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JTBC

 
"나 오늘부터 바람필 거야."

JTBC <바람이 분다>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맥이 풀렸다. 감우성과 김하늘,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두 배우가 아닌가? 로맨스에 강점을 지닌 그들이 함께 출연한다고 했을 때, 예비 시청자들은 감정에 있어 묵직한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각자 전작(감우성은 MBC <키스 먼저 할까요?>, 김하늘은 KBS2 <공항가는 길>)에서 보여준 감동이 채 가시지 않고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기대감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권태'란 주제를 다루는 듯 보였던 도입부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다. 열렬히 사랑했던 남녀가 결혼 생활을 거치며 권태기에 접어든 모습을 <바람이 분다>는 제법 현실감 있게 포착했다. 감우성은 역시 감우성이었다. 그는 생활 연기의 달인답게 짜증, 분노, 신경질 등의 감정들을 실감나게 펼쳐 보였다. 그의 표정과 말투, 억양은 섬세해서 정말 권태기를 겪고 있는 남편 같아 보였다. 

차라리 그대로 권태에 대한 드라마였다면 좋았을 법 했다. 대부분의 부부가 겪게 되는 일인지라 훨씬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의 정체성은 애매모호했다. 난데없이 알츠하이머가 등장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권도훈(감우성)은 아내 이수진(김하늘)이 상처를 받을까봐 그 사실을 숨긴 채 일부러 모질게 대했다. 한편, 수진은 그런 남편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그저 변해버린 도훈에게 서운함을 느껴 이혼 대작전에 돌입했다.

철없는 여자 만들기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JTBC

 
"남편은 묶었고, 아이는 갖고 싶고..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그러니까 <바람이 분다>는 애초부터 '권태기 부부'의 현실적 갈등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남편과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내의 헛심 공방을 다룬 드라마인 셈이다. 거기까지도 좋다. 설득력과 개연성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시청자들은 궁금하다.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 도훈은 왜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숨기는 걸까? <바람이 분다>는 그 결정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아내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라고 둘러대는데, 그 숨김 자체가 수진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이기에 전혀 납득 되지 않았다. 만약 도훈이 수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지 않을까? 남편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지냈던 수진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감수해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인가. 도훈의 행동에는 설득력이 없다. 

<바람이 분다>는 '최루(催淚)'를 위해, 다시 말해 수진의 반성, 후회, 회한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진을 철없는 여자로 만드는 데 온힘을 다 쏟고 있다. 수진은 친구와 장난스럽게 이혼을 궁리하고, 그 방법들을 모색한다.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위장해 도훈을 자극하고, 심지어 자신의 절친에게 남편을 유혹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 모든 행동이 우스꽝스럽고 한심해 보인다. 수진은 정말 이혼을 원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절실함'이 없다. 
 
 기대를 모았던 <바람이 분다>는 시청자의 혹평을 받았다.

기대를 모았던 <바람이 분다>는 시청자의 혹평을 받았다.ⓒ JTBC

 
이때까지만 해도 시청자로서 버틸 힘이 있었다. 그러나 특수분장으로 코를 오똑하게 세워 남편을 속인다는 발상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수진에게 정관수술을 했다고 말해 화를 돋우는 도훈이나, 이혼을 요구하며 오늘부터 바람을 피우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아이는 갖고 싶다고 말하는 수진이나 시청자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없었다. 권태도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고, '알츠하이머'는 또 다시 갈등을 위해 활용되는 장치로 전락했다.

알츠하이머를 통해 인생과 사랑의 눈부신 순간들을 조명했던 <눈이 부시게>를 방영했던 JTBC가 알츠하이머를 이리도 어설프게 다시 꺼내들 줄은 미처 몰랐다. 일말의 기대가 남았다면 역시 감우성의 저력이겠으나, 그의 연기력만으로 드라마의 허점을 채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쉰 살이 된 감우성이 38살을 연기한다는 이질감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김하늘도 자신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어색해 보인다.

<바람이 분다>는 첫회 시청률 3.6%에서 2회에선 4.0%로 소폭 상승했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과연 3회부터 지금의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어 엎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당분간 어설픈 특수분장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고, '재산 상속'이라는 현실감 없는 문제가 계속 시청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터라 전망이 그리 밝아보이진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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