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MBC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만행 중 하나는 보도연맹 사건이었다. 일제 시대 독립 운동가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만든 '보국연맹'이란 단체를 모방한 보도연맹은 해방 후 좌익 사상 가진 사람을 전향시킬 목적으로 정권 차원에서 만들었다. 보도연맹에 소속된 이들 중에는 일제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도 상당수 강제로 가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단 이유로 학살했다.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친일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팀은 지난 13일 이에 대한 방송을 한 바 있다. <스트레이트>에 출연했던 김정인 MBC 기자를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나왔던 보도연맹 사건

- '독립운동가를 학살한 친일파들'이란 주제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셨잖아요.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저는 독립운동가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보도연맹 학살이라든지 형무소 학살 등 국가 폭력의 차원에서 학살당하신 분이 많았는지 몰랐거든요. 정말 많은 분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헌신했고 막상 되찾았지만, 친일 이력이 있는 경찰이나 군에 의해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많이 분노했었어요."

- 취재 내용이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으로 학살당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민간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보도연맹을 처음 접한 건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란 영화를 통해서였어요. 영화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쌀을 배급해준다는 걸 미끼로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한 거였어요. 그런데 보도연맹이라는 게, 일제가 만든 보국연맹을 모방한 거라면서요?
"저도 보도연맹에 대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기에 독립 운동가들을 전향시키려고 만든 단체 중 보국연맹이라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강령이라든지 제도가 유사하다는 거예요. 전문가들인 교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도연맹 만든 사람들이 오제도, 선우종원, 이태희 같은 친일 검사들이에요. 이들이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이미 검사나 서기 같은 식으로 일했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 많이 알고, 그걸 똑같이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 연구해야겠지만 그런 내용 중에서는 보국연맹 사람들을 다 모아 생활하게 하는 단체가 있었다고 해요. 대화숙인데 그런 걸 보도연맹에서도 접목을 시켰죠. 일제시대 위급 상황 시 보국연맹이나 대화숙에 있던 사람들을 죽이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계획이 실질적으로 보도연맹에서는 실행된 거죠."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이영광

 
- 보도연맹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보'자는 보호한다로 알고 있어요. 보호하고 선도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거더라고요. 자기 편으로 전향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선도하겠다는 이름으로 정권이 만든 관변단체였던 거죠. 이 사람들에게 반공 교육도 시킨 거예요. 근데 전쟁이 터지니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대면서 이들을 몰살시킨거죠."

- 이번 <스트레이트>를 보면 보도연맹이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을 전향시키기 위한 단체'였다고 나오던데요.
"보도연맹이라는 건 처음에 관변단체로 만들었잖아요. 처음엔 좌익 사상범이나 이승만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자기네 편으로 전향시키기 위해서 만든 단체예요. 독립 운동가 중에서도 이승만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관변단체다 보니까 지역할당이 내려온 거예요.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가입 수가 너무 모자라니까 사람들에게 쌀이나 비료, 고무신 준다면서 강제로 가입을 시켰다고 해요. 이장이 마을 사람들 도장을 다 가지고 있던 곳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선지 자기도 모르게 가입된 것도 있더라고요."

