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촬영현장

<기생충> 촬영현장ⓒ ㈜바른손E&A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했다는 사실이 수상의 의미를 더해주는 '미담'으로 조명되고 있는 것에 대해 영화계 인사들은 "영화계를 어떻게 봤으면 순제작비 100억이 넘는 상업영화가 표준계약 지킨 게 뉴스가 되나"라며 무분별한 언론 보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영화 관계자들은 표준계약서는 수 년 전부터 대다수 촬영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고 이미 정착됐는데, 마치 특정 영화 촬영 현장에서만 지켜진 것으로 비쳐지면서, 자칫 다른 현장들은 스태프들을 착취하는 곳으로 보일까봐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한 제작자는 최근의 언론 칼럼을 지적하며 "영화계가 다 악덕이 되가는 현실에서 관계자들이 이제 좀 수습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해당 칼럼은 "<기생충>이 제작 과정에서 표준근로계약을 지키고서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이 더 큰 화제가 되었다"라며 "영화 스태프들에게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수당 지급, 계약기간 명시 등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을 지키면 당연히 제작비가 늘어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 영화를 제작했고, 이러한 큰 상을 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라고 강조했다.
 
동반성장협약 이후 명필름이 앞장서 

 
 2013년 4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 동반성장에 대해 영화계의 합의가 담긴 상생협약이다

2013년 4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 동반성장에 대해 영화계의 합의가 담긴 상생협약이다ⓒ 성하훈


앞서 영화인들의 지적처럼 가장 큰 문제는 일부 매체들이 영화계의 표준계약서 적용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치게 큰 미담으로 키운데 있다. 이미 정착돼 있는 구조인데도 칸영화제 수상 의미를 전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실태 확인 없이 확대재생산 시켰기 때문이다.
 
발단은 수상 직후 일부 매체의 보도였다. <기생충>이 촬영 당시 모든 스태프를 상대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52시간을 지켰다는 것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이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당초 이 기사는 방송작가유니온의 성명을 토대로 작성됐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성명에서 "'기생충'의 성과를 거울삼아 국내 방송사들도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제작 스태프를 상대로 표준 계약서를 체결해 노동 인권 보장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뒤 드라마나 방송 촬영 현장을 질타하는 목소리보단 봉준호 감독의 '표준근로계약' 사실만 더 부각됐다.
 
변영주 감독은 <기생충> 수상 이후 표준계약서 이행이 화제가 되자 "영화산업노조와의 표준근로계약서(성폭력예방교육, 안전교육 의무화를 포함한), 최저임금, 그리고 주52시간 노동까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충무로영화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특별한 제작사나 감독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라며 "이런 영화 생태계의 놀라운 변화 발전의 일등공신은 계약직인 스태프들로 구성된 영화산업노조라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표준계약서 준수는 영화계가 동반성장을 위한 논의를 거쳐 2013년 협약식을 가진 이후 본격화 됐다. 영화 관계자들은 "현장에서는 201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 전에 돈 제대로 못 받고 일한다고 하는 사례가 너무 많았는데, 근데 지금은 안 그렇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 흥행한 10억 정도의 저예산 영화도 다 지키면서 하고 있다"라며 "한 시간만 넘어도 모든 조수스태프들이 시간외 수당 요구해서 그것들까지도 챙겼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작비 150억 넘는 영화가 이런 걸로 칭찬 받다니... 이런 점이 강조되다보니 다 아직도 그런(영화 촬영 현장이 열악한) 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당혹스러워 했다.
 
초기 표준계약서 정착을 위해 노력한 대표적 영화사 중 한 곳은 명필름이다. 2014년 <관능의 법칙>의 개봉 당시 명필름은 표준계약서를 준수했음을 강조했다. 당시 권칠인 감독은 "작품을 계약할 때 표준계약서 이야기를 했었고, 이행에 있어 가장 앞서나간 영화였다"라고 말했다.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서 현장 스태프들은 월급제, 4대 보험, 추가근로수당, 4시간 작업마다 30분 휴식 등을 보장받았고 밤샘촬영도 없었다. 배우들 역시 "밤도 안 새고 열심히 했다. 표준계약서를 처음으로 적용한 영화라 배우들도 밤을 새지 않아서 정말 예쁘게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 "표준근로 정착에 <기생충> 공헌 없어"
 
 <기생충> 촬영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

<기생충> 촬영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 ㈜바른손E&A


봉준호 감독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나와 <기생충>이 표준근로의 아이콘이 된 점은 너무 민망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관련기사 : 봉준호 "'기생충'이 표준근로 아이콘 된 점, 너무 민망" http://omn.kr/1jiuz).

해당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영화산업노조와 대표적인 투자 배급사, 제작사들이 장기간 동안 논의를 거쳐 표준계약서가 정착된 것으로, 2017년 이후부터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서 제작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그렇게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스태프들의 급여도 정상화 됐기 때문에 미국, 일본 스태프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라며 "봉준호와 <기생충>은 표준근로 정착에 공헌한 바도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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