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FN엔터테인먼트


큰 키에 서글서글한 웃음. 잘생긴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 속 남은기는 인기남의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다. 하지만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덕미(박민영 분)의 마음만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성덕미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그를 연기한 배우 안보현은 시청자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3일 서울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배우 안보현을 만났다. 그는 "아직 은기의 여운을 떨치지 못했다"며 웃었다. 

"황금시간대 메인 드라마에, 너무 좋아하는 홍종찬 감독님, '로코퀸' 민영 누나, 전부터 팬이었던 재욱 형, 진주씨, 김미경 선배님...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이랑 호흡을 맞춘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어요. 그야말로 감개무량했죠. 너무 행복한 마음으로 지난 석 달을 보낸 것 같아요.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은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요. 클립도 찾아보고, 재방송도 보고. 하하하." 

"연기하지 마라" 감독이 조언한 이유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FN엔터테인먼트

 
홍종찬 감독은 안보현의 캐스팅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연기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즐기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으로 맡게 된 큰 역할에 부담감을 느끼던 그에게 그만한 응원의 말도 없었다. 

"저랑 남은기는 싱크로율이 높다고 해주셨어요. 엄청나게 힘이 됐죠.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말씀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은기와 외형적인 싱크로율을 더 높이기 위해 우선 몸을 키웠어요. 유도복 입고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유도 오래 했던 사람이구나' 라는 분위기가 날 수 있도록이요. '은기는 왜 운동을 그만뒀을까요?'. '은기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 걸까요?' 대본에 나오지 않는 은기의 서사가 궁금해 감독님을 귀찮게 괴롭히기도 했죠. 그렇게 은기의 내면과 외형을 준비했어요."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는 여러 로맨틱 장르 드라마에서 다뤄진 인기 코드다. 남은기가 성덕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지만, 시청자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주어진 상황과 대사 안에서, 어떻게 하면 시청자의 마음을 더 '심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그 고민을 함께 해주고, 답을 찾아준 이는, 성덕미 역의 박민영이었다. 

"민영이 누나가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해야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이를테면 은기가 덕미를 대할 때 너무 툭툭대는 것보다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든가, 하는 거요. 누나와 상의하면서 대본에 애드리브도 섞어보고 했는데 다 잘 살았더라고요. 역시 괜히 로코퀸이 아니더라고요." 

극 후반부에 짧게 등장해 큰 호응을 받은 남은기와 신디(김보라 분)의 러브라인도 애드리브 덕분에 탄생했다. 덕미네 집에서 남은기와 신디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애드리브를 했는데, 이를 본 김미경(덕미 엄마 역)이 '너무 재미있다. 너네 둘이 뭔가 있을 것 같다'며 새로운 러브라인에 힘을 보태줬기 때문이다. 이후 남은기와 신디의 만남이 몇 장면 더 나왔고, 마지막 회에는 둘이 연인이 됐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나왔다. 

"신디랑 은기가 함께 나오는 신은 네 개 밖에 안 돼요. 근데도 둘을 응원하고 좋아해 주신 분들이 많은 걸 보고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특히 마지막 유도신은, 마지막 촬영 때 추가됐거든요. 그냥 애드리브로 채워진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 촬영할 때 홍종찬 감독님이 안 계셨거든요. 감독님이 마지막 회 편집하다 전화 주셨더라고요. 급하게 만든 신인데 너무 재밌게 잘해줘서 고맙다고요. 새벽에 엄청 피곤한 상태로 편집하고 계셨는데 그 장면을 보고 빵 터지셨대요. 너무 좋았죠." 

'배우 안보현'이 되기 전, 그가 보낸 시간들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FN엔터테인먼트

 
애드리브로 없던 러브라인까지 만들어낸 걸 보면 일찍부터 배우를 꿈꾸고 준비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20대 중반까지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고,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다. 

부산체고를 나온 안보현은 10대 시절 복싱 유망주였다. 고3까지 부산시 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아마추어 대회에서 금메달까지 땄다.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던 복싱 소년은, 실업팀이나 체대 대신 대경대 모델학과에 진학해 모델로 진로를 바꿨다. 

