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사는 인상적이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바로 이 독재자의 후예들이 누군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감독은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허위 사실을 퍼트리는 사람들이 누군지 영화를 통해 고발한다.

영화에는 '광주학살 5적'으로 불리던 인사도 등장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80년 5월이 끝나지 않았음을, 관객들은 목도할 수 있게 된다. 5.18을 다르게 보는 세력은 학살자와 그 주변 세력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각종 수상에도 영화 내용을 최대한 비공개 한 이유
 
5.18 영화 <김군>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고, 공개된 순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부산영화제에서도 수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쪽에서는 처음 기획이 공개될 때부터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군> 제작진은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2015년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김군>은 당시 '베스트 코리안 프로젝트상'과 해외 다큐영화제 참가 지원상인 '독엣지(Docedge) 어워드' 후반작업 지원, 극장개봉지원 등 모두 5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당시 제작 관계자들과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측은 수상 내역과 영화 내용이 알려지는 것에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 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영화로 알려질 경우 지만원씨가 이후 제작과정에서 취재를 거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수상 사실이 제작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것이다. 그래서 제작진 등은 영화가 담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감추고 제목만을 공개한 후 제작을 이어갔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기획 이후 4년에 걸쳐 이어진 제작은 2018년에 결실을 맺는다. <김군>은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은 어렵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에 힘을 불어 넣었다. 때마침 자유한국당이 지만원씨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에 추천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그러나 개봉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독립다큐멘터리의 개봉이 그리 간단치 않은 현실 탓이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들 중 개봉에 도달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지난 2018년 11월 강상우 감독은 "배급사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개봉 일정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5.18 40주년인 2020년 개봉에 대한 제안이나 조언을 들으며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서 올해 개봉을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노무현입니다>의 양희 작가까지 합류하면서 개봉을 위한 발걸음이 한층 더 빨라졌다.
 
크게 바뀐 개봉 버전
 
일반적으로 영화제 상영 버전과 개봉 버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김군>은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이미 국내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던 관객들이 한 번 더 본다고 해도 반복해서 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분량도 줄었고, 새로운 장면도 많이 추가됐다.
 
국내 영화제 상영 버전은 지만원씨가 광주시민들을 북한군 광수라고 주장하는 것과 이에 반발하는 광주시민들의 반박과 소송 과정을 줄기로 한다. 영화는 북한군으로 몰린 김군을 찾는 과정과 함께 5.18 피해자들이 긴 시간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면서 북한군 조작설로 인해 고통이 더해지는 5월 광주 피해자들의 아픔에 집중했다.
 
개봉 버전은 독재자의 후예들이 벌이는 행태와 '김군'을 찾는 과정, 5.18 당시의 상황 등에 더 초점을 맞췄다. 북한군으로 몰린 '김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자세히 넣었다.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며 관객들을 1980년 5월로 안내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김군'의 행방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극우세력의 허위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한다. 영화제에서 이미 본 관객들이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다시 봐야할 이유다.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 감독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 감독ⓒ 영화사 풀

 
특히 <김군>은 1980년 5월 이후 태어난 세대가 만든 최초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는 당시를 관통한 사람들이 빚진 마음으로 5월 광주를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면, <김군>은 서울 출신의 1980년 이후 세대의 시선으로 들여다 본 광주의 진실이다.
 
강상우 감독은 개봉 버전을 다르게 편집한 이유에 대해 "영화제 버전과는 달리, 지만원씨와 관련된 법률 소송의 타임라인을 영화 전반에 걸쳐 충실히 전달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또 "지만원씨와 대적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김군이란 사람 자체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과 생존자들의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개봉 버전에는 영화제 버전에 있던 소송 참여 변호사 및 연구자들의 인터뷰, 뉴스화면 사용을 최소화했다. 대신 생존자들의 직접적인 증언과 1980년 5월 당시 청년들의 사진이라는 두 개의 방향에 집중했다.

강 감독은 "(이렇게 해야) 5.18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젊은 관객들도 추적 과정에서 생존자들의 감정선 들을 따라가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거라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5월 광주를 호령하는 새로운 시각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영화제 버전이나 개봉 버전의 공통점은 영화 내용에 깊게 빨려 들어갈 만큼 흥미롭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5.18은 북한군 개입 폭동'이라 망언을 한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의 극우집회 발언 모습도 담겼고, 당시 학살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물의 모습도 나온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상과 책임자를 단죄하지 않은 현실이 우리에게 어떤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되새기게 한다.

개봉을 앞두고 재편집이 됐지만, "비극으로 뭉쳐진 원경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 살육의 현장에 존재했던 수많은 '김군'들의 개별 클로즈업을 통해 영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호령하는 새로운 시각과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는 '2018 서울독립영화제'의 대상 선정 이유는 유효하다.
 
다만 독재자의 후예들은 영화제 버전이든 개봉 버전이든 거짓을 밝히는 이 영화 자체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꼭 봐야할 영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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