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스페리아> 포스터

영화 <서스페리아> 포스터ⓒ ㈜더쿱


 
*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누군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긴 시간이 지나며 죄책감이 된다. 6.25 전쟁으로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한 이후, 누군가와 헤어졌다는 생각과 찾지 못했다는 생각은 자신을 자책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다시 만나는 순간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리움을 풀어 나간다.

5.18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도, 비슷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마음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다. 이런 정치적인 갈등으로 유발된 전쟁과 사회적 정쟁들은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을 유발하고 무수한 부수적 피해를 낳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전히 이런 정치적인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상실감을 가진 피해자들 또한 계속 양산되고 있다.

영화 <서스페리아>는 피가 튀는 경쟁과 갈등을 가진 조직과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수많은 사회적 죄책감들을 연결시키며 그것들을 매우 특별한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수지(다코다 존슨)다. 베를린의 유명한 무용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에서 온 수지는 오디션에서 마담 블랑(틸다 스윈튼)의 눈에 들어 단번에 아카데미에 합격하게 된다. 이후 수지는 주연을 맡고 있던 패트리샤(클로이 모레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무용 아카데미는 몇 명의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그 분위기 자체가 조용하고 매우 기괴하다. 사실 아카데미의 이면에는 선생님 각자 목적에 따른 계파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또 어떤 존재를 되살리려는 마녀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만들어가는 공연은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

아카데미 마녀의 진실을 쫓다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더쿱



수지를 중심으로 보여지는 아카데미의 모습 이외에 영화는 하나의 인물을 더 따라간다. 닥터 클렘퍼러는 무용 아카데미의 패트리샤를 상담하면서 아카데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혼자 조사를 시작한다. 

특히나 그는 오래전 잃어버린 아내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혹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을 고려해 과거의 집도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 그가 영화 내내 혼자 가지고 있는 정서는 일종의 회한과 죄책감이다. 자신의 옆에 있던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를 결국 패트리샤가 내뱉는 아카데미 마녀의 진실을 쫓게 만든다.

무용 아카데미의 선생님들은 서로 기싸움을 강하게 벌인다. 영화 속에서 마녀로 그려지는 이들은 서로 지지하는 강력한 존재의 부활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이탈하는 학생들을 잔인하게 처단한다. 서로 주도권을 다투려 논쟁을 벌이는 그들은 두 개의 계파로 나뉘어져 있으며 누구에게 주도권을 넘길 것인지를 다툰다. 

1977년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그 당시 독일에서 극에 달했던 신구 갈등을 마녀들의 세력 싸움으로 그린다. 당시 과거 파시즘을 행했던 기성세대에 분노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기성세대를 한없이 몰아붙였고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만연했었다.

영화 속 특별한 재능을 가진 수지는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뛰어난 실력으로 새로운 춤사위를 마담 블랑에게 제안하기도 하고 새롭게 배운 춤을 아주 뛰어나게 표현하기도 한다. 다코다 존슨이 연기하는 수지는 영화 내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엔 수줍은 신입생처럼 보이던 영화 초반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실에선 잘 이뤄지지 않는 극적인 복수와 위로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피의 갈등 한복판에 가다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더쿱

 
영화는 크게 무용 아카데미의 갈등과 경쟁 그리고 아카데미의 비밀을 쫓는 닥터 클렘퍼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사실 이 둘은 서로 어떤 관계도 없다. 단지 클렘퍼러의 환자였던 패트리샤가 연결고리인데, 그것 때문에 그는 피의 갈등이 이루어지는 한복판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잔인한 처단을 목격한다. 관객들은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수지의 비상, 선생님 즉 마녀들 간의 전쟁 그리고 클렘퍼러의 추적을 번갈아 보게 됨으로써 지위가 상승되는 한 사람과, 이미 권력을 잡은 계층의 다툼, 그것과 상관없는 일반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마녀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세 명의 마녀 이름이 등장한다. 어둠의 마녀, 눈물의 마녀, 한숨의 마녀가 그것이다. 이 중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한숨의 마녀다. 무용 아카데미에서 공연팀이 춤을 출 때도 한숨 같은 소리가 많이 등장하며, 특히나 주인공 수지가 음악 없이 춤을 출 때 그의 강력한 숨소리는 더욱더 깊은 한숨 소리로 들린다. 그의 한숨소리는 결말 부분을 위한 복선이면서 한숨의 마녀의 한숨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공연팀이 준비하는 이름은 '폴크'다. 독일어로 국민, 민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공연팀의 일원이 곧 민중을 의미한다. 특히나 그들을 파시즘적인 조직의 계파 싸움 한가운데에서 상승을 꿈꾸지만 대부분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며, 그들에게서 이탈할 경우, 엄청난 고문을 받고 착취당한다. 영화 속에서 아카데미를 이탈하려 했던 많은 수의 무용수들은 지하에 갇혀 양기를 빼앗기며 고통을 받는다. 이 모습은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시설에서 온갖 고문과 착취를 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의 말미 한숨의 마녀가 그들에게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을 묻었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대답을 한다. 

"죽게 해 주세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힘을 받았지만, 죽을힘도 없었던 그들은 새롭게 등장한 구원자에게 그렇게 안식을 얻는다. 

우연히 마녀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 닥터 클렘퍼러 또한 아내를 그렇게 잃었다. 클렘퍼러의 아내는 수용소에 끌려간 뒤 영영 소식이 끊겼다. 클렘페러는 아카데미의 지하로 끌려가 한숨의 마녀가 탄생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다. 그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자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 정치적 숙청 현장과 자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저 그 광경을 보며 벌벌 떨 뿐이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한숨의 마녀는 그 숙청이 끝난 후 그에게 실종된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에게 그 모든 과거를 잊을 수 있는 안식을 선사한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모든 것을 알려준 후 모든 것을 잊게 해주 마."

영화는 잘못된 사회 체제 속에서 정치에 대항하는 민중이나, 일반 국민들이 어떤 피해를 받고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와 춤으로 전개되기에 해석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당시 독일의 상황과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독일인들의 위치를 고려해서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긴 쉬울 것 같다.

잔인한 복수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영화 <서스페리아> 장면ⓒ ㈜더쿱


1970년대 후반부 신구 세대의 강력한 갈등, 그리고 페미니즘의 확산 등을 영화에 담았다. 특히 이 영화는 형사로 나온 조연 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자 배우가 중심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담기 위해 기능적 요소까지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꽤 충격적이다. 빨간색으로 화면의 톤이 바뀌고 엄청나게 잔인한 숙청이 벌어지는 동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은 기괴한 춤을 추고 있고, 머리가 잘려나가거나 신체가 훼손되는 엄청나게 잔인한 복수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어떤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영화가 앞부분부터 쌓아왔던 각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발현됐기 때문이다.

한숨의 마녀는 과거 마녀 취급을 받아 병사했던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사생아 같은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는 그 당시 새롭게 태어나는 독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온갖 정치적인 경쟁을 뚫고 결국 본인의 자리에서 재탄생하여 새로운 독일을 만든다. 세상의 모든 한숨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죄와 위로를 선사한다. 

어쩌면 아직 과거의 일들이 정리되지 않은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5.18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음에도 그들에게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적폐 청산이라는 목적 아래 문제를 가진 부분을 고치려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저항은 강력하다. 어쩌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저 진정한 사죄와 작은 위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도 민중들을 위로할 한숨의 마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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