- 보도연맹에 대해 취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취재를 시작한 건 3월 정도일 거예요. 얼마 전에 충북 보은군 아곡리에서 보도연맹 관련한 유해가 발굴됐거든요. 이게 1950년에 일어나서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그때 돌아가신 분들 유해가 현장에 그냥 묻혀 있다는 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그것도 국가폭력인데 국가에서 다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유족이나 민간단체가 나서고 이걸 지자체에 읍소해서 같이하는 상황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죠. 국가폭력으로 희생됐는데 그들이 알아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더군다나 경산 코발트 광산이라든지 이미 2000년대 초반 이미 유해 발굴 시작한 곳도 있거든요. 그러나 거기서 발굴된 유해가 아직도 현장에 있고 중단됐기 때문에 더 발굴 못 하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취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그럼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 운동가인가요?
"보도연맹 (피해자)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인 건 아닌 것 같아요. 독립 운동가 포함 이승만 정권에 반대되는 세력들을 많이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건 맞는 것 같아요. 대다수의 희생 당하신 분은 쌀이나 비료를 준다고 해서 가입한 민초가 아니었을까 해요. 그러나 정확히 숫자를 알 수가 없는 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규명한 사건 자체도 많지 않고 그때 신청 기간이 1년밖에 없었다고 해요. 연좌제가 무서워서 신청 못한 분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진실화해위 작업이 조금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 그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은가 봐요?
"네. 저는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선우종원이라고 보도연맹을 만든 친일 검사가 예전에 증언할 때 보도연맹에 가입된 수가 최대 33만 명이라고 했거든요. 그 당시 증언을 보면 보도연맹은 모두 총살하란 지시가 있었다고 하니까 거의 대부분 돌아가셨다고 봐야 하는데 그럼 사상자 수가 굉장히 많은 거죠.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건 아주 극소수라서 사실 굉장히 많은 연구나 진실규명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학살사건 현장, 유족과 찾아갔는데 '공사장' 되어버린 상태였다

- 처음 방송에 나온 데가 청주 형무소 학살 현장이잖아요. 표지판도 있었는데 왜 현장이 공사장이 되어버린거죠?
"저도 너무 당황스러웠는데요. 거기가 청주 형무소 학살사건이 있었던 장소인데 1950년 보도 연맹원 학살할 때 형무소에 있던 사상범들도 다 학살을 했어요. 저는 상황을 몰랐어요. 저희는 그때 청주 형무소 학살사건 관련해서 독립운동가 후손분과 현장을 가보기로 한 거거든요. 저나 후손분도 공사판으로 변한 건 전혀 몰랐어요. 후손분 아버님의 유해가 여기 매장돼 있기 때문에 같이 가서 그 앞에서 인터뷰로 당시 상황 들려달라고 한 거였거든요.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니 공사판이 돼 있는 거예요. 저도 너무 황당하고 놀랐어요. 그런 상황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유족도 매년 명절에 성묘하세요. 그러나 그런 상황을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너무 놀라셔서 한두 시간 산을 헤매셨는데, 그걸 보면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표지판이 굴러다니잖아요. 표지판이 있어서 몰랐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방송에 다 담지 못했지만 청주시나 지자체에 관리책임도 있는 게 2년 전 수해로 표지판이 떠내려온 적이 있대요. 그래서 후손들은 표지판을 다시 가져다 놓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청주시에서 또 다른 표지판을 만들어 놨지만 지금 현장에 가면 다시 만든 표지판은 보이지도 않아요.

그리고 더 황당한 건 진실화해위원회가 끝난 다음에 안행부가 이 작업을 다 맡았어요. 청주시에 유해지를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 거예요. 그러나 똑같은 청주 시청 안에서 다른 부서는 그걸 전혀 모르고 공사하는 거죠."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MBC

 
-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이해가 안 가네요.
"저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건 같은 시청 내에서 정보 공유가 그만큼 안 된 거잖아요. 그게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공사를 담당했던 산림환경 연구소라든지 단계별로 있잖아요. 다 가서 물어보면 학살 현장으로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걸 몰랐다는 거예요. 저도 너무 놀랐습니다."

