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증강현실을 즐기다' 2019년 5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 가상·증강현실 박람회(Seoul VR·AR Expo 2019)'에서 한 관람객이 VR 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2019년 5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 가상·증강현실 박람회(Seoul VR·AR Expo 2019)'에서 한 관람객이 VR 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자료사진,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 결정은 정신행동건강분야의 서비스 개선을 위한 진단 체계의 기술적 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건강한 게임 사용을 위한 업계의 책임을 돌아보기보다, 의료계의 노력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으로 왜곡해왔다." (이해국 교수)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게임이용 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해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등록하기로 의결했다. 이후 한국 게임업계는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게임공대위)'를 꾸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관련 기사 : 국회에 '근조 게임' 영정... "마녀가 된 게임문화·산업" http://omn.kr/1ji5k).

<오마이뉴스>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관해 논의할 지점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이해국 교수는 "게임중독이 심각한 문제로 확대됐지만 게임업계의 무책임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라며 게임계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했다. 그는 '게임중독 질병 분류'가 정신의학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기본적 사실관계에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다음은 3일 이해국 교수가 보내온 답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 게임의 과도한 사용 이유로 내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 결정이 최근 게임계를 넘어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WHO의 결정이 어떤 배경으로 내려졌는지 설명해달라.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은 게임의 중독적 사용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게임이용 장애'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게임중독으로 인한 정신건강행동문제는 단순히 게임산업 발전 과정의 부수적 부작용으로 볼 수 없다. (게임이용 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개인의 삶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건강 문제로, 공중보건의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다.

(게임이용 장애 관련) 뇌영상연구·장기추적연구·관련 건강폐해연구 등 질병 분류에 충분한 기전·임상·진단·역학연구가 되어 있다. 과학적으로 이견이 있는 부분은 이후에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공식 진단 체계를 이용한 치료서비스 제공으로 '게임이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 나아가 공중보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게 현재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나?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미 학교 상담, 지역사회 상담서비스, 보건의료복지서비스 체계에서 게임의 과도한 사용을 이유로 내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각기 표준화되지 않은 기준으로 이들을 평가하고 치료하는 현실이다. 환자들에게 치료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지만, 현재 정확한 규모를 통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확한 문제 규모 파악과 개선을 위하여 공식적 진단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보건·교육·문화체육·정보통신 분야에서 소위 게임중독의 문제를 산발적으로 다루어 왔다. 하지만 자기통제력을 상실할 정도의 중독적 사용에 관한 비보건적 접근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줄이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해국 교수는 게임중독에 대한 게임계의 대응을 비판했다. 게임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존재하는데, 이를 지적하면 '근거가 부족한 비판'으로 왜곡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그들이 만든 상품의 이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단지 게임의 이점과 문화적 가치만을 알리는 데 몰두해 왔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진단 체계를 포함한 방침을 밝힌 이후로도 게임업계는 건강한 게임사용을 위한 업계의 책임성을 되돌아보기보단, 이러한 노력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으로 왜곡해 왔다.

결국 게임의 중독적 사용이 심각하고 보편적인 문제로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게임업계의 무책임 등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게임중독 질병 분류' 등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게임중독 질병 분류'가 정신의학계에 이익? 사실이 아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해국 제공

 
- 이번 WHO의 결정이 청소년들의 성장, 디지털 게임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하나? 
"게임도 즐거운 오락이자 문화활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게임하는 동안 성장기 아이들은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한다고 해도 이때 이루어지는 접촉은 밖에서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접촉과 성격이 다르다.

이번 결정은 적절한 게임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이 균형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복지환경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계기도 마련할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건강한 심리사회적 발달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 '게임중독 질병 분류' 결정을 두고 '연구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 혹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각에선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게임 때문인지, 개인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아직까지 명확히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질병코드로 등재하면 안 된다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예컨대, '알코올사용 장애'의 원인이 알코올의 중독성 때문인지, 개인의 취약성 때문인지, 환경의 위험성 때문인지 밝히는 것은 아마도 인류 역사에 걸쳐 연구해야 하는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3가지 요인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병적 상태가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미 질병으로 등재되어 있다.

