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논-픽션> 메인포스터 영화 <논-픽션> 메인포스터

▲ 영화 <논-픽션> 메인포스터 영화 <논-픽션> 메인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01.

영화 <퍼스널 쇼퍼>(2017)는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그 상황을 명확히 표현하기보다는 주인공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이 느끼는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며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담은 작품이었다. 감독인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이런 방식의 연출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무수히 많은 혼란과 자아의 상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불안으로부터의 위협과 같은 것들을 표현했다. 칸 영화제의 인정을 받아 감독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극의 전개라기보다 그런 표현 방식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신작 <논-픽션>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편집자와 작가,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 등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산적해 있는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감독이 이 작품 속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 관습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들 사이에서 어떠한 것이 적확하고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은 곧, 현대인들이 부딪히고 있는 가치관의 선택과 정치적 신념의 문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갈등과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2.

주인공 알랭(기욤 까네 분)은 성공한 편집장이다.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소비 세대는 서점보다 블로그에 더 많이 몰려들고, 오프라인의 지면보다 온라인 속의 페이지들을 더욱 선호하기에 그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한편, 작가 레오나르(뱅상 매케인 분)는 원칙과 전통을 지켜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되려, 온라인상에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글들도 많고 글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문장들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이 낮은 흐름에 흔들리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편, 알랭의 회사에 새로 부임한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 로르(크리스타 테렛 분)는 디지털의 사명이 관습과 기준을 넘어선 인간의 재발견에 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과거 문학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새로운 시장과 장르의 획득이 아닌, 새 시대로 향하는 걸음과도 같다. 오히려 기존의 변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자와 SNS의 글을 편집해 책으로 출판하자고 제안하고 기존의 문장을 유명 셀럽들의 목소리를 빌려 읽어주는 오디오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의 변화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위치를 도식화하자면, 가장 보수적인 쪽에 작가 레오나르가 위치하고, 그 반대편의 개방적인 쪽에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 로르가 있다. 알랭은 그 둘의 사이에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인 쪽에 더 가깝지만 점차 개방적인 쪽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모든 것들은 보수적인 쪽과 진보적인 쪽, 그 양쪽의 첨예한 경계에 놓여있다. 사회는 이미 변화의 흐름 속으로 휩쓸려가고 있지만, 그 내부에 존재하는 개인의 태도는 각각의 신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 문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03.

이 영화 <논-픽션>의 초반부에서 던져지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예술'에 대한 창작 및 수익 활동을 능력을 인정받은 소수의 전유물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대중 누구나가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개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는 나아가 예술의 질적인 문제와 연결되며, 질적 하향 평준화의 문제가 이용자의 수준과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혹은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일 뿐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를 파생시키게 된다. 이는 모든 변화 속에서 발현되는 필수 불가결의 과정인데,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합리성은 그런 불안을 해소하길 바라는 인간의 심리적 방어 기제의 발현은 어떤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지 혹은 어떤 선택이 진실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행동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더욱 이로운 것인지와 진실에 가까운 확신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안위를 확보할 수 있는 확신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특히 아직 어떠한 결과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판단과 가치 정립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뒤로하고 과거의 것은 유지하고 원칙과 전통만을 지키는 행동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하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열정은 식었지만 인기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원래의 배역을 유지하기로 한 셀레나(줄리엣 비노쉬 역)의 모습은 그에 대한 반증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과 함께 사랑을 나눈 이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로 문제를 일으키는 레오나르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4.

영화의 중반부부터 심도 있게 다루어지는 네 사람, 알랭과 로르, 레오나르와 셀레나(줄리엣 비노쉬 분)의 불륜도 두 극단의 경계에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또 다른 소재로 활용된다. 서로의 배우자로부터 얻지 못하는 새로운 종류의 사랑과 열정을 불륜의 상대에게서 찾고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사랑을 처분하거나 새로운 상대에게 정착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불륜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표현 방식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그보다는 자신의 외도를 고백하는 레오나르와 그의 아내 발레리의 대화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위선이나 은폐가 있다고 믿어?', '암묵은 있다고 믿어' 단지 그의 외도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양상에 대한 명확하지 못한 대처와 태도가 그의 대사 속 암묵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05.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의 타이틀인 '논-픽션'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기는 쉬우나 'Fiction'의 반대말인 'Non-Fiction'과 동일한 단어 'Fiction'에 'Fact'를 결합해 만든 단어인 'Faction'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허구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구성하는 형식의 '논픽션'과 실제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해내는 작업을 일컫는 '팩션'은 둘 모두 허구보다는 실제에 더욱 가까이 닿아 있지만 수직선 상에 함께 놓았을 때에는 경향이 아닌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가령, '짜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팩션'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본능적일 수 있는 '논-픽션'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답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거시적인 상황은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도 종이책과 전자책은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공존했고, 불륜과 외도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는 사랑의 결실을 얻었다. 결국엔 답이나 목표, 결과 따 따위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선택도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도, 모두 말이다.
영화 논-픽션 기욤까네 줄리엣비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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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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