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미국 시카고 신임 시장으로 연방 검사 출신 로리 라이트풋(56∙민주당)이 당선되었다. 세간에서 그의 당선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라이트풋은 흑인 여성이며,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고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팝 음악계에는 자넬 모네(Janelle Monae)가 있다. 자넬 모네는 흑인 여성이자 '범성애자'(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관계없이 사랑하는 성적 지향)로 스스로를 규정한다(그녀는 현재 <토르 : 라그나로크>의 발키리 역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테사 톰슨과 열애 중이다).
 
자넬 모네는 단순히 소수적 정체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거둔 예술적 성취다. 데뷔 앨범부터 심상치 않았다. 디스토피아를 구원하고자 하는 안드로이드 신디 메이웨더(Cindi Mayweather)로 분한 것이다. 두 번째 앨범에서도 그녀의 컨셉 게임은 계속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에리카 바두(Erykah Badu), 그리고 고인이 된 거장 프린스(Prince)와의 멋진 호흡을 들려주기도 했다.
  
 자넬 모네의 < Dirty Computer >

자넬 모네의 < Dirty Computer > ⓒ 워너뮤직코리아

 
올해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후보로 선정된 3집 < Dirty Computer > 앨범도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다. 2집까지 계속되었던 '신디 메이웨더'라는 콘셉트를 제치고, 더욱 과감하게 나아갔다. 훌륭한 프로듀싱은 물론,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의식이 얹혀 있었다.

'PYNK'에서는 그 어떤 곡보다 노골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노래한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들은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옷을 입고 있다. 지금까지 억압되었던 섹슈얼리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다. 'Django Jane'에서는 여성을 일정한 틀에 가둬 놓았던 남성들을 저격한다.
 
"맨스플레인 따위는 종이 접듯이 접어 버리지"
"그들이 나에게 너무 남자 같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
- 'Django Jane' 중


자넬 모네는 배우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영화 배우 자넬 모네에게 2016년은 가장 중요한 해였는데, 그녀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 두 작품이 박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으로 열연했다.
 
 2017년 3월 국내 개봉한 영화 < 히든 피겨스 >의 주연을 맡은 자넬 모네

2017년 3월 국내 개봉한 영화 < 히든 피겨스 >의 주연을 맡은 자넬 모네 ⓒ 20세기폭스코리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작 <문라이트>(배리 젠킨스 연출)에서는 테레사 역할을 맡았다. 극 중에서 테레사는 세상으로부터 박수를 받지 못 하는 일(창부)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다운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고개 숙이지 말라. 이곳에는 사랑과 자부심만이 있다"며 샤이론을 다독이는 모습은 많은 영화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 두 작품만 보고도 자넬 모네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연기 활동에 임하는지 미루어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그녀는 흑인음악 시상식인 BET 뮤직어워드에 참석했다. 이날 자넬 모네가 입은 드레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드레스 코드로 택했기 때문이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힙합계를 돌이켜보면, 무지개색은 그 어떤 색보다 눈에 띄는 것이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젊은 남녀, 논바이너리, 게이, 이성애자, 퀴어, 소외받거나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로 괴롭힘당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당신들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 자넬 모네(롤링스톤 지와의 인터뷰 중)

 
자넬 모네는 단 한 순간도 침묵한 적이 없다. 그래미 시상식과 여성 행진(Women's March)부터 코첼라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서는 곳에서 늘 여성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녀는 노래와 영화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무지개색 드레스를 입는 것으로 백 마디 말을 대신했다. '흑인 여성 퀴어'의 정체성을 오롯이 자신이 걷는 길마다 아로새겨 놓았다. 이러한 자넬 모네의 '블랙 걸 매직'(Black Girl Magic)의 행보는 관심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겠다. 그녀의 행보는 보이지 않는 '마이너리티'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길이니까.
자넬 모네 그래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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