"모델이 되기 위해 운동을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복싱을 하다 보면 손가락뼈가 잘 부러지거든요. 부상도 많았고, 맞고 때리고 하는 운동이라 부모님이 늘 속상해하셨어요. 반대가 심했죠. 사실 처음 운동 그만뒀을 땐 직업 군인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모델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시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냥 키가 크니까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게 또 다른 세상을 눈 뜨게 해줬죠." 

그렇게 대경대 모델학과에 입학한 그는,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서울컬렉션 무대에 오르며 화려하게 모델로 데뷔했다. 에이전시도 없고 학원도 다닌 적 없는 1학년이, 이렇게 빨리 런웨이 데뷔한 전례가 없었다. 교수님들의 기대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모델 생활도, 5년을 겨우 채웠다. 운동을 오래한 탓에, 몸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강동원, 조인성, 차승원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었고, 학교 선배인 이민기 역시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해 성공한 케이스였다. 자연스럽게 그의 목표 역시, 모델에서 배우로 옮겨갔다. 

'연기 독학' 안보현의 훌륭한 스승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FN엔터테인먼트


"연기 학원에 다니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돈 모아서 한 달 다니고, 돈 모아서 한 달 다니고, 이런 식이었죠. 모델과 배우는 둘 다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이지만 너무 다르거든요. 기본이라도 배워야 배우 소속사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컸어요." 

단 몇 달이었지만 학원의 효과는 분명 있었다. 캠코더로 자신의 연기를 찍어 모니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건, 영화와 TV 속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하면서였다. 여러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내기도 하고, 기존 캐릭터에 '안보현'이라는 색깔을 맞춰 연기해보기도 했다. 짧은 기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연기를 독학해 온 안보현에게, 선배들과의 연기 호흡 맞추는 일은,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한 과외나 다름없다. <그녀의 사생활> 역시 마찬가지. 안보현은 극 중 김미경, 맹상훈 등 선배 연기자들과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대사 엔지 내시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특히 후반부에는 선배님들의 눈물신이 많았거든요? 촬영 전까지 강아지 이야기도 하고, 휴대폰 카메라 어플로 함께 장난도 치고... 이렇게 즐겁게 계시던 선배님들이 갑자기 슛 들어가는 순간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정말 너무 놀랐어요. 그 어마어마한 내공과 경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저도 함께 울먹울먹해야 했는데, 제가 눈물이 정말 없거든요. 선배님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주신 덕분에 저까지 저절로 눈물이 맺혔죠.   

선배님들의 연기에 감탄할 때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할 수 있겠지?', '나도 경력이 쌓이면 내공도 쌓이겠지?' 싶기도 하지만, 시간만 흐른다고 저절로 되겠어요? 그래서 그 때마다 연기 연습해야겠다는 마음이 막 생겨요. 매일 '역시나'라는 마음으로 선배님들과 연기하고, '정말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안보현이 원하는 수식어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에서 덕미(박민영 분)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은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 FN엔터테인먼트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진다.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만큼,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도, 캐릭터도 많다. 그중 지금 가장 도전하고 싶은 건 악역.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종종 그에게 '네 얼굴에는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해주는데, 이런 장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제가 먼저 어떤 걸 해보고 싶다, 이런 걸 하겠다, 고 말하기는 조심스러워요. 아직은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요. 아직은 연기 기회 자체에 대한 목마름이 커요. 그저 바라는 건,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는 거예요. 큰 스포트라이트는 못 받더라도, 언젠가 시청자분들이 '어? 얘가 걔였어?'라고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복싱선수를 꿈꾼 10대. 모델로 데뷔한 20대. 배우로서 본격적인 필모를 쌓기 시작한 30대. 언뜻 너무 다른 꿈과 목표를 위해 달려온 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삶과 인생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에게, 지난 시간의 노력은 모두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전 많은 분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연기했거든요. 솔직하게 제 부족함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을 때, 너무나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고, 가르침을 주셨어요. 언젠가 제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생긴다면, 제가 선배님들께 받은 가르침을 나누고 싶어요." 

안보현은 시청자들에게 듣고 싶은 수식어를 묻자, '걔'라고 답했다. '어? 그때 걔네', '전 작품이랑 너무 달라서 얘가 걔인 줄 몰랐어'라는 말이 듣고 싶다면서. 안보현은 "그만큼 이미지 변신을 잘하는 '팔색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너무 옛날 표현인가요?"하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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