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 아메드>로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르덴 형제. 왼쪽부터 장-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뤼크 다르덴(Luc Dardenne).

영화 <영 아메드>로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르덴 형제를 영화제 기간 중 <오마이뉴스>가 만났다. 왼쪽부터 장-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뤼크 다르덴(Luc Dardenne). ⓒ 이선필

  
"우린 한 사람이면서 눈이 네 개다."

이젠 고유명사처럼 불리곤 하는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는 근 40년간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로 우리에게 일관된 질문을 던져왔다. 세상의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면, 다들 드러내 놓기를 꺼리는 불편한 사실을 제시한 후 함께 고민하도록 한다.

불법 체류자를 사용자 시점에서 바라본 <약속>(La Promesse, 1996), 자신의 아들을 죽인 가해자를 고용하게 된 한 아버지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 <아들>(2002) 등. 다르덴 형제는 그렇게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깊은 성찰로 감동을 주곤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합쳐 벌써 이들이 선보인 작품이 19편. <로제타>(1999)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이들은 칸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2년 전 <언노운 걸>을 들고 온 다르덴 형제가 올해 <영 아메드>라는 작품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두 번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들이었기에 수상 타이틀보다 더 관심이 간 건 변하거나 지치지 않는 이들의 작업 방식이었다. 대부분 그랬듯 이들은 헨즈헬드(손으로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하는 기법)와 낯선 배우를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또 하나의 진실을 우리 눈앞으로 소환했다. 

왜 <영 아메드>였나
 
 영화 <영 아메드>의 스틸컷

영화 <영 아메드>의 스틸컷 ⓒ LES FILMS DU FLEUVE


작고 마른 체구의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는 언젠가 자신이 알라의 거룩한 뜻(성전)을 시행할 장본인이 될 것을 꿈꾼다. 동네 형인 이맘(오드마네 마우멘)에게 자신이 그 후계자인지를 묻고,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을 여자라는 이유로 흉기로 찌르려고까지 한다. 한창 뛰어놀고 이성에도 마음을 줄 시기에 그를 붙잡고 있는 건 종교적 신념. <영 아메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기미를 보이는 이 어린 인물을 통해 종교와 맹신, 나아가 모두가 두려워하는 테러리즘에 대해 묻는다. 

"이슬람교에 심취한 10대 소년을 떠올리기 전까지 이런 영화를 할 거라고는 우리도 생각지 못했다"고 장-피에르 다르덴이 운을 뗐다. 제72회 칸영화제 기간에도 프랑스 리옹에선 폭탄 테러가 있었다. 유럽 사회에서 광신도와 테러 문제는 그만큼 뜨거운 감자다. 이 두 사람이 바라본 테러리즘의 본질부터 짚어야 했다.

"아메드라는 캐릭터를 떠올리게 됐을 때 예전 우리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고, 지금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이슈, 즉 종교에 대해 말할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종교는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하지만 맹신한다면 사람을 완전히 변질시키기도 한다. 삶의 여러 가치를 잊게 만든다. 맹신은 우월감과 권력에 대한 망상을 심어준다. 이맘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고 순교자가 된 사촌처럼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지경까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장-피에르 다르덴)
     
동시에 뤽 다르덴은 "아메드가 소년이고 인생은 길다는 점을 강조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 아메드>의 결말 부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그리 기분이 무겁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아직 살아있고, 삶에 대한 의지가 있고, 이성 친구와 뽀뽀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는 소년이다. 모든 것들이 그의 내면을 흔들어 맹신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완성된 영화의 엔딩을 떠올려냈다.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가. 그것이 우리의 영화가 던지고자 했던 화두다." (뤽 다르덴)  

