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EyeSteelFilm

 
2017년 3월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서 안경 몰카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성이 몰카카 달린 안경을 쓴 채 사인을 요구했고, 그의 안경을 수상하게 여긴 멤버 예린이 이를 찾아낸 것이다. 당시 사인을 받을 땐 개인적인 촬영은 금지한다고 공지를 했는데, 이걸 어기고 몰래 촬영하다가 걸린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당시에 예린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팬이 아이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인데 너무 과민반응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일부에선 '아이돌이라면 감수해야 하는 정도의 일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예린이 겪은 사례 외에도 아이돌과 관련된 일들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도대체 아이돌이 뭐기에?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은 평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아이돌 산업이 주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는 아이돌에 열광하는 일본 사회를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유사 연애 대상으로서의 아이돌

다큐는 2010년에 데뷔한 히라기 리오(Hiiragi Rio)의 여정을 따라 일본 사회의 아이돌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리오는 1994년 생으로, 16살에 데뷔를 했다. 그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리오는 아이돌이 가수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훈련'하는 리오 곁에는 '리오 브라더스(Rio Brothers)'가 있다. 속된 말로 '오빠부대'다. 리오를 응원해주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도록 힘쓴다. 거의 매니저급인데,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연령대가 좀 높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리오 브라더스에 합류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돈과 시간을 오롯이 리오만을 위해 쏟아 붓는 것이다. 

오니시 모토히로 아사히신문 기자는 '진짜 사람을 대면하고 싶은 욕구'가 현실에서 아이돌의 팬을 자처하는 이유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악수회'다. 다큐에는 한 아이돌 그룹의 악수회 장면이 나오는데, 매니저 혹은 행사 진행자로 보이는 사람이 스톱워치를 들고 시간을 재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팬들은 멤버들과 악수를 하며 제한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지나면 옆으로 이동해야 한다. 

경제학자인 사카이 마사요시(Sakai Masayoshi)는 악수회에는 전통적으로 성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도중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남성을 진행자가 제지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악수회를 연 이상 생길 수 있을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접촉은 금지한다는 암묵적인 선언을 통해 '안전한 회색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사카이 마사요시는 아이돌에 열광하는 일본 문화를 두고 오랜 기간 유지된 경기 침체, 그로 인한 자존감 하락을 원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경기는 지속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었지만 아이돌 산업의 규모는 점점 커져 연간 10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내는 중이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EyeSteelFilm


업계 관계자는 이런 악수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양새다. 엔터테인먼트 웹진 중 하나인 <도쿄 걸스 업데이트>(Tokyo Girls' Update)의 부서장을 맡고 있는 츠라미 이타루(Tsurami Itaru)는 아이돌은 팬이 잘생겼든 못생겼든, 돈이 많든 적든간에 편애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팬 입장에선 경쟁을 할 이유도, 거절당할 위험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확실히 아이돌 문화가 한국보다 더 많이 발달되어 있는 일본인만큼, 다큐 속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뻘의 남성 팬들이 보이는 헌신적인 관심은 '덕질' 그 이상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한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만나기 전에는 연애를 해 봤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사회의 비판이 없을 리 없다. 특히 페미니스트의 아이돌 문화 비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저널리스트 기타하라 미노리(Kitahara Minori)는 청순한 소녀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아이돌 팬을 비판할 때마다 그들이 내놓는 논리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노리는 아이돌 팬들이 이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그건 그들이(여성 아이들)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소비되는 건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건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저상장 사회의 문제적 선택,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EyeSteelFilm


다큐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아이돌인 AKB48의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 내에서도 정상급 아이돌 그룹인 AKB48은 매년 활동할 멤버를 뽑는 선거를 치른다. 팬들은 300명의 멤버 중 좋아하는 멤버에 투표하고 선거에서 뽑힌 80명이 1년간 대표로 활동하는 시스템이다. 미노리의 표현을 빌리면, 알고 싶지 않아도 AKB48의 선거 소식은 매번 들려온다. 미노리는 선거를 치러 활동할 멤버를 뽑는 것 자체가 '여성은 행복하려면 남성의 사랑(선택)을 받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사회학자 하마노 사토시(Hamano Satoshi)는 "15년 전이었다면 보통 연애를 하거나 성 경험이 있었을 대학생들도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다큐에는 AKB48의 팬인 대학생이 나오는데, 그는 "연애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또 자신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데에는 연애감정도 어느 정도 있다고 인정한다.  

극단적인 표현인 듯하지만 사토시는 "지금 일본은 연애해 봤자 득 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취직도 안 되고 애 낳기도, 키우기도 힘드니 차라리 아이돌 '덕질'에 시간과 돈을 쏟자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N포세대'와 비슷해 보인다.

재밌는 사실 하나.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구글에 하마노 사토시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2013년 <경향신문>에 AKB48 열풍을 보도한 기사가 나왔다. 그 중에 사토시가 AKB48의 앨범 140장을 구매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사회학자도 빠져들 만큼 아이돌은 일본 사회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 스틸컷ⓒ EyeSteelFilm


다큐는 리오를 중심으로 일본 아이돌 문화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이 있다. 나이가 어린 경우도 정말 많았다. 한국 아이돌 지망생 중에도 어린 나이에 소속사에 들어가 10년 넘도록 연습생 신분으로 사는 이들이 있다. 이런 걸 볼 때 아이돌을 한다는 건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AKB48의 총선거를 연상시키는 <프로듀스 101>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연습생을 오래 했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한 20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일본의 많은 '소녀'들은 오늘도 대중 앞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도쿄 아이돌스>는 일본의 아이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아이돌 개개인이 유사연애 대상이자 성적인 상품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비판한다. 한국 역시 아이돌 산업이 팽창하고 K-pop이 문화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이것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주체적인 개인으로 존중하는 시선이 부족하다면 '안경 몰카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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