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심원들> 포스터

영화 <배심원들>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모친을 살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 해당 사건은 증거와 증언이 충분하고 자백까지 받아낸 터라 사실상 양형 결정만 남은 상태다. 2008년 이의 판결을 위해 국민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초의 재판이 열렸다. 이른바 국민참여재판이다. 이를 위해 사는 곳도,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모두 다른 보통사람 8명이 무작위로 선발된 대한민국 최초의 배심원단이 꾸려진다.

하지만 양형 결정만 남은 상태에서 재판부는 돌발 상황과 맞닥뜨려야 했다. 피고인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8명의 배심원들은 양형 결정이 아닌 피고인의 유무죄를 다퉈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국민참여재판'이란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2007년 6월 1일 공포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2008년 1월 1일 시행되었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보통사람들의 조금은 특별한 재판 이야기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국민참여재판으로 기록된 실재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만들어진 작품이다. 모친 살해를 자백했던 피고인이 법정에서 급작스레 결백을 주장하게 되고, 이에 대한 재판부와 배심원들의 판단 과정과 그에 따르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 출신의 배심원들과 함께 재판을 꾸려나가야 하는 재판부의 입장은 곤혹스러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온갖 난관 속에서도 관록이 있고 원칙주의자로 통했던 재판장(문소리)은 배심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비교적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이끌어나간다. 그녀는 최초가 부여하는 중압감을 이내 떨쳐내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소신껏 재판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도맡는다.

사상 처음으로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들 역시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으로 인해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8인 8색의 배심원들 대부분은 그저 재판을 마치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개인 발명가 권남우(박형식)의 태도는 사뭇 달리 다가온다. 의문점이 있으면 끈질기게 질문하고 미심쩍은 사항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일삼는 등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재판에 임했기 때문이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그의 태도에 동화된 다른 배심원들 역시 처음에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자신들의 결정과 행위에 따르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인식하게 되면서 형식적이었던 태도가 점차 진지한 형태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영화는 배심원이 된 보통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을 스크린 위에 차분히 담아냈으며, 최초로 배심원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재판부의 혼란스러운 모습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법과 원칙 그리고 상식을 묻다

재판부는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보다 극적으로, 그리고 보다 안전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다. 배심원들이 재판에 진지하게 임하게 되면서 재판부는 사상 최초로 배심원단과 함께 현장 검증 참여를 결정하는 등의 돌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덕분에 재판은 더욱 지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으로 똘똘 뭉친 재판장은 기꺼이 배심원단의 평결을 기다리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 법의학자나 법조인들이 관행에 따라 일을 답습하려 하고 구태의연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행태가 일부 드러나면서 배심원들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의문을 품음으로써 재판을 원점으로 되돌리거나 기존 결과를 뒤집어버리는 장면은 관객에게 전복의 쾌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영화 <배심원들>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꼿꼿하게 소신을 지키면서 배심원들이 올바른 평결을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재판을 최대한 공정한 방향으로 이끌었던 재판장 문소리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법원장으로 등장,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권해효의 맛깔스러운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박형식을 비롯한 8명의 배심원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팔색조 연기가 더해지면서 극이 한결 풍성해지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 <배심원들>은 빠른 판결을 내리려는 재판부와 법은 몰라도 상식을 지키고 최대한 신중을 기하려는 배심원단의 묘한 갈등 속에서도 법과 원칙에 충실하고 무엇보다 상식에 기대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며 찾아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해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봉건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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