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인천다큐포트

2018 인천다큐포트 ⓒ 인천다큐포트


"애석하고, 아쉽고, 슬프지만 한편으로 그간의 수고가 감사하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가 중단을 선언한 21일 국내외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은 안타까움과 미련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5년 동안 괄목한 성장을 하며 한국과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진흥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왔던 인천다큐멘터리포트(아래 인천다큐포트)가 사라지게 됐다. 인천다큐포트 사무국은 21일 홈페이지와 SNS에 올린 공지를 통해 행사를 주최해 온 인천영상위원회(위원장 임순례 감독)가 지난해 5회를 마지막으로 올해부터는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천다큐포트 측은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치열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매우 안타깝게도 인천영상위원회가 인천다큐포트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특화된 사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위원회 본연의 목적 사업에 부합하는가'라는 문제가 있었고, 상반기의 디아스포라영화제와 하반기의 인천다큐포트를 연이어 치르기엔 영상위원회 사무국의 피로 누적이 상당하다는 내부 진단이 인천다큐포트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특히 총괄 디렉터를 맡아왔던 사무국장의 개인적 사정까지 겹치게 된 점 등도 크게 작용한 모습이다.
 
인천다큐포트 측은 "중단 결정을 알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수많은 분들에게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며 "이 결정이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을 돕고 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기꺼이 품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릴 것임은 분명하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지 깊고 긴 고민이 있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제성 다큐 지원한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인천다큐포트는 인천영상위원회가 2014년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였다. 기획에서 완성 단계의 모든 다큐멘터리를 대상으로 공개적인 경쟁 기회를 부여해 국내 다큐 지원 행사 중 최대 규모의 상금 및 펀드로 다양한 지원을 펴 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다큐멘터리까지 포괄하며, 지난 5년간 빠르게 성장해 왔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제작중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다큐 감독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제작중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다큐 감독 ⓒ 인천다큐포트

 
인천다큐포트가 지원한 작품들은 국내외 영화제 등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행사의 위상을 높였다. 제작에 2~3년이 걸리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인천다큐포트의 성과는 최근에 두드러졌다.
 
2014년 베스트 프로젝트로 선정된 용산참사 이후를 다룬 <공동정범>은 2016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박경근 <군대>도 2014년에 지원을 받은 작품이었다.
 
23일 개봉하는 5.18 광주 영화 <김군>도 2015년 인천다큐포트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EBS 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 권우정 감독의 <까치발>, 베트남전 한국군의 잘못을 비판하는 <기억의 전쟁>, 2017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진모영 감독의 <마린보이> 등등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인천다큐포트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은 영화들이다.
 
매해 11월 열리는 인천다큐포트의 피칭 행사는 제작중인 다큐들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의 관심이 컸다.
 
2016년에는 문제성 다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국고지원을 배제당하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선정작에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배제 작품인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과 <공동정범>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다큐포트측은 예민한 작품이 들어 있을 때는 외부로 공개되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강석필 감독 역량이 성장 동력
 
 인천다큐포트 총괄 디렉터 강석필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인천다큐포트 총괄 디렉터 강석필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 인천다큐포트

 
인천다큐포트가 빠르게 성장한 데는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이면서 총괄 디렉터를 맡았던 강석필 감독의 개인적인 역량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2012년 <춤추는 숲> 부산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강석필 감독은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초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지낸 경험을 활용해 인천다큐포트를 키웠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다양한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국내외를 누비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석필 사무국장은 "2016년 블랙리스트로 말미암아 예산의 반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왔는데, 오히려 호시절이 온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사업을 중단하는 게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나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 그대로"라며 "쉴 때가 되어 쉬어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해왔던 사업은 내용과 모양, 시기, 장소를 달리 하더라도 더 좋은 장에서 더 잘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업을 맨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한국 다큐멘터리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는 어디가 되든 누군가가 잘 이어가 줄 것이라고 믿고, 꼭 인천이 아니어도 나의 눈 앞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인천에서 새로운 영화제를 만들자는 논의가 있어, 인천다큐포트 중단이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다. 물론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 영화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여서 다소 앞서나간 추측으로 보인다.
 
지난해 조직을 재정비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지원을 확대하면서 서로 겹치는 부분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몇 해 전에는 인천다큐포트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준비 일정이 겹치면서 다큐 관계자들이 난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공개피칭은 인천과 DMZ 모두 비중을 두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인천다큐포트의 중단이 아쉽지만 이미 올해 초부터 (중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DMZ영화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한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는데, DMZ영화제가 이를 잘 흡수해서 다큐멘터리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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