못 배우셨을 뿐이지, 할머니들이 그동안 담아온 언어들은 저희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더라고요.

70~80년 동안 당신들이 표현하고 싶으셨던 언어들이 얼마나 많으셨겠어요? 삐뚤빼뚤 꾹꾹 눌러 쓴 글씨들 속에 (할머니들이) 그동안 담고 싶었던 표현들이 담기는 걸 보고,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자기 언어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촬영 현장과 달랐던 점은, 촬영하는 스탭들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 하며 찍었다는 거예요. 저희 촬영장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할머니들 일상을 다 담으려다보니 밤늦게까지 촬영하기도 했고 카메라도 무거운 걸 썼어요.

그런데 진행팀도 그렇고 작가님도 그렇고 카메라 감독님도 할머니들에게 너무 빠져 있어요. 저희가 1박 2일씩 두 번 촬영을 갔어요. 보통 촬영 끝나고 올 땐 자는데, 저희 카메라 감독님들은 너도나도 자기가 촬영 담당한 할머니 얘기하느라 신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할머니는 어땠다'라고 자랑하고요.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카메라 감독님들이 할머니들과 셀카를 찍고는 즐거워했어요. 촬영하는 스태프들도 할머니들이 너무 따뜻하게 잘해주시니까... 그런 것에 마음이 많이 녹았던 촬영 현장이었던 것 같아요."
 
 <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가시나들>의 현장 스틸컷 ⓒ 권성민 PD 제공

 
- 편집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할머니의 호흡이죠. 할머니들은 느리시잖아요. 말씀을 느리게 하시고 걷는 것도 느리죠. 젊은 사람 같으면 금방 갈 것 같은데, 할머니들은 다리도 안 좋으시고 허리도 안 좋으시니까 가는 것도 한참 걸리시고... 뭔가 생각하는 것도 오래 걸려 생각하시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을 다 쳐내지 않고 가급적이면 그런 호흡이나 느낌을 많이 살려서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파일럿 방송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짝꿍들과도 긴 시간 함께 하면서 담아내면 좋았을 텐데... 일단 파일럿이다 보니 짧은 편성 안에 담아내야 하는 게 아쉬웠고요. 정규편성 되면 좋겠는데 주말에 '센' 프로그램들과 붙다 보니 모르겠어요. 보시는 분은 너무 좋아하셨는데, 시청률은 잘 나온 편이 아니라서 걱정은 합니다."

- '가시나들'이라는 제목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의 약자잖아요. 이런 제목은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요?
"처음엔 제목에 대한 우려가 당연히 있었어요. 왜냐면 '가시나'란 단어를 사투리로 친근하게 쓰시는 분도 있지만, 오랫동안 비하의 의미로 쓰인 역사도 있어서 불편해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다른 것보다 이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지 못한 채 80살까지 사신 이유가 '가시나로 불렸기 때문'이거든요. '가시나가 한글 배워 뭐 할라꼬?' 하면서 한글을 못 배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시나들'이란 제목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라는 건 작가님 중 한 분이 생각하신 거고요. 새로운 의미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마지막회 방송을 남겨두고 계시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방송으로 확인하시죠(웃음)."
권성민 가시나들 성인문예학교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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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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