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팀.

영화 <기생충> 에서 기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 ⓒ CJ ENM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강호 형과 함께 작업하면서 친정집에 온 느낌이었다."

600억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 이후 2년 만에 <기생충>을 연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까지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말이었다. <살인의 추억> 이후 <괴물> <설국열차>까지 배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은 햇수로 약 18년간 영화적 동지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단순히 세월의 힘만은 아니다. 지난 22일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송강호와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이 품고 있는 힘과 영화적 성취에 대해 한껏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이 생각난다"며 <기생충>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이선균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라 말했다.

"제겐 <살인의 추억>에서 느꼈던 게 <기생충>에 담겨 있었다. 물론 그 내용과 설정은 전혀 다르지만, <살인의 추억>이 성취해낸 리얼리즘이 있잖나. 거기에서 좀 더 철학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성숙한 게 아닌다 싶다. <기생충>은 봉준호의 진화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찬욱, 홍상수 감독 등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일으킨 주역들 이후로 한국영화 수준이 변화한 걸 확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송강호)  

"구둣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지리멸렬>(봉준호 감독의 초기 단편)을 처음 봤다. 그 이후 <살인의 추억> 등을 보면서 연기의 꿈을 키웠다. 마치 박찬호를 보며 아이들이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듯 제겐 봉준호 감독님이 그런 존재다. 더 많은 꿈을 꾸게 하고, 계획을 세우게 한." (이선균)

 
 영화 <기생충> 팀.

영화 <기생충> 에서 박 사장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 ⓒ CJ ENM

 
자존감의 문제

<기생충>에서 두 배우는 각각 반지하 방에 사는 네 식구의 아버지 기택과 자수성가 해 큰 부를 이룬 박 사장 역을 맡았다. 경제적으로 하층이면서 적당히 뻔뻔하고 적당히 동정심을 가진 기택(송강호)은 큰아들 기우(최우식)의 도움으로 박 사장(이선균)의 운전기사로 취직한다. 이후 그의 아내 충숙(장혜진)까지 박 사장 가사 도우미로 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하에서 저택으로, 또다시 저택에서 지하로.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가 기차를 통해 뒤에서 앞으로의 수평적 구도를 택했다면, <기생충>은 수직적 구조로 영화적 메시지를 전한다. 가장 겉으로 드러나는 건 경제 계층 문제다. 배우들에게 이 점을 물었다.

"표면적으로 계층 문제로 보이지만 전 이렇게 해석했다. 인간의 자존감 붕괴로 봤다. 박 사장이 기택을 향해 어떤 지하실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냄새라는 게 눈에 보이진 않잖나. 본인들 스스로 그런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비극적인 사실이지. 보이지 않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잣대를 들이댄다. 그래서 계층보단 존중과 자존감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기생충> 보셔서 아시겠지만, 특별한 악인이 없다. (박 사장 집에서 쫓겨난) 기사를 심지어 기택이 걱정하잖나. 악인에 대한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어떤 자존감과 상대방을 평가하는 잣대에 대한 이야기로 봤다." (송강호)

"저 역시 <설국열차>는 수평적 이야기고 이건 수직적 관계를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잖나. 같은 나라에서 그 좁은 땅에서 살고 있지만, 누군가와는 잘 어울리고 또 다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두 이질적 가족이 뭉칠 때 나오는 불협화음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제가 연기한 박 사장은 계획대로 모든 걸 딱 해내면서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간 인물이다. 어떤 강박증이 있지. 계획한 건 지켜야 하고, 그래서 누군가가 박 사장이 그어 놓은 선을 넘어오는 걸 되게 싫어하는 것이다. 악인이 아니라 그저 앞만 보며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가장의 역할도 역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이선균)


기택과 박 사장이라는 캐릭터엔 중년 남성의 대표성이 있어 보인다. 기택을 두고 송강호는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중년 남성이 자신도 모르게 수렁에 계속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그런 속성이 캐릭터화 된 것"이라 해석했다. 이선균 역시 "자신만을 보다가 타인을 보지 못하고 굉장히 좁은 사고를 하게 된 인물"로 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배우들은 <기생충>이 한국적 배경과 상황을 담고 있음에도 가장 세계적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송강호는 "외신 인터뷰를 하다가 어떤 브라질 기자 분이 자기네 나라와 한국이 너무 비슷하다"며 "기택과 박 사장 가족이 본질은 다 같은 걸로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봉준호 감독도 "만나는 기자들마다 다 자기네 나라 이야기라고 하더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기생충> 팀.

영화 <기생충> 팀.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 배우 최우식, 박소담,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송강호. ⓒ CJ ENM

 
"한국의 경제 상황과 빈부의 격차를 담았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는데 전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전 세계가 공통으로 처한 상황 같다고 답한다. 다들 수긍하더라. 분명 봉준호 감독님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볼 때마다 감탄하고 날 반성하게 한다. 동어반복이 아니라 늘 다른 세계를 추구해 왔다.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노력하는 분이다." (송강호)

"제게 <기생충>은 생각지도 못한 감사한 선물이었다. 많은분들에게도 이 영화가 기분 좋은 선물로 다가갔으면 한다." (이선균) 


두 배우의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들의 진심이 잘 통해서 과연 수상으로까지 이어질까. 송강호가 "전도연씨가 상 받을 때도 그랬고, <박쥐> 때도 그랬고, 제가 칸에 오면 꼭 상을 받더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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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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