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끔따끔해요 철조망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따끔따끔해요."
 
김대실 감독의 아홉 번째 다큐멘터리 단편 <철조망 6백리>에서 영화 속 감독이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다. 앞서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였던 김 감독이 이번에는 '철조망'이라는 분단의 상징물에 초점을 맞춘 영화 <철조망 6백리>로 지난 15일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를 본 뒤 첫 소감은 솔직히 '어? 이거 영화라고 해야 하나?'라는 실망감이었다. 30분 분량의 <철조망 6백리>는 그저 철조망이 자리한 강화도 교동, 파주, 철원 노동당사, 속초 아바이 마을, 한탄강을 돌아본 감독의 사적 기록물에 불과했다. 거기에 4.27 평화띠잇기 장면, 몇몇 사람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 전부였다.

김 감독은 "원래는 남녘과 북녘 사람들이 바라보는 철조망과 분단, 통일에 대한 생각들을 담을 예정이었지만 미국 시민권자의 북녘 입국이 불허된 상황이라 남녘의 철조망만 담은 작품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관객의 아쉬움이 큰 이유다.
  
철조망 6백리 관람객  촐조망 6백리 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철조망 6백리 관람객 촐조망 6백리 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이명옥

 
감독은 분단의 구체적인 장애물인 철조망을 통해 분단과 아픔, 우리 안의 분단적 사고를 돌아보고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하늘과 자연을 통해 통일을 향한 의지와 희망을 전하려 한다. 감독은 철조망을 통해 산천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경을 '서글픔과 아름다움이 혼재된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민통선 주민 정강주씨는 출입에 통제를 받으며 매일 분단의 실체를 경험한다. 금세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피난 나왔다가 다시는 고향 산천을 밟아보지 못한 채 여든을 넘긴 한 할머니는 속초 아바이 마을에서 순대집을 하며 살아간다.

젊은 청년들과 초등학생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장면도 있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은 대부분 통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보인다.
  
 김우석 학생 김대실 감독, 우석 학생의 동생과 엄마  초등 학생을 데리고 영화를 관람한 한 엄마

▲ 김우석 학생 김대실 감독, 우석 학생의 동생과 엄마 초등 학생을 데리고 영화를 관람한 한 엄마 ⓒ 이명옥

엄마, 여동생과 영화를 관람한 초등 6학년 김우석 학생은 "철조망은 서글프고 분단은 서로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통일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김 감독은 "지금이야말로 통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하는 시기다. 통일이 금세 되지는 않겠지만 통일에 대한 생각은 매일 해야한다. 철조망 6백리를 많은 이들이 보고 분단의 실체를 느끼고 바라보고, 통일을 생각해보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통일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또 "남한은 통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 내가 만난 남한 사람들은 80%가 통일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70년간 떨어져 살아 생각도 삶의 방식도 다른데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 서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며 오고 갈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북한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통일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철조망 6백리>가 넘어서지 못한 여러 가지 한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떠나 철조망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우리 안의 철조망과 분단의 철조망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조영래 변호사가 말하듯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벽은 분단 70년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것만이 아니다. 왜곡된 이념의 벽, 문화의 벽, 편견의 벽, 사회적 차별의 벽 등 불통의 견고한 벽이 남남 갈등이 되어 우리 안에 가득하다. 우리 앞을 막아선 분단의 철조망이든 마음의 철조망이든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열망이 강렬할 때 우리는 철조망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우리들은 대개 어렸을 적에 제각기 어떤 종류의 철조망을 넘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통하여 철조망을 넘나든다.(중략)
철조망, 그것은 법이다.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겹겹이 철조망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을 짓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뱉는다. 쓰러져 짓밟힌 인간의 이지러진 얼굴 위로 고통스런 죄의식의 올가미가 덮어씌워진다.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무뢰한으로 전락하는 과정, 법과 질서의 밖으로 고독하게 추방되는 과정, 양심과 인륜을 박탈당한 비인간으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으로 회복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 어떤 법률과 질서와 도덕과 훈계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신의 삶과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철조망 앞에 결박당하여 의식이 마비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생명력, 인간 의지의 표현이다./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중 '철조망을 넘다' 일부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고 가시처럼 마음에 자라난 철조망을 걷어내는 갈등의 해체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남주 시인은 철조망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절규했다. 아마도 김대실 감독은 모든 분단의 벽을 넘어 통일을 준비하라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철조망 6백리>에 담아 전하고 싶었으리라.
 
철조망/ 김남주 시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마는
미 8군 병사의 군화발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마는
입산 금지의 붉은 푯말에도 있다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 주둥이에도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곳에서
죄 안 짓고 혼쭐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있다 있다 어디에도 있다 아아아---
3.8선은 어디에도 어디에도 있다! / 일부
 
 
 
 
철조망 6백리 김대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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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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