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

<이몽>.ⓒ MBC

  
MBC 드라마 <이몽> 초반부는 종적을 감춘 '독립운동자금'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러시아 공산당이 제공한 자금의 행방을 놓고 김원봉·김구와 일제 경찰이 3파전을 벌이는 스토리가 지난 18일까지 이어졌다.
 
3파전은 김원봉과 김구의 공동 승리로 끝났다. 자금 일부를 갖고 있는 의사 유태준(김태우 분)을 찾아 북만주로 떠난 김원봉 일행이 결국 확보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원봉 일행은 일본 측의 미행을 받기도 하고 현지 군벌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의 온갖 위험을 감수했다. 유태준을 찾아가는 길은 목숨을 거는 여행이었다.
 
김원봉은 이 돈을 김구 등과 '사이좋게' 나눠 썼다. 실제로는 상호 경쟁적이었던 김원봉과 김구의 관계를 드라마 <이몽>은 이렇게 아름답게 정리해주었다. 참고로, 드라마 속의 유태준은 몽골에서 의사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김원봉이 유태준을 찾아간 일차적 목적은 자금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진짜 필요로 했던 것은 유태준 곁에 있는 마쟈르라는 폭탄 기술자였다. 유능한 폭탄 기술자가 유태준 곁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김원봉이 위험을 무릅쓰고 북만주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결국 드라마 속의 김원봉은 마쟈르를 찾아낸 뒤 일단은 서울로 데려다놓았다. 그런 다음, 의열단원을 시켜 상하이로 데려오게 했다. 의열단의 폭탄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술자를 김원봉은 이런 식으로 확보했다.
 
직접 폭탄까지 만들 수 있었던 김원봉

의열단의 업적들을 보면, 김원봉에게 폭탄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느낄 수 있다. 1920년 9월에는 의열단원 박재혁이 일제 경찰인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하고, 두 달 뒤에는 최수봉(최경학)이 밀양경찰서의 일제 경찰들에게 폭탄을 던졌다. 1921년 9월에는 김익상이 서울 종로경찰서의 일제 경찰들에게 폭탄을 집어던지고, 1926년 12월에는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 공격을 단행했다.
 
권총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의열단은 이처럼 폭탄 사용에 크게 의존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드라마 <이몽> 속의 김원봉이 생명의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북만주까지 찾아간 것이 상당히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그럴싸해 보일 뿐이다.
 
 폭탄 기술자를 찾아 북만주로 떠나는 김원봉(유지태 분, 오른쪽).

폭탄 기술자를 찾아 북만주로 떠나는 김원봉(유지태 분, 오른쪽).ⓒ MBC

  
이태준이 의열단에 헝가리인 기술자 마쟈르를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마쟈르가 의열단의 폭탄 활동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의 김원봉은 폭탄 기술자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폭탄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의열단 운동을 기획하고 지휘했을 뿐 아니라 직접 폭탄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팔방미인이었던 것이다.
 
김원봉은 독립운동에서 자주성을 특히 중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종전 직후에 신한청년당 여운형이 독립을 호소할 목적으로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을 때, 김원봉은 '일본 역시 승전국인데, 일본과 한편인 승전국들이 한국 독립을 도와줄 리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파리에 김철성을 자객으로 파견했다. 강화회의에 참석한 일본 대표를 죽이고 독립혁명 정신을 앙양시키겠다는 생각에서였다(관련기사 : 프랑스로 자객 보낸 김원봉... 거사 당일 벌어진 황당한 일 http://omn.kr/1j8z8).
 
물론 김원봉도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현지인들의 지원을 받았다. 불가피한 지원을 받을 때 받더라도, 궁극적으로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게 김원봉의 신념이었다.
 
그런 신념은 무기 확보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가능하다면 무기 역시 직접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인력과 금전의 이동을 철저히 감시하는 '시장경제원리'만으로 소요 물자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상당정도의 '자력갱생'을 달성하지 않고는 일본과 싸울 수 없었다. 그래서 연마한 게 폭탄 제조법이다.
 