"우리 둘 다 무슬림이 아니기에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지(웃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을 다수 접한 심리상담사와 심리학자들과 이야기했다. 아메드가 동네 형에게 영향을 깊이 받는 소년이고 이 세계를 순결한 이슬람교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양분하는 성향이 있었기에 조사를 많이 해야 했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14~15세 때 나치의 무장친위대 소속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그 시절을 반문하면서 유혹당했기 때문이라 얘기했다. 그게 바로 맹신이다. 아메드 역시 유혹당한 것이다. 가족 환경에 있어서 유혹당하기 쉬운 조건이었지만 그의 형이나 누나는 유혹당하지 않았다. 아메드만이 영혼을 빼앗겼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게 증오를 심어주는 사회적인 조건들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경제나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수십 년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를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해서 싸우거나 하는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장-피에르 다르덴)   


변화의 가능성
 
 영화 <영 아메드>의 스틸컷

영화 <영 아메드>의 스틸컷 ⓒ LES FILMS DU FLEUVE


아메르 역의 이디르 벤 아디(13)는 다르덴 형제의 전작이 그랬듯 생소한 인물이다. 앳된 얼굴로 신념을 시행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독들은 "일종의 가능성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파브리지오 롱기오 같은 다르덴 형제 작품에 종종 나왔던 페르소나 같은 배우도 있지만 많은 작업에서 이들은 일반인에 가까운 생소한 배우들을 발굴해 주제의식을 전하곤 했다.

아메르 역을 위해 600명 정도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인터넷, 브뤼셀 쪽 학교, 주민단체 등을 뒤지며 배우를 모집했다"며 "이디르가 최적이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부모님께 함께 뵙자고 제안했다. 일주일 뒤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뤽 다르덴이 전했다. 
     
"원랜 좀 더 나이가 든 캐릭터들을 데리고 종교를 벗어나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리곤 했다. 테러로 인한 수많은 죽음들, 그리고 뒤틀린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런 허구성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때가 찾아오곤 한다. 픽션이라고 현실감 없는 캐릭터를 묘사하면 그 주제를 진지하게 다룰 수가 없다. 그래서 유아기를 벗어나서 청소년기로 막 접어드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시기에 사람은 강렬한 아이디어나 사상에 사로잡히기 쉽기에 영화의 주제와 잘 맞았다. 또한 이 나이의 사람은 아직 변화의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뤽 다르덴) 

"우리는 어느 가족, 누군가의 이야기를 만든다. 관객이 공감하기 쉽게 우리가 살고 있을 법한 작은 마을 이야기를 다룬다. 옆집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 말이다. 우린 폭발물이나 AK 자동소총이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테러를 그리지 않는다. 아메드가 작은 칼을 손에 쥐었을 때 살인의 성공 여부랑 별개로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테러처럼 끔찍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항상 사소한 일에 집중하려 한다. 누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장-피에르 다르덴) 

이들의 말처럼 무겁고 끔찍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지만 동시에 <영 아메드>는 비관적이지 않다. 인터뷰 말미 두 감독은 "지나친 낙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개인적인 의견은 우리가 감독으로서 내놓은 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낙관할 수만은 없다. 맹신교도가 그 신념을 벗어나는 건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벨기에와 파리에서 테러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그 성향이 유지되거나 더 강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이고 싶었던 것도 바로 희망이다. 인간은 종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상의 감옥에서도 그렇고." (장-피에르 다르덴)

꾸준히 그리고 왕성하게 이들이 내놓는 작품은 곧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대한 헌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영화가 이 사회에 영향을 적잖게 끼치기도 했다. 지난 23일 한국에서 20년 만에 개봉한 <로제타>의 경우 벨기에 청년실업정책인 '로제타 플랜'이 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물론 이후 보완 미비로 폐지되긴 했지만 영화가 현실에 좋은 영향을 준 예다. 그런 점에서 다르덴 형제는 영화의 힘을 믿는 '영화주의자'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영화의 힘을 믿는다. 상업적으로 개봉하지만 교육적 방향에도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우리 영화가 다룬 주제로 선생님과 학생이, 사람들이 토론하길 원한다. <영 아메드>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스스로를 가뒀던 소년이 거기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지만 질문하고 그 답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엔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 같다. 두려움이 없다면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뤽 다르덴)  
 
 영화 <영 아메드>로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르덴 형제. 왼쪽부터 장-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뤼크 다르덴(Luc Dardenne).

영화 <영 아메드>로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르덴 형제.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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