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의 시나리오를 ‘유출’하며 놀았던 누리꾼들의 행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의도적이다.

<걸캅스>의 시나리오를 ‘유출’하며 놀았던 누리꾼들의 행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의도적이다.ⓒ CJ 엔터테인먼트

 
'장르란 무엇인가'라는 딱딱한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해보자. 영화 분야에서 장르(genre)는 '플롯, 등장인물의 유형, 세트, 촬영 기법, 그리고 주제 면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특징적으로 유사한 영화들의 그룹'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비슷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를 비슷한 장르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물론 창작가라면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예술가적인 역량일 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을 지겨워한다. 극장에 앉아 뻔히 이후 이야기가 예측되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큼 고역인 것도 없다. 이런 부분을 역이용해 생겨난 인터넷상에서의 문화가 바로 '시나리오 유출 놀이'다.

비슷한 장르에는 공통되는 서사구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소재로 누군가 영화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가상 캐스팅과 가상 줄거리를 짜 보는 것이다. '시나리오 유출 놀이'의 핵심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설정, 수없이 많이 본 배우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가상의 시놉시스를 보고 감탄한다.

'시나리오 유출 놀이'의 부적절성

 
 <걸캅스>는 개봉 전부터 조롱과 비난에 직면했다.

<걸캅스>는 개봉 전부터 조롱과 비난에 직면했다.ⓒ 왓차 갈무리

 
지난 9일 개봉한 <걸캅스> 역시 개봉 전 '<걸캅스> 다 본 것 같은 시나리오'라는 식으로 '시나리오 유출 놀이'의 타깃이 되었다. 보통 시나리오 유출 놀이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 가상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개봉 예정인 영화가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제목과 줄거리가 누리꾼들로 하여금 시나리오 유출 놀이의 대상으로 삼고 싶게 한 듯하다.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에게 밀려 승진을 못한 여형사 라미란과 이성경은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비공식 수사에 나선다. 알고 보니 자신들을 무시한 남자 간부들이 연루된 범죄였던 것. 결국 둘이서 문제를 해결했고 뉴스에는 '남성 카르텔'의 민낯을 드러낸 여성 경찰을 칭찬하는 보도가 연일 나온다."

영화를 본 사람이 영화의 줄거리를 읊는 것 같지만, 아니다. 해당 게시물이 올라온 것은 <걸캅스>가 개봉하기 이전이었다(해당 내용은 실제 <걸캅스> 줄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문제는 이 게시물에 조롱하는 의미가 다분히 담겼다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대림동 여성경찰 논란'에서도 확인됐듯, 여자경찰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중엔 부적절한 것들이 상당수다. 가령 이런 것. 여자 경찰은 범죄자를 잡기엔 힘이 부족하고, 옆에서 구경이나 하며 시험도 쉬운 직종 등등. 이미 '대림동 여성경찰 논란'이 발생했을 때 표창원 의원 등 전현직 경찰들이 이런 시선을 사실과 다르고 옳지 않다는 의견을 냈듯, 이는 일종의 편견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편견을 바탕으로 한, 조롱의 의미가 다분히 담긴 '시나리오 유출 놀이'가 성행했다는 점이다. <걸캅스> 개봉 전부터 "여경 둘이서 범죄자를 잡다니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인가요?"라는 조롱 섞인 댓글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이 '시나리오 유출 놀이' 의도 또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자... 대체 누구인가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군가?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군가?ⓒ CJ 엔터테인먼트


물론 <걸캅스>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사실 경찰 버디물은 참신한 소재도 아니고, 이미 이런 종류의 액션영화는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걸캅스>의 경쟁력이라 한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스크린 안으로 불러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잘' 드러냈느냐는 것일 테다.

여성 대상 범죄는 늘어나고,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난망한 현실을 <걸캅스>는 적나라하게 다룬다. 미영(라미란 분)과 지혜(이성경 분)는 특출한 영웅이 아닌, 한 조직에 몸담고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이자 생활인이다. 주어진 조건이 열악하고 한계에도 많이 부딪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려고 영화는 노력했다. 성공적이기만 하지 않고 그렇다고 실패하는 것만도 아닌 우리네 삶처럼. 경찰도 그런 존재일 테니까.

다만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무거운 분위기를 해소시키기 위해 중간 중간에 넣어놓은 웃음 포인트를 넣어놨지만, 좀 아쉽다. 예를 들면 갑자기 잠자다가 깨어나서 제대로 된 수사를 지시하는 성동일의 등장이라거나, 괴팍하고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민원실장(엄혜란 분)의 행동 같은 것들 말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묶여 있는 지혜와 미영, 지철(윤상현 분)이 탈출하기 위해 "비벼!"라고 외치며 미친듯이 움직이는 모습 역시, 개인적으론 굳이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그렸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문제는 위와 같은 흠결들이 주연이 여성이라서 생겼다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 여성이 연기를 할 능력이 없고 영화는 남자들만 찍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걸캅스>의 단점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여성 투톱을 기용한 탓인 것처럼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영화를 평가하기도 했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소수자를 전면에 배치해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일부에서는 왜 굳이 소수자를 주연으로 쓰느냐는 말이 나온다. 여성 주연의 영화는 "성별 따지지 말고 영화는 영화로만 보자"는 말도 듣는다. 그런데 이건 이상한 말이다.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군가? 여성이 주연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문제라는 식으로 폄훼하고 '별점 테러' 하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않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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