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로의 여행> 포스터

<해안가로의 여행>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해안가로의 여행>은 2015년 카이에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TOP 10에 오르며 많은 영화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쉽게도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하지는 못햇지만 14일 정식 VOD 서비스로 공개돼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큐어>, <절규>, <도쿄 소나타> 등의 작품을 통해 특유의 세계관을 구축해 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이 영화는 가슴 한쪽이 저려오는 슬픈 멜로 영화다.
 
3년 전 미즈키의 남편 유스케는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남편이 실종된 후 부적을 쓰고 피아노 강사로 계속 일을 하는 미즈키는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 여느 날처럼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미즈키는 남편을 보게 된다. 3년간 떠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는 유스케. 그는 자신을 돌보아 주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며 아내에게 동행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가 아내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그 여행이 아무런 의미 없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스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안가로의 여행> 스틸컷

<해안가로의 여행>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죽은 남편과 아내의 동행을 다룬 이 작품은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적인 깊이를 더한다. 첫 번째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끈이다. 이 영화의 암묵적인 규칙은 삶에서의 미련이 사라지는 순간 그 영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첫 번째로 만난 신문을 만들고 배달하는 노인은 술에 취해 자식들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말한 뒤 편한 표정으로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사라진다. 노인이 사라지자 미즈키는 유스케를 찾아다닌다. 혹 남편도 노인처럼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다.
 
그래서 미즈키는 유스케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그를 격렬하게 끌어안을 수도, 입을 맞출 수도 없다. 사랑의 감정이 충족된 순간 유스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의 여행은 사랑의 감정 속에서도 근심과 염려가 담겨 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부부의 여행은 사랑하면 함께할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두 번째는 과거에 머무르는 아내와 미래로 가야만 하는 남편이다. 유스케의 여행은 추억여행이 아닌 자신의 추억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여행이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노인이 사라지고 두 번째 장소에서는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가 잊지 못하는 딸의 망령이 사라진다. 유스케의 행동은 과거를 추억하기보다는 하나씩 지워나가며(또는 문제를 해결해주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마지막 정거장으로 가기 위해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미래로 가야만 하는 남편과 달리 아내 미즈키는 과거에 머무른다. 이런 미즈키의 성향은 두 가지 장면을 통해 잘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피아노 강사인 미즈키는 한 아이를 가르친다. 레슨이 끝나고 아이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불만을 내비친다. 이 장면은 3년의 시간이 지나도 미즈키는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유스케의 실종 후 미즈키가 유스케의 '내연녀'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유스케와 외도를 한 여자는 손에 낀 결혼반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시간의 흐름 속 미즈키 만이 3년 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즈키가 과거에 머무르는 이유는 그녀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유스케이기 때문이다. 고아인 미즈키에게 유스케의 존재감은 삶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쩌면 유스케가 안내하는 여행은 미즈키에게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우주의 시간 속 인간의 선택이다. 마지막 여행지인 작은 마을에서 유스케는 강연을 한다. 그가 하는 강연의 내용은 우주와 관련되어 있다. 이 우주라는 키워드는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영역이 모두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우주 속에서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작은 순간에 불과하다. 이 순간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이 여행의 과정은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해안가로의 여행> 스틸컷

<해안가로의 여행>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인간이 지닌 삶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삶이 위대하고 기적 같은 이유는 선택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모든 생명체가 부여받은 B(Birth)에서 D(Death)로 향하는 운명 속 인간만이 지닌 C(Choice)라는 특권이다. 선택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하는가 하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미즈키에게 이 선택은 유스케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어떤 감정보다 숭고하고 거룩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을 위해 감독은 운명과 우주를 택한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만난 미즈키 아버지의 영혼은 딸이 유스케를 만나면 불행할 거라는 걸 알고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유스케는 우주 속에서 인간 삶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강연한다. 보편성은 정해진 운명이고 특수성은 이를 바꾸기 위한 인간의 선택이다. 미즈키는 불행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유스케를 택했고 그의 마지막을 위로하기 위해 동행을 택했다.
 
이 아름답고도 아픈 여행은 세 가지 의미를 담아낸다. 두 남녀의 서로를 향한 숭고한 사랑과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슬픔의 자세,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존엄을 말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이 보여주는 인간 감정에 대한 깊은 탐구와 아사노 타다노부와 후카츠 에리, 두 배우가 선보이는 섬세한 감정 표현은 잔잔하지만 격렬한 내면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행을 그려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해안가로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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