특정 중독성 장애(Addictive Disorder)가 질병으로 분류되기 위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장기추적연구를 통해 보고되는 중독 진단의 지속성과 안정성, 뇌 보상(쾌감) 회로의 도파민 분비 자극 및 이로 인한 회로기능 변화, 과도한 이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상의 문제가 증명되면 된다. '게임이용 장애'는 최근 50개 이상의 장기추적연구와 1000편 이상의 뇌기능연구를 통해 위 3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 이번 WHO 결정에 반발하며 '게임중독 관련 연구들을 진행한 곳이 대부분 정신의학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담배에 붙은 '죄악세'가 게임에도 부과돼 결국 정신의학계의 금전적 이익이 될 거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본적 사실관계에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을 포함 보건학·예방의학·간호·심리·복지·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기관이다. 이들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정신의학계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새로운 진료영역과 수익 창출을 위해 내려졌다는 비판은 세계보건기구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부터 기인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행위중독 문제의 특성상 질병코드 등재가 된다고 해서 의료기관을 찾아 집중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일은 없다. 실제 도박의 경우에도 질병코드가 등재되어 있지만,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추정 유병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알코올사용 장애'·'카페인사용 장애'도 질병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술이나 커피에 죄악세가 부과되어 있지 않다. 질병 등재와 규제 법제화는 직접적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사안을 '게임의 질병화'로 왜곡, 업계 외부의 '늑대' 만들고 있지 않나"

- 현재 게임 과몰입과 중독 등에 대한 국내 법적-제도적 장치는 어떤 수준인가? 그리고 시스템에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을 두고 '게임 과몰입과 중독' 업무를 문화체육관광부로 하여금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문체부가 이러한 법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체부는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내용물을 모르는 상태로 사용자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면 일부 확률로 좋은 내용물을 얻는 방식)에 대한 규제의 법제화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임은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여가활동 중 하나다. 그러므로 청소년보호와 같은 목적이 아닌 이상 접근성이나 가용성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다만 일차적으로 게임업계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소비자운동단체, 게임이용자보호 및 지원센터가 필요하다.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보편적 예방을 위한 정보제공, 사용시간 고지 등도 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과 청소년이 함께 이용하는 PC방의 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
 
- 이번 사안을 두고 게임계에서는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계가 스스로 운영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교수님도 게임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게임업계의 매출은 10조 규모다. 현재까지의 비즈니스의 역사상 이렇게 청소년들이 주된 소비자층을 형성하는 산업은 없었다. 그러나 게임업계가 청소년들이 아이템을 구입하도록 해서 얻은 수입 중 일부라도, 청소년 등의 게임소비자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지는 데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게임산업을 위협하는 것인지 게임과 게임산업을 진심으로 아끼는 분들에게 묻길 권한다. 게임산업 내부의 이윤추구적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회피하려, '게임중독의 질병화'가 아니라 '게임의 질병화'라는 왜곡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게임업계 외부의 '늑대(적)'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길 권한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Pixabay

 
이해국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등 문제로 지적된 사안에 관해서 한국 게임계의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거론하며 게임계의 책임을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논란이 됐던 노동 문제와 게임문화도 짚었다.

"2010년대 이후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일본·벨기에 같은 몇몇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규제에 나섰다. 한국은 자율 규제를 고집하며 게임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게임 산업의 외형적 규모는 빠른 속도로 커졌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문화나 내부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한국 게임계가 인권감수성이나 노동 문제(게임업계 종사자들의 포괄임금제 등)에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다. 이 사회에서 책임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혹시나 유발할 수 있는 폐해는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문제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 이번 사안에 관해 더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은 정신행동건강분야의 서비스 개선을 위한 진단체계의 기술적 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결정이 우리나라의 정신행동건강서비스·게임산업·게임이용문화·여가문화에 미칠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각자의 시각에 맞춰 고민하고 연구하면 된다. 건강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정을 국민건강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게임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이러한 노력을 왜곡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업계 스스로 게임산업 내 부정적인 면을 해소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며, 건강한 게임 이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면 된다.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차이와 공통점에 근거하여 생산적인 논의와 협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다른 기사 보기]
"중독이면 금단 증상 있어야... 게임 질병 분류, 이해 부족" http://omn.kr/1jk55
한 게임개발자의 쓴소리 "게임 탄압? 논리적이지 않아" http://omn.kr/1jl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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