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Joss Barratt

 
아빠는 몸 쓰는 일 중에 거의 안 해본 게 없으며, 엄마는 노인 및 장애인 돌보미 서비스를 업으로 삼고 있다. 왜곡된 금융 시스템과 부동산 문제 때문에 이 가정의 경제가 파탄 난 이후로 부모는 온종일 일하고, 근무 외 시간에도 불려 나가기 일쑤다. 한창 사춘기를 맞은 아들과 돌봄이 필요한 딸은 먹고사니즘에 바쁜 부모로 인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이 정도의 설명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한국의 어느 드라마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칸영화제에서 2번이나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라는 수식어를 듣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쏘리 위 미스드 유>는 어쩌면 가장 '켄 로치스러운' 동시에 가장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긴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공통의 현상, 노동유연화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Joss Barratt

 
2008년 영국 금융 위기 이후 급격히 변한 영국 사회의 단면을 감독은 이 영화에 켜켜이 수놓았다. 하루 14시간 6일을 근무하는 리키(크리스 히천)나 저녁을 차리다가도 호출에 불려 나가야 하는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공통점이라면 무한 자유경제 시스템 하에서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임시직을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것.  

리키는 프렌차이즈 택배 자영업을 하지만 그의 삶은 철저히 본사의 방침에 저당 잡혀 있다. 배달 차를 본인이 마련해야 하고, 물품 손해 등 업무 중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져야 한다. 일을 할수록, 일거리를 가져올수록 더욱 피폐해지는 이 노동자의 삶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이런 비정상적 노동이 '가장의 책임감', '가족을 위한 것'이란 명목으로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켄 로치 감독이 거장일 수 있는 이유는 거대담론에 파묻힌 채 주제의식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콘텐츠보다 큰 울림을 준다는 데 있다. "정치적 영화를 만들지 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라"던 프랑스 감독 장 뤽 고다르 말처럼 켄 로치 역시 그런 부분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룬 감독이다.

'블루 칼라의 시인', '노동자를 위한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는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처럼 실제 영국, 아일랜드 역사를 통해 이념과 사상에 스러져간 개인을 주목했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같이 현대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의 내면과 상황을 예술적으로 제시했다.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의 한 장면.ⓒ Joss Barratt

 
사실 이런 거대담론이라면 보다 쉽고 자극적이게 여러 양념을 칠만하지만 켄 로치 감독은 기본에 충실했다. 캐릭터와 이야기의 입체감을 더하면서 동시에 그는 무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만능주의에 날카로운 칼을 겨누고 있다. 특히 <쏘리 위 미스드 유>는 그 흔한 배경음악조차 철저히 절제하고 있다. 캐릭터와 미장센의 힘만으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간다.

영화 후반부에 왜 지금과 같은 제목이 나왔는지 설명된다. 무릎을 한 번 칠 것이다. 또한 켄 로치의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선 스프레이 라카가 블레이크 자신의 자존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였다면, <쏘리 위 미스드 유>에선 가족의 단란함에 금을 가게 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켄 로치의 작품엔 수상보다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는 상업적 성공으로 영화적 평가가 대체되고 있는 최근 흐름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일깨우고 있는 노련한 첨병이 아닐까

평점 :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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