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 CJ 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빈부간의 계급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그 방식이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대비된다.

<설국열차>의 배경은, 지구가 얼어붙어 열차 탑승자들만 목숨을 건진 빙하기다. 이 열차 내에는 계급구조가 존재한다. 앞 칸으로 갈수록 유산계급, 뒷칸으로 갈수록 무산계급이다. 꼬리칸은 춥고 배고프며, 앞 칸은 극도로 호화롭다. 남궁민수(송강호 분) 등은 이 구조에 정면 항거한다. 꼬리칸 출신들인 그들은 반란을 일으키며 앞으로 전진한다. 이들이 맨 앞 칸까지 차지하는 과정을 영화는 보여준다.

<설국열차>의 계급 구조가 열차라는 수평적 차원을 전제로 하는 데 반해, <기생충>의 그 구조는 반지하 연립주택과 호화 대저택이라는 수직적 차원을 전제로 한다.

반지하에서 최악의 극빈 생활을 하던 네 가족이 대저택 침투를 기도하게 된 사연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대저택에 기생할 운명을 타고 났는지, 네 가족 이름에는 '기'나 '충'이 반드시 들어간다. 네 가족의 어머니는 충숙(장혜진 분), 아버지는 기택(송강호 분), 딸은 기정(박소담 분), 아들은 기우(최우식 분)다.

반지하 네 가족의 투쟁

네 가족은 대담하고도 저열한 계략을 써서 대저택 가사사용인들을 내몰고 자리를 차지한다. 대저택 부부의 두뇌가 '심플'하다면 네 가족은 '스마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네 가족은 자신들이 가족관계라는 것을 숨기고 대저택으로 '수직 상승'한다. 집은 여전히 반지하이지만, 대저택을 드나들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성취감에 도취된 네 가족은 주인 부부의 '심플함'을 비웃으며 자신들이 대저택을 '접수'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상은 잠시 뿐. 쫓겨난 가사사용인의 남편이 대저택 지하에 수년째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지하 공간에는 복도 및 건물 외부의 조명등과 연결되는 차단 장치가 있다. 거기서 밥도 먹고 책도 읽으며 살아온 문광 남편은 이따금 무료할 때마다 조명등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곤 한다. 조명등이 깜빡이는 것은 대저택에 누군가 기생하고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반지하 네 가족은 지하실 남자와의 투쟁을 피할 수 없다. 대저택에 남으려면 동질적인 무산계급과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영화 스토리는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그 옛날, 루소의 한 마디
 
 반지하 연립주택의 네 가족.

반지하 연립주택의 네 가족.ⓒ CJ 엔터테인먼트


이 싸움에서 누가 승리하든, 반지하네 가족이나 지하실 남자 중에서는 대저택 주인이 배출되기는 힘들다. '심플'한 대저택 부부에 비해 그들이 훨씬 스마트하고 훨씬 힘 세다 해도 그런 일은 발생하기 힘들다. 

대저택 가족들은 지능과 체력 면에서는 열세이나 법률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군대와 경찰을 배경으로 한 공권력이 그들의 소유권을 지켜주고 있다. 반지하 가족이나 지하실 남자보다 훨씬 스마트하고 훨씬 강력한 국가권력이 지지해주는 한, 대저택 가족의 소유권은 안전하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차분하고 공정한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바라보면,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강자들의 폭력과 약자들의 억압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중략) 인간들 사이에서 지혜보다는 우연에 의해 더 자주 발생하며 강약이나 빈부라고 불리는 그 외적인 관계들만큼 불안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인간의 제도는 언뜻 보기에 무른 모래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 제도라는 건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건물 주위의 먼지와 모래를 털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세워진 견고한 토대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토대를 잘 보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빈부격차가 지혜 같은 개인적 역량보다는 그 외의 요인들에 의해 형성되는 일이 많다고 루소는 말했다. 어떤 필연적이고 지당한 이유로 소유권이 정립되는 게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대저택을 '접수'한 반지하 가족들은 대저택 부부를 우습게 생각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대저택 가족의 소유권이 '무른 모래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점을 영화는 보여준다. 주인 부부의 소유권이 '견고한 토대' 위에 있으며, 그들의 소유권을 보호해주는 방법으로 법과 제도가 짜여져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현대 세계의 경제적 지배층인 부르주아들은 이전 시대 지배층보다 교묘하다. 그들이 자기 재산을 지킬 목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개념이 있다. 바로, 신성불가침의 천부인권이라는 재산권 개념이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경제적 지배층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들이 재산권을 신성불가침의 천부인권으로 확립시켰다는 점은 많은 책들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다. 일례로, 성낙인 서울대 교수의 <헌법학>도 "근대 입헌주의 헌법에서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로서 전(前)국가적 천부인권으로 이해되었다"고 말한다.

부르주아들은 재산권을 국가에 선행하는 천부적 권리로 개념화했다. 군주와 국가권력이 건드릴 수 없는, 하늘이 부여해준 권리로 만들어놓았다. 그런 관념을 명문화한 대표적인 게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다.

흔히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불리는 이 선언 제17조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인 소유권은, 합법적으로 확인된 공공 필요성에 따라 사전에 정당한 보상 조건 하에서 그것을 명백히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재산권은 천부인권이라는 대전제 하에 프랑스 혁명 이후의 세계 각국은 재산권을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국가제도를 조정했다. 20세기 들어 보편화된 이 현상은 유산계급의 재산권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는 쪽으로 국가가 구성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현대 국가의 권력은 전체 부르주아의 공동 관심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말할 만했던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므로, 반지하네나 지하실 남자의 역량만으로는 대저택 부부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의 대저택 부부.

영화 <기생충>의 대저택 부부.ⓒ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반지하네나 지하실 남자가 대저택 가족을 극복하기는커녕 그에 기생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인집이 흘리는 떡고물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따금 켜지는 조명등은 그 집에 그런 존재가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신호에 둔감하다. 자신들이 기생적인 존재라는 점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구조적 모순을 깨닫지 못하기에, 그것을 거부하거나 대항하려 하지 않는다.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과 달리 이들한테서는 혁명적 패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100년간의 한국 역사만 보더라도, 대중이 그런 신호에 얼마나 무감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1919년 3·1운동 뒤로 이 땅에서는 시민혁명이 수시로 발생했다. 시민의 궐기로 쫓겨난 대통령이 둘이고, 그 와중의 내부 분열로 피살된 대통령도 하나이고, 헌법을 마지못해 바꿔야 했던 대통령도 하나다. 대통령 12명 중에서 33.3%인 4명이 시민혁명의 타격을 입은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정권을 전복하거나 타격을 주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건만, 이 세상의 본질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정치적 민주화는 상당 정도 향상됐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다람쥐 쳇바퀴 신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반지하나 지하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처럼 이 시대 민중들은 수차례의 시민혁명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100년간 한국의 시민혁명은 '가성비 낮은 시민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혁명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사회가 좀처럼 바뀌지 않은 것은 지난 백년간의 시민혁명이 주로 정치적 지배층만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보다 상위인 경제권력을 그대로 둔 채, 번번이 정치권력만 교체한 뒤 무기를 내려놨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기 힘들었던 것이다. 민중이 기생적인 위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영화는 은근히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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