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마 콘서트는 연주자가 직접 들려주는 곡의 해설과 이야기가 그 묘미를 더해준다.

이루마 콘서트는 연주자가 직접 들려주는 곡의 해설과 이야기가 그 묘미를 더해준다. ⓒ MindTailor


2016년 8월 초 <오마이뉴스>에 송고할 기사를 썼었다. 당시 난 "지난 7월 29일 금요일 밤, 멜번 시내에 위치한 MCEC (Melbourne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 근처는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는 말로 리뷰 기사를 시작했다.

비가 내렸고, 그 비를 뚫고 3500명의 관객이 컨벤션센터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한국의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호주 첫 콘서트가 시작됐다. 반응 또한 엄청났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감동 때문에 겨울비가 가져 온 추위쯤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날, 리뷰 기사는 "이루마가 피아노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인데, 어쩌면 피아노가 이루마를 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의 콘서트가 그것을 보여줬다. 피아노가 사랑하는 피아노 작곡가, 연주가, 그가 바로 이루마일 것이라는. 아름다운 공연, 아름다운 밤이었다"로 끝을 맺었었다(관련 기사 : 호주 찾은 이루마 "저는 연습 안 해요" http://omn.kr/kirg).

그리고 3년 만에, 피아노가 사랑하는 남자 이루마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각) 호주 멜번 컨벤션 센터 플리나리 콘서트 홀 콘서트를 시작으로 12일 브리스번 아트센터, 18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각 1회씩 공연했다.

첫 콘서트에 앞서 9일 오후, 이루마씨는 여전히 밝고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30여명의 기자단이 기다리는 컨벤션 센터 펑션 룸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피아니스트 이루마입니다. 멜번은 세 번째 방문이고 내일은 멜번에서 갖는 두번 째 콘서트가 되네요. 이번 공연의 주제는 '프레임(Frame)'인데요. 우리의 모든 기억, 아픈 기억까지도 프레임 안에 담으면 추억이 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그의 '언어'는 참 자연스럽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한국어를 해도, 남의 나라인 영어로 말을 해도 이루마씨는 자신만의 '언어'로 만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의 음악도 그렇다는 걸 같이 떠올려보면 아마 그 모든 것은 그 자신이 온화하고 밝은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그는 인터뷰 동안 그만의 독특한 유머도 잊지 않았다. 필자가 "이루마씨의 음악은 언제나 우리에게 힐링 파워를 제공하는데요, 이번에도 관객들이 그런 기대를 갖고 콘서트를 마주하면 될까요?"라고 묻자, "물론 그렇다"라며 누군가에게 따스한 힐링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언제나 자신의 음악에 담고 있다고 대답했다.

"클래식을 공부했지만, 클래식에 매이진 않는다"
 
 멜번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이루마 호주 콘서트

멜번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이루마 호주 콘서트 ⓒ MindTailor


이어 그는 MC가 "맞다, 나도 지치고 화날 때 당신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덧붙이자 "그런데요…"하고 좌중을 집중시키더니 "왜 화가 나죠?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죠?"라고 아주 심각한 듯 반문을 해 기자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관객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느냐는 질문엔 "조용해 주면 좋죠"라고 간단히 대답해 다시 웃음을 끌어낸 후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제 음악들이 다 조용한 편이어서요…같이 조용해 주셔야 잘 들리거든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평소에 다양한 음악을 듣지만 어떤 날은 전혀 음악을 듣지 않는 날도 있다며, 자신의 귀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이루마씨는 "나는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매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모던 음악, 댄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만들고 싶고, 또 비슷한 이념, 희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든 함께 하고 싶다"는 평소 소신도 밝혔다.

멜번에 세 번째 방문 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느냐고 묻자 이루마씨는 한국의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맑은 공기, 청정 지역에서 나오는 소고기 등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며 "저는 햄버거도 참 좋아해요. 아… 트럼프는 아니지만 말이죠"라고 또 웃음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이루마씨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그러나 또 신중하고 진솔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10일. 3 년 전에도 그랬듯 아침부터 추적추적,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멜번 컨벤션 센터 플리나리 홀에서 호주 투어 첫 공연이 열렸다. 3800개의 관객석이 꽉 찬 가운데 7시 30분, 암전이 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켜졌고, 무대에 그가 나타났다. 기다리던 관객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환영의 박수와 환호성을 감추지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 (Sometimes…Someone…)' 연주로 막을 연 그는 예의 그 젠틀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오늘의 공연이 여러분들과 내가 소통을 하고, 그래서 그 추억을 또 우리의 프레임에 담아 둘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면서 "꽃가루 병 (헤이피버 :Hay fever) 기운이 아직 있어서 목이 좀 아프지만, 오늘 여러분이 즐길 공연에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 안심하시라"고 농담을 건넸다.

'러브미 (Love me)' 연주에 앞서서 "20대 때 만든 곡인데 그때는 사랑하고 싶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나이"라는 해설을 곁들였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댄스(Dance)'가 연주될 때 관객들은 나뭇잎들과 날아가는 새들이 바람 속에 춤을 추는 듯한 느낌으로 함께 했다. 또 '데스티니 오브 러브(Destiny of Love)'를 이루마씨의 피아노로 들으며 자신의 사랑을 한 번쯤 되돌아 보며 깊이 무대로 빠져들었다.

1부 마지막 곡으로 '키스 더 레인(Kiss the rain)'을 연주할 것이라고 소개하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20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에도 관객들은 계속 '이루마'를 이야기 했다. 그의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의 연주가 얼마나 멋있는지, 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진솔한지.

콘서트장 찾은 팬과 함께 즉흥 연주를
 
 이루마 호주 콘서트, 멜번 컨벤션 센터는 3800 석을 가득 채우며 성황을 이뤘다.

이루마 호주 콘서트, 멜번 컨벤션 센터는 3800 석을 가득 채우며 성황을 이뤘다. ⓒ MindTailor


2부 역시 주옥 같은 그의 자작곡들과 음악의 배경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다. 녹턴 1번, 꽃, 이루마씨의 딸이 제목을 붙였다는 "달빛노래(Moonlight Song)', '겨울을 찾아가는 가을(Autumn Finds Winter)', '인디고(Indigo)' 등 아름다운 연주는 드넓은 객석에 조용하지만 강한 음악의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관객 중 한 명을 무대로 불러 올려 함께 연주를 해 보는 순서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선물로 다가왔다. 이날 멜번 공연에서는 '메이(May)'라는 이름의 호주인 여성 관객이 무대에 올랐다. 객석에 불이 켜지고 수없이 많은 희망자가 손을 든 가운데 '선택'(!)을 받은 이 관객은 "피아노는 쳐본 적이