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이었다. 아내가 영화 <생일>을 보자고 했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영화인데 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주연배우도 전도연과 설경구라 하지 않는가.
 
한참을 망설였다. 머리로는 세월호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꼭 봐줘야 하는 영화였지만, 가슴으로는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꺼이꺼이 대성통곡할 것이 뻔했고, 영화를 보고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그 무력감과 우울함이 나를 지배할 것이란 사실을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영화 보기를 포기했고, 아내 혼자 가서 영화를 보고 왔다. 역시나 예상대로 영화를 보고 온 아내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꽤 오랫동안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포스터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포스터ⓒ (주)바보들

 
그 다음 주. 이번에는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이 개봉했다. <생일> 때와 달리 마음이 동했다. 마찬가지로 눈물 흘릴 것이 뻔했고, 그 끝은 당연히 비극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었다. 이 영화에는 희비애락이 모두 담길 것이며, 나 역시 그와 함께 기쁨을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안 된다는 아내를 두고 혼자 가서 영화를 봤다.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다룬 이전 영화들과 달리 노무현 열풍에서부터 퇴임 이후 서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봐도 영광의 시간이요, 회한의 시간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나 스크린을 보는 사람이나 모두 울고 웃고 있었다. 그것이 '노무현'이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왜 <생일>은 보지 못하고 <노무현과 바보들>은 볼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참여의 문제였다. 세월호 사건 당시 난 무력했었다. 물론 그 이후 열심히 촛불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물에 빠질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른으로서의 무력감 때문이었다.
 
반면 노무현은 달랐다. 비록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난 당시 기꺼이 그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었다. 대선 때는 해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학생 신분이었지만 기꺼이 희망돼지 10만 원을 투척했으며, 부모님에게는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참여정부의 탄생 후에는 탄핵 때 촛불을 들었으며, 보수언론들이 사사건건 그를 물고 늘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다른 목소리를 전했다.
 
결국 <노무현과 바보들>은 내가 존경했던 노무현의 영화이며, 동시에 나의 20대를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그러니 아프더라도, 눈물을 흘리더라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라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과 바보들
 
그렇게 혼자 훌쩍거리며 보게 된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역시나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바보'의 탄생부터 시작되었다. 부림사건의 인권변호사에서 시작해서 5공 청문회 스타가 됐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한 이후부터는 쭉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정치인 노무현.
 
그런 그를 대통령 후보로 만든 건 결국 상식과 원칙을 믿는 전국의 소시민들이었다. 좋은 정치인인 건 알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여 그를 지지하는 걸 주저했던 이들이 온라인에 모여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기존의 정치 공학적 문법을 깨고 자기 돈을 지출하고 시간을 내어서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2002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영화는 그때 그 옆에,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있었다. 노무현을 통해 정치에 입문해서, 노무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노무현의 의지처럼 세상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환희에 차 있었다. 노무현은 그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노무현을 지켜야 했었다

우리는 노무현을 지켜야 했었다ⓒ (주)바보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벌어졌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자신의 역할은 거기까지라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대통령이란 무소불위의 힘을 가져왔기 때문에 노무현도 대통령으로서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은 대통령의 힘은 너무 미약했고, 고립무원이었다. 보수 언론과 야당은 끊임없이 그를 흔들어댔고, 국민들은 그런 여론에 호도되었다. 탄핵 때 그를 위해 사람들이 다시 모였지만 그것도 그때일 뿐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기가 막힌 장면은 역시나 그 유명한 '평검사와의 대화'였다. 고졸 출신 대통령에게 이죽거리며 학번을 묻는 오만방자한 검사들. 그들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대통령을 상대로, 오히려 민주주의를 무기삼아 목불인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검사스럽다'라는 유행어까지 생겼을까. 
 
 퇴임하자 다시 인기몰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하자 다시 인기몰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주)바보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퇴임했다. 학연, 지연, 혈연이 없다는 이유로 보수언론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렸고, 임기 말에는 '대통령 씹기가 국민 스포츠'라느니,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라는 등의 모욕을 당해야 했다. 퇴임 후 봉하에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했었지만, 그것도 잠시, MB의 청와대는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 대통령을 정조준했고, 그는 가장 자신다운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서거를 이야기하며 너무도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괴감을 토로했다. 대부분 한때 노사모였던 자신이 그를 혼자 청와대에 내버려두었음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폄훼에 맞서 그를 지키지 못했음을 괴로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노무현 대통령 욕을 할 때 그럴 리 없다고 항변했을 뿐, 제대로 된 설득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그만큼 게을렀고, 비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으로써 그것을 깨우쳐주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바보들이 흘리는 참회의 눈물

바보들이 흘리는 참회의 눈물ⓒ (주)바보들


영화는 끝났지만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어느덧 10년. MB와 박근혜 시대를 지나 탄핵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변화는 지난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40%대 후반을 지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야당은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주장하고, 보수언론은 집값이 올라가도, 집값이 떨어져도 대통령 탓을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느 정도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보수 언론을 대체 할 수 있는 SNS가 발전해서? 언론지형이 변해서? 아니다. 현재 SNS에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고, 언론지형은 여전히 정권에게 불리하다.

결국 현재의 50%에 가까운 문 대통령 지지율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눈물을 흘렸던 많은 사람들의 회한과 반성을 기반으로 한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외면했었던 시민들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그 지지율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가 이야기했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정치권은 여전히 이런 저런 일들로 시끄럽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노무현이 뿌린 씨앗은 아주 단단하게 시민들 마음 속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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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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