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

<아스달 연대기>.ⓒ tvN

  
지난 1일 첫 방송을 탄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일종의 판타지 사극이다. 드라마의 무대부터가 '가상의 대륙', '가상의 땅'이다. '아스'라는 가상의 지명이 이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이다.
 
고려시대 이승휴의 역사 서사시 <제왕운기>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사달산과 발음이 유사한 아스가 <아스달 연대기>의 공간적 무대다.
 
그런데 우리 고어에서 '아사'와 '아스'는 같은 말이었다. 역사학자 겸 독립투사인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아사달은 이두로 '아(아래 아)스대'로 읽었다"고 설명했다. 옛날에는 '아사'가 '아(아래 아)스'로 발음됐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고어에서는 소나무를 '스'라 하고 산을 '대'라 했다"면서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 완달산"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아스'는 고조선 땅이었던 하얼빈 완달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스가 가상의 대륙, 가상의 땅으로 설정돼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경우에는, 등장 '인물'이란 표현을 쓰기가 좀 뭣하다. 인류 같지만 인류가 아닌 뇌안탈족이 등장해 사람족과 대결을 펼친다. 드라마 속의 뇌안탈족은 인류의 진화 단계에서 소멸된 네안데르탈인과 명칭이 비슷하지만, 외형상으로 볼 때는 현생 인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혈액이 파란색이고 수면 중에 꿈을 꾼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의 사람족과 다를 뿐이다.
 
또 드라마 속의 뇌안탈족은 인류와 교류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종족이다. 그들은 사람족과 결혼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사람족과 뇌안탈족의 혼혈아를 이 드라마는 '이그트족'으로 명명한다. 이그트족으로 태어난 은섬(송중기 분)이 사람족의 지도자인 타곤(장동건 분)과 더불어 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이끌어가게 된다.
 
단군신화와 비교했을 때, 판타지 요소는 현저히 떨어져
 
  은섬(송중기 분).

은섬(송중기 분).ⓒ tvN

  
<아스달 연대기>가 다루는 공간적 배경은 '가상의 대륙'이지만, 시대적 배경만큼은 가상의 시점이 아니다. 홈페이지에 실린 '기획 의도'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직 국가와 왕을 만나지 못했던 멀고 먼 옛날. 아스 대륙에 세워진 최초의 도시, 최초의 국가, 그리고 최초의 왕! 시원 설화인 단군설화를 재해석하고 판타지적 설정을 첨가하여, 가상의 땅 아스에서 처음으로 나라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각기 다른 모습의 영웅들을 통해 그리려 한다."
 
인류 사회에서 국가가 형성되는 최초의 모습을 단군신화 방식으로 묘사하겠다는 게 드라마의 기획 의도다. 국가가 생기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가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 드라마의 판타지 느낌이 한층 더 강해지지만, 단군신화와 비교한다면 이 드라마의 판타지 요소는 현저히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 느낌은 국가체제가 등장하기 이전 시점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아스라는 가상의 대륙, 가상의 땅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도 생겨나지만, 뇌안탈족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도 생겨난다.
 
 타곤(장동건 분).

타곤(장동건 분).ⓒ tvN

 
가상의 생명체를 등장시켜 인류와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스달 연대기>의 판타지적 요소가 한층 강화되고 있지만, 바로 이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단군신화는 이 드라마를 뛰어넘는 측면들을 갖고 있다.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사람족과 뇌안탈족이 교제해 은섬이란 아이를 낳았다. 그에 비해, 단군신화에서는 환웅과 곰이 교제해 단군왕검을 낳았다. 뇌안탈족은 사람과 똑같이 생겼지만, 곰은 생김새뿐 아니라 모든 게 인간과 다르다. 단군신화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까지 허물어트렸던 것이다. 단군신화의 판타지 요소가 상대적으로 훨씬 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환웅과 곰한테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우리나라를 만들었다'는 신화를 입에서 입으로 전했으니, 고조선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얼마나 판타지에 가까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들도 신화 속의 환웅과 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고대 역사가들은 신화 형식으로 역사를 기술했다. 춘추전국 이전의 주나라 행정체계를 기록한 <주례>에 따르면, 고대의 역사가들은 기본적으로 점치는 사람들이었다. 무당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에 고용돼 역사를 기록했던 것이다.
 
현대 종교인들이 상징적 화법을 자주 쓰는 것처럼, 무당 기질을 가진 고대 역사가들도 상징적 언어로 역사를 기술했다. 고대 역사서가 신화 형식으로 기록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고조선 사람들도 자기 시대 역사가들이 점쟁이 혹은 예언가라는 점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단군신화 속의 환웅과 곰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환웅으로 상징되는 종족과 곰으로 상징되는 종족의 정치적 결합이 있었고, 거기서 단군이라는 명칭의 통합적 지도자가 배출됐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환웅과 곰이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실제의 인간과 실제의 곰이 결혼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자꾸 그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에 비해 고조선인들의 사유 구조가 훨씬 더 판타지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용어의 등장

우리는 단군신화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찾아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의 아버지 환인이 훗날 고조선이 될 땅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우리는 단군신화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찾아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스케일이 훨씬 더 큰 이념이 들어 있다. 바로, 인간과 동물의 화해 및 결합을 전제로 하는 이념이다.
 
인간과 곰이 하나가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고조선 사람들의 사유 구조가 판타지에 가까웠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강하게 긋지 않았다는 점도 보여준다.
 
곰이 실제 곰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인간과 곰이 결합해 건국시조가 배출됐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고조선인들의 머릿속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오늘날의 우리 머리에서처럼 명확히 그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고조선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 땅이 인간만을 이롭게 하는 땅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나아가 생명체 모두를 이롭게 하는 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익인간이란 용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세계관을 고조선인들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홍익인간의 '인간'을 다른 글자로 대체하지 않으면 그들의 세계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뇌안탈족의 화해·교류를 다루는 <아스달 연대기>에 비해, 인간과 동물의 화해·교류를 다룬다는 점에서 단군신화는 훨씬 더 판타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판타지적 방식을 통해 단군신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게 있다. 단순히 인간만을 이롭게 하는 이념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전체 생명체를 이롭게 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웅장한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예사롭지 않은 데가 한둘이 아닌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단군신화에 내재된 거대한 정신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나 표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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