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예능판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예능 치트키' 백종원은 자신의 이름을 또 하나의 프로그램(SBS <백종원의 미스터리 키친>)을 시작했고, 분식을 메뉴로 들고 나온 강호동은 "우리 주방은 이번엔 행복보다 존중과 배려의 콘셉트"라며 이수근과 은지원을 다독이고 있다(tvN <강식당2>). 비판과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SBS <미운 우리 새끼>와 MBC <나 혼자 산다>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화제를 이끌어 낸다. 예능의 골목은 어김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이처럼 시끌벅적한 곳은 따로 있는데, 정작 눈길은 다른 곳을 향한다.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그곳은 왁자지껄한 곳도 아니고,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작위적인 설정이 없고, 인위적인 갈등이 없다. 그럴 경우에 보통 (제작진은) 자극적인 편집을 시도하기 마련인데, 거기엔 그런 무리수도 없다. 그래서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진다. 흔한 말로 '힐링'하게 된다. 그 평화로운 곳은 바로 MBC <가시나들>이다.

잔잔하고 가슴 뭉클한 예능 <가시나들>
 
 <가시나들>의 한 장면

<가시나들>의 한 장면ⓒ MBC

 
"아무리 우리 짝꿍이 잘한다 캐도 이 나이 되도록까지 내가 해봤는데 마음이 안 놓이는 기라."

이남순 할머니는 짝꿍 이브와 육반장(육중완)과 함께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와 옷을 샀다. 장을 보다가 사야겠다 싶은 물건이 보이면 발길을 멈춰서는 할머니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집으로 돌아와 잡채를 만들다 말고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소판순 할머니는 짝꿍 유정을 마을회관에 데려가 화투를 가르치고 파전을 만들어 먹었다. 중간에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집에서는 유정과 함께 메이크업을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문소리는 가정방문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에 소판순 할머니를 찾아와 인사를 드렸고, 유정은 문소리를 마을어귀까지 배웅했다. 문소리는 "이렇게 벚꽃 쫙 폈을 때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었거든"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유정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말고, 어린 마음에 아픈 할머니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며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문소리가 유정의 엄마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모든 장면이 잔잔했고, 자연스러웠다. 
 
 <가시나들>의 한 장면

<가시나들>의 한 장면ⓒ MBC

 
"나는 한글을 못 배웠습니다. 어릴 때 마을에 한글 알려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나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 찾아가도 "가시나가 글은 배워서 뭐할라꼬!"하면서 쫓아냈습니다. 그래도 자꾸 찾아가니까 이름만 알아라 해서 제 이름 박무순만 썼습니다. 영감님 만나 서울로 시집을 갔습니다.

처음 지하철이 생기고 탔는데 글을 모르니 못 내렸습니다. 몇 번을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했는지 모릅니다. 하루종일 지하철만 타다가 파출소에 갔습니다. 많이 창피했습니다. (...) 다 늙어서 배우면 어따 쓰겠냐고 하는데 나는 모르고 살기가 서러웠습니다. 나 대신 글을 읽어주던 영감님이 죽고 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래서 내 고향 탁현 마을로 왔습니다. 노인들 모아다 한글을 알려준다는 학교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공부하러 갑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문해 학교'에 모인 할머니들은 중간시험을 보느라 분주했다. 시험을 통해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점검한 후에는 박무순 할머니가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꾹꾹 눌러 쓴 편지가 양희은의 낭랑한 목소리를 통해 또랑또랑 전해졌다. 어떤 사연일지 궁금해 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지만, 이내 울컥하고 말았다. 

단지 '가시나'라는 이유로 한글을 배울 수 없었던 할머니는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글을 몰랐기에 혼자 지하철을 탈 수도 없었고, 어린 자식들이 책가방을 챙길 때도 선뜻 도와줄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글을 배운 우리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무게의 심정일 것이다. 모르고 사는 게 서러웠다는 말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에게 글을 배운다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청정 예능'을 앞으로도 더 오래 볼 수 있을까
 
 <가시나들>의 한 장면

<가시나들>의 한 장면ⓒ MBC

 
3.1% → 2.8% → 3.0%

자, 이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이 숫자의 정체가 '시청률'이라는 점을 본다면, 분명 낙관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일요일 저녁 예능의 성적이라고 한다면 대답은 조금 더 암울해진다. 실제로 경쟁 프로그램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14.0%, SBS <집사부일체>는 7.8%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저 숫자가 주는 착잡함은 더욱 커진다. 이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이 된 상태라면 당장 폐지를 걱정해야 할 것이고, 아직까지 파일럿 신분이라면 정규직 채용을 우려해야 한다. 

<가시나들>은 후자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칭찬 일색이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좋은 평가들이 정규 편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권성민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 "얼떨떨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면서도 "결국 파일럿의 첫 번째 목적은 레귤러로 가는" 것이고, "우리 예능의 결정권은 호평보다는 숫자에 움직"인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 도움이란 <가시나들>을 주변에 많이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생사여탈권을 지닌 '숫자',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가시나들>은 단 1회 분량(6월 9일 일요일 오후 6시 45분에 방송)을 남겨두고 있다.

여전히 할머니들이 들려줄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어 보인다. 그들의 인생을 담아낸 시를 조금 더 엿보고 싶은 마음이다. 또 짝꿍들과의 사이도 진짜 할머니와 손주마냥 친근해졌는데, 그 관계가 주는 따뜻한 위로가 더없이 푸근하다. 부디 이 '청정 예능'이 성급히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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