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 앤드 글로리>의 한 장면.

영화 <페인 앤 글로리>의 한 장면.ⓒ el primer deseo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만남이 또 한 번 마법을 이뤄냈다.

1987년 <욕망의 법칙>(Law of Desire), 1990년 <욕망의 낮과 >(Tie Me Up! Tie Me Down!)에 이은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가 제72회 칸영화제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지난 14일 개막해 18일 현재까지 7편의 경쟁작이 공개된 가운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는 영미권과 유럽권 평단 모두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크린>과 <르 필름 프랑세>에서 모두 평균 3.4점을 기록한 것. 다른 영화들이 높게는 2.8, 낮게는 2.2의 점수를 받은 것에 비할 때 상당한 호평임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젠 창작욕과 에너지마저 잃은 노장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옛 동료들과 재회하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금 새로운 진실에 눈 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민자 출신의 가난한 집의 외아들로 태어나 엄마 자신타(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품고 있는 살바도르는 자신이 이룬 업적 이후 극도로 쇠약해진 몸에 정신마저 힘을 잃은 상태. 영화는 살바도르의 어린시절과 현재를 교차로 제시하며 그가 어떤 경험을 해왔고, 어떤 욕망을 품게 됐는지를 대비효과를 통해 강조한다. 

이야기로만 치면 지극히 평범함에도 영화는 꽤 울림이 크다. 살바도르의 예술적 업적은 영화 제목대로 신체의 고통을 담보로 삼는다.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그는 이젠 소원해졌거나 적이 된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자신이 왜 영화를 찍었고, 찍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자신과 일했던 옛 배우 알베르토(아시에르 에산디아)를 찾아가 대뜸 마약을 끊으라고 한다거나, 사랑의 대상이었던 페데리코를 떠올리며 쓴 글이 무대에 오르자 역시 그와 재회에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자전과 허구 사이에서

예술과 사랑을 탐구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집념은 앞서 언급했던 '욕망 시리즈'에 잘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성별은 중요치 않다. 20대 두 남성 청년의 진한 사랑이든, 깊어진 눈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50대 두 남성의 키스든 본질은 인간의 욕망과 사랑이다.  
 
옛사랑,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살바도르가 쓴 글의 제목은 <어딕션>이다. 무언가에 대한 중독, 푹 빠진 상태를 뜻하는 이 작품은 끝내 살바도르가 촬영하지 못한 미완이 됐지만 영화 후반부 놀랍게도 옛 동료에 의해 생기를 찾는다.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영화 속 어린 살바도르처럼 9살 무렵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가 성직자가 될 뻔했던 그다. 18일 기자간담회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내 이야기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허구의 사건이기도 하다"며 일부 자신의 사연이 담겼음을 인정한 바 있다. 
 
 영화 <페인 앤드 글로리>의 한 장면.

영화 <페인 앤 글로리>의 한 장면.ⓒ FDC

 
"영화 제목은 많은 걸 의미할 수 있다. 예술은 곧 (창작자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되는데 글로리(영광)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한다. 내 야망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입장에서 글로리는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수도 나의 몫이고, 관객에 대한 책임감 역시 가져야 한다. 내 마음을 잃지 않고 인생을 즐기고 싶다." (페드라 알모도바르 감독)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창작자의 본령을 감각적인 색채와 편집으로 표현해낸다. 유럽과 북미 평단이 매료된 것도 영화가 이런 지점에서 흠 잡을 것 없는 완성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삶과 예술 그 자체를 말하고자 하면 현학적이 되거나 뜬구름 잡는 그저그런 추상적 표현이 되기 십상인데 이 노련한 거장은 자신 앞에 놓인 함정을 거뜬하게 피해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모든 문화권에서 높은 평가를 받긴 힘들 것 같다. 예술가의 삶과 그의 영혼을 구현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보편성 면에선 여전히 의문스럽다. 감독 본인 혹은 영화인과 예술가들의 자기 위안으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의 위대함에 기꺼이 마음을 열 것인가. 관객 스스로의 해석 여지가 큰 작품이다.

평점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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