신흥무관학교에 입한한, 스물한 살 김원봉

3·1운동이 벌어진 지 3개월 뒤인 1919년 6월, 스물한 살의 김원봉은 서간도(서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상황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약산 김원봉 평전>은 이렇게 묘사한다.
 
"끊임없는 폭력만이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마침내는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다. 김원봉의 신념은 확고하게 굳어졌다. 오랜 방황과 번민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김원봉은 여러 달이 지난 뒤 몇몇 동지들과 함께 서간도로 떠났다. 그 사이에 뜻이 맞는 동지들을 새로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새 동지는 이종암·이성우·서상락·강세우·김옥·한봉인·한봉근·신철휴 등 8명이었다."
 
이때 김원봉과 함께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에 관해 위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일행 중에는 손문(쑨원)의 휘하에 있던 호남성 출신의 주황(저우쾅)이라는 폭탄 제조 기술교관도 있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동지들과 폭탄을 제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김원봉이 신흥무관학교에 재학한 기간은 2~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이 기간에 그가 얻은 수확 중 하나는 폭탄 제조법의 학습이다. 이것은 훗날 그가 기술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의열단 폭탄 투쟁의 빈도를 높일 수 있었던 비결이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마음 같아서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일본을 몰아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상당수는 폭탄 투척 등의 방법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한국 민중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군대는 물론이고 폭탄을 확보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에 동상이 있는 독립투사 강우규 역시 폭탄을 구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가 미수로 끝난 강우규의 폭탄 준비 과정에 대해, 박환 수원대 교수의 논문 '강우규의 의열 투쟁과 독립사상'은 이렇게 말한다. 1919년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관한 설명이다.
 
 
 서울역의 강우규 동상

서울역의 강우규 동상ⓒ 김종성

 
 
"노령(러시아령) 청룡(靑龍)이라는 곳에 갔을 때 그곳 러시아 사람에게 폭탄을 구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동부 서촌 및 우수리의 철도선에 있는 작은 역인 청룡역 부근에서 주철제 영국식 예화(曳火, 예광탄) 수류탄 1개를 구입하고 이것으로 신임 조선총독을 저격할 것을 결심하였다.
 
강우규에게 러시아 사람이 폭탄의 사용처를 묻자 그는 '원한이 있는 자를 죽이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강우규는 폭탄 1개를 러시아 돈 50루블을 주고 구입해 가지고 일단 요하현의 자택으로 돌아와 있다가 출발, 노령 니코리스크를 걸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2008년 발행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5권.
 
강우규는 폭탄을 구하느라 돈뿐 아니라 시간도 들여야 했다. 위험도 감수했음은 물론이다. 어디에 쓸 거냐고 묻는 러시아 상인의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해야 했다. 조선총독 암살이라는 진짜 목적이 드러났다면, 상인은 부담스러워서라도 매매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런 목적을 밝히지 않더라도, 독립운동가 신분이 드러나면 상대방이 판매를 꺼렸을 수도 있다. 폭탄 구입 과정에서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우규가 그렇게 힘들게 구한 폭탄을 들고 서울역까지 와서 거사를 일으킨 것은 대단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후손인 우리들은 그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김원봉 역시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김원봉은 그런 방식으로 인한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염려했다. '폭탄 투척'보다도 '폭탄 준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일을 그르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래서 스물한 살 때 일찌감치 폭탄 제조법을 배워뒀던 것이다.
 
김원봉 홀로 의열단의 폭탄을 다 제조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 지도자가 폭탄 제조법까지 배워뒀기 때문에 의열단의 활동이 훨씬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었다. 따라서 드라마 <이몽>이 묘사한 것처럼 김원봉이 폭탄 기술자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북만주까지 여행할 필요는 없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다방면의 기술과 지식을 연마해둔 김원봉의 진면모를 <이몽>이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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