- 보도연맹으로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만나셨는데, 어떠셨어요?
"그분들의 공통점은 자기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이 독립운동 하셔서 훈장 받으신 분들이라는 거거든요. 독립운동 하신 게 그 정도로 인정받으신 분들이신데, 이분들은 어린 시절에 가족들로부터 전혀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크신 거예요. 연좌제로 혹시 피해가 갈까봐 어느 정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 독립운동하신 얘기는 전혀 듣지 못하고 자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버님이나 할아버님 행적을 집안에서 쉬쉬하다 보니 궁금할 것 아니에요. 이걸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괴롭고 힘드셨을 것 같더라고요. 독립 운동에 대해 목숨을 바쳐 했던 분들이고 그런 분들 행적을 찾으면 너무 기뻐해야잖아요.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서 학살당하셨는데 어떻게 학살당했고 어디가 학살 장소인지 이런 걸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괴로웠던 거예요. 저희는 후손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이 만들었던 나라에 대한 보답으로서 이런 사실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건 자랑스러워야 할 일인데, 연좌제 때문에 다들 쉬쉬했다는 부분이 가슴 아파요.
"저도 그랬어요. 사실 독립 운동가 후손이라고 하면 저 같아도 자랑스러워하고 해야 할 것 같은 데, 실제적으로 그분들은 모르고 사셨잖아요. 집안에서는 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 친일 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죠. 그 중 김달용이란 사람을 추적했지만, 방송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혹시 취재한 내용이 더 있나요?
"사실 저희가 다른 방법으로도 수소문해서 김달용씨의 나중 행적을 찾는 중이긴 해요. 만약 나오면 2부에서 방송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확보한 행적이 없지만 이런 사람을 추적해 가는 모습 자체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방송하게 됐어요. 왜냐면 그 친일 경찰이 독립 운동가를 학살하는 데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는데요. 이 사람을 추적하는 게 어려운 일이고 이런 사람은 굉장히 많을 것 아니에요. 지금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증언자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이런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방송한 겁니다.

친일파의 친일 행적에 대해 1945~1950년 사이 기록이 많이 없어요. 오히려 일제 시대 기록은 남아 있는 게 몇 개 있지만 해방공간과 전쟁 난 시기 문서가 소실된 걸로 압니다. 그런 부분의 행적을 추적하기 어려웠죠.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데서 활동하셨던 연구 위원 같은 분도 이게 친일파 한 명 추적하는 데 최소 4~5년은 걸려야 윤곽이 나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작업이 빨리 진행되어야 할 상황인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와 같이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파... 황당했다
 
 MBC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MBC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MBC

 
- 국립묘지 이야기도 방송에 담으셨잖아요.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와 같은 묘지에 안장된 게 참 씁쓸하던데요.
"저도 많이 놀랐고 독립 운동가 후손들도 그 부분에서 많이 괴로워하시더라고요. 어렵게 아버님의 독립운동을 인정받고 보훈처로부터 국립묘지로 유해를 옮기라는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하지만 막상 유해를 모시고 국립묘지에 갔는데 옆에 김창룡 등 친일파가 묻혀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같이 묻힐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신 지 오래되셨거든요. 이건 우리나라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 2부에서 다룰 내용은 어떤 건가요?
"사실 이번에 다룬 건 큰 예고편이었다고 생각해요. 2부에서는 후손들이나 독립운동가들에게 가해졌던 2차 3차 가해 부분을 조금 더 명확히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그리고 친일파들은 살아남아 여러 사건의 가해자로 남았는데 그런 뿌리를 조금 더 짚어볼 생각입니다."

- 2부는 언제 즈음 방송할 예정인가요?
"지금 준비하고 있거든요. 한 달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 취재하며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몰랐던 걸 많이 배우는 상황이고요. 그러면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라서 독립 운동가를 다시 생각해보잖아요. 근데 실제적으로 그분들에게 우리 국가가 어떤 존재였는지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주 형무소 유족 중에 신경득 교수님이라고 계세요. 그분은 독립운동가 후손은 아니시지만 이분의 아버님이 청주 형무소에서 학살당하셨거든요. 가장이 돌아가시니 집안이 어려워져서 어린 시절 영양실조로 시력을 아예 잃으셨어요. 안 보이시니 아내분과 같이 가서 표지판 어떻게 됐냐고 묻고 바닥에 뒹굴고 있다는 걸 대답해주시는 게 너무 가슴 아팠거든요. 그런 상황인데도 보도연맹이라든지 형무소학살 부분에 대해 계속 연구해오신 분이에요.

그분이 하신 말씀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우리가 독립운동 100주년이라고 많이 기리지만 사실 후손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나? 그걸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공사판이 된 청주 형무소 아니냐'고 하시면서 과연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적어도 저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그런 감정을 느끼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많이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해요."

- 방송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봐야죠. 정말 목숨 바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신 분은 삶을 다 바치신 거잖아요. 그분들에 비해 우리는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하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2019년 5월 1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중 한 장면.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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