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박 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의 고용인에 대한 신뢰는 아주 얄팍하다.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누가 기생충인가. 부잣집에 숨어든 가난한 이들인가, 가정부와 운전기사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인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았다. 서로 다른 세 가족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 가운데, 봉 감독 특유의 의미심장한 디테일을 꾹꾹 눌러 담은 정성스런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선호와는 별개로, <기생충>이 뛰어난 작품이란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표면 아래 깃든 서로 다른 층위의 상징들이 의미심장한 인상을 남김은 물론이고, 유효한 담론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해보이기 때문이다. 계급과 남북문제, 국제정세와 체제풍자까지를 유유히 오가는 상징성 짙은 블랙코미디로써 봉 감독은 또 한 단계 전진을 이뤄낸 듯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생충>은 소시민과 계급에 대한 영화다. 문제의 본질에 깊이 파고들어 원인을 드러내는 대신 현상 그대로를 비추고 비꼬아서 풍자한다. 현실에 발을 디딘 채로 실재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조적 태도로 일관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경쟁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비슷하면서도 대조된다 하겠다.
 
영화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곰팡이 핀 반지하 집에서 마땅한 일 없이 지내는 이들 가족이 주인공이다. 그래도 한때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겐 나름대로 하나씩 주특기가 있다.

조금은 달랐던 기택의 온도  
 
기생충 피자박스 네 개마다 하나씩 불량이 나왔다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기생충피자박스 네 개마다 하나씩 불량이 나왔다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CJ 엔터테인먼트


어머니 충숙(장혜진 분)은 투포환 선수 출신이다. 비인기 종목 은메달리스트란 다분히 의도적인 설정에도 강건하고 패기 있는 집안의 기둥이다. 맏아들 기우(최우식 분)는 공부 깨나 한 영민한 젊은이다. 가정형편 탓에 대학엔 못 갔어도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가 제가 하는 과외를 넘길 정도니 실력은 알 만하다. 딸 기정(박소담 분)은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 서류를 위조해 고졸 오빠를 명문대 졸업생으로 둔갑시키는 일 정도는 우스운 수준이다.
 
오로지 기택만이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재기와 패기, 당당함 대신에 늘어질 대로 늘어진 무기력한 모습이다. 기택에게선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무력함이 전해진다.
 
영화 초반, 피자상자 에피소드는 기택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부업으로 접은 피자상자를 가게에 넘기자 점장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자 네 개에 하나씩 제대로 접지도 않은 불량품이 나왔다는 것, 말인즉슨 기택 가족 넷 중 누구 하나가 불량품을 만든 불량가족이란 뜻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불량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조금쯤 온도가 달라보였던 기택, 그 온도차가 다른 가족 구성원과는 조금쯤 다른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 기택은 영화 <기생충>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겠다.
 
"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맞기 전까지는"이란 명언을 남겼다. 타이슨의 말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기택은 세상의 핵주먹에 두들겨 맞고서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인간이다.
 
영화가 수차례 내보이는 것처럼 기택에겐 계획이란 것이 없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 제 가족을 한 명씩 들이는 아들을 대견해 하고, 위기에 처한 가족 앞에서 저만의 계획이 있다고도 말하지만, 정작 그는 계획이란 걸 할 수 없는 인간이다.
 
한때는 기택에게도 그럴싸한 계획이 몇 가지쯤 있었을 것이다. 평범한 여느 가장처럼 가족을 먹여 살릴 일거리도 있었고, 그럴듯한 사업계획도 세웠을 테다. 영화가 의미심장하게 등장시키는 대만카스텔라가 빚을 떠안겨 나가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데뷔 전부터 타이슨을 만난 재수 없는 복서가 느꼈을 절망감은 기택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다. 그럴싸한 계획이 통하는 건 그저 그런 상대를 만났을 때뿐이란 걸 기택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거듭되는 소통의 좌절, 영화의 메시지는?
 
기생충 영화 초반 인터넷과 휴대폰이 정지된 기택(송강호 분) 집안의 상황이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 기생충영화 초반 인터넷과 휴대폰이 정지된 기택(송강호 분) 집안의 상황이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CJ 엔터테인먼트


자, 이제 때가 되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는 모두 세 가족을 등장시킨다. 기택의 가족, 박 사장의 가족, 그리고 기택의 가족보다 먼저 박 사장 집에서 일했다는 문광(이정은 분)의 가족이다.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그 가족들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가족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없다. 말은 있지만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정보의 전달일 뿐이다. 박 사장과 아내 연교(조여정 분)의 사이에서도, 연교와 딸 다혜(현승민 분)의 사이에서도 진솔한 대화가 없다. 얼핏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는 기택의 가정에서도 진솔한 대화는 얼마 보이지 않는다. 외마디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서로의 말만이 맴돌 뿐,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일이 없다.
 
가족 밖은 더하다. '선을 넘는 게 제일 싫다'는 박 사장의 규칙은 제 집에 있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는 꼬박꼬박 일한 대가를 지불하는 좋은 고용주지만,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을 내치면서도 한 번의 자리조차 갖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마음도 없다.
 
봉 감독은 특유의 친절함으로 소통이 영화의 주요한 메시지임을 드러내 보인다. 시작과 함께 전화와 인터넷이 모두 끊긴 기택의 집을 비추는 것부터, 박 사장의 아들 다송(정현준 분)이 늘 워키토키를 들고 다니는 것, 지하실의 근세(박명훈 분)와 영화의 말미 기택이 보내는 모스 부호 등이 모두 이를 위한 선택이다. 영화 속 모든 연결의 시도는 언제나 간절했지만, 때로는 자본이 부족(기택 집의 경우)하고 때로는 언어가 맞지 않아(근세의 경우) 늘 실패하고 만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270'에서 계속됩니다(http://omn.kr/1jl2x).
덧붙이는 글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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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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