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MBC

 
"봉준호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봉준호'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2013년 <설국열차> 개봉 당시 한국 관객들 앞에 선 배우 틸다 스윈튼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영화 <설국열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답이었다. <설국열차>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한국에서만 9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감독 봉준호' 편은 6년 전 <설국열차> 개봉 당시와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을 연결시켰다. 게다가 이 방송은 2013년 8월 영화 개봉 직후 방송된 영상을 재편집한 방송이었다. 왜 배우 김수현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지 의아했는데,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2013년 당시에도 4%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 MBC 스페셜 > '감독 봉준호' 편은 3일에도 시청률 3.4%(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를 기록하며 올해 자체 최고시청률을 갈아치웠다. 그야말로 '봉준호 이펙트'였다. <설국열차> 때와는 달리 칸 황금종려상 프리미엄까지 붙었으니, <기생충>을 관람했거나 관람하고자 하는 관객들의 구미가 당기는 방송임에 틀림없었을 터. 

이러한 배경을 제쳐두고서라도, '감독 봉준호' 편은 '봉준호 입문'을 앞둔 사람이나 기존의 봉준호 팬이라면 누구나 흐뭇하게 지켜볼 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국내외 배우와 평론가들, 감독들 인터뷰는 물론 그간 봉 감독의 작품세계에 대한 풍부한 설명도 담겼다.

< MBC 스페셜 >뿐만 아니라 내셔널지오그래피에서 만든 '거장 봉준호'라는 다큐멘터리도 추천하고 싶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영상 역시 <설국열차> 개봉 전 제작된 영상이다.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재편집본에는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 장면과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터뷰도 더해졌다. 작년 가을 극장가를 강타했던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시의적절'하게 포착했던 < MBC 스페셜 >이 다시금 영민하게 '영화'와 접속했다고 할까. 역시나 '신드롬'에 가까운 '봉준호 열풍'을 등에 업고서. 

재편집, 재탕이어도 괜찮아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MBC

 
"저는 영화를 선정할 때 감독님을 제일 우선시 합니다. 왜냐하면 감독님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인의 추억>의 광팬이기도 하지만 <마더>도 매우 좋아해요.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 안에 사람의 정서가 녹아 있어요. 제가 본 그의 영화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때문에 만약 봉 감독님이 저에게 관심이 있다면, 같이 일을 하지 않는 제가 어리석은 거겠죠." 

<설국열차> 개봉 당시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 사이사이 얼굴과 목소리에서 진심어린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은 <어벤져스> 시리즈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한국 관객들과도 친숙하지만, <설국열차> 개봉 당시만 해도 크리스 에반스는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한 할리우드 배우 중 하나였다. 오히려 언론이나 영화 팬들 모두 틸다 스윈튼을 더 주목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3년의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의 팬이었고, 크리스 에반스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미팅을 했다는 사실은 '마블 공화국'이 된 한국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선 확실히 체감이 덜한, 해외에서의 '감독 봉준호'가 지닌 위상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랄까. 

아울러 봉 감독과 동료 배우들을 보며 "가족 같다"고 말했던 2013년의 틸다 스윈튼은 이후 <옥자>를 통해 봉 감독과 재회했다. <기생충>의 칸 상영 당시, 본인 출연작이 아닌데도 봉 감독의 뒷자리를 지킬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 

<기생충>으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이 된 봉준호는 <설국열차> 때도 존경받는 감독이었다고 한다. 배우들이나 동료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언뜻 내비치는 봉준호만의 창작의 비밀은 꽤 흥미로워 보였다.

일례로, <설국열차>의 체코 로케이션 현장에서 봉 감독은 한국식 고사를 지내는 '고집'(?) 혹은 유머를 발휘했다. 실제 돼지 머리고기 대신 태블릿 PC 속 돼지를 놓은 채, 외국 스태프들이 그 앞에서 절을 하는 모습은 봉 감독의 촬영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리라. < MBC 스페셜 >은 또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과연 <기생충>을 본 외국 관객들은 그 광경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삑사리의 예술, 편성의 승리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MBC

 
"'삑사리'는 먼저 아름다운 단어이고, '실패' '흐름속의 끊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기름칠로 잘 돌아가는 기계식이 전혀 아닌 봉준호표 영화를 아주 잘 표현하는 단어죠." (뱅상 말로사 / <카이에 뒤 시네마> 기자)

프랑스인이 '발화'하는 우리 비속어 '삑사리'라니, 게다가 그 '삑사리'가 아름다운 단어라니. <괴물>이 전 세계에 공개됐던 2006년 1월, 프랑스의 유력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삑사리의 예술'(L'art du piksari)란 제목의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이 <카이에 뒤 시네마>는 2010년 <괴물>을 2000년대 세계 최고의 영화 중 4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삑사리의 예술'이란, 장르를 뒤섞고 장르 법칙을 교란시키고 한 시퀀스나 한 신에서조차 예측 못한 엇박자의 리듬감을 자랑하는 봉 감독 특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한 말이었다. 프랑스인 기자가 뭔가 그럴싸한 한국어 표현으로 옮긴 '평론가의 유희'라고도 볼 수 있다. 봉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 기자에게 농담처럼 얘기한 것이 기사화됐다며 민망해했지만 말이다. 

잘 편집된,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으로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은 언제나 흐뭇하게 지켜보게 되기 마련이다. 이 < MBC 스페셜 > 역시 대학신문 만평을 그리는 사회학도이자 영화감독만을 꿈꿨던 봉 감독의 학창시절부터 단편영화 <지리멸렬>을 만들던 시기, <모텔 선인장> 조감독 시절과 장편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가 실패하며 겪은 감정들을 두루 담아냈다. 송강호를 제외하고 봉 감독과 가장 많이 작업한 배우 김뢰한과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동고동락했던 변희봉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었다.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칸의 거장 봉준호의 모든 것!' 편의 한 장면ⓒ MBC

 
그렇게 장편 데뷔 전부터 <설국열차>까지의 작품 세계를, 그리고 이후 <옥자>와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우뚝 선 <기생충>이란 현재를 두루 조명한 < MBC 스페셜> '감독 봉준호' 편의 재편집본은, 누구에게는 식상한 형식일 순 있다. 성공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와 쑥스러워하는 본인의 인터뷰와 더불어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 자체가 말이다. 하지만 봉 감독과 봉 감독의 영화 세계를 닮은 듯, 이 '봉준호 편'은 한 치도 지루할 틈 없이 '감독 봉준호'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을 자랑한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더>를, <괴물>을, <설국열차>를, 그리고 <살인의 추억>과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찾아 보고 싶게 만든다. 이번 재편집본 방송은 확실히 '보헤미안 랩소디' 편에 이은 MBC 시사교양국의 편성 승리라고 불러도 좋아 보인다. "바로 봉준호" 때문이라던 틸다 스윈튼과 같은 마음의 관객들에게, '감독 봉준호' 편은 다 알고 봐도 기분 좋은 선물이 됐으리라. 

마찬가지 현상일까. 케이블 TV든, OTT 서비스든, '봉준호 감독 영화' 다시 보기가 곳곳에 눈에 띈다. 마치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 사이, N차 관람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기생충>은 < MBC 스페셜 >이 방영되던 그 시간까지 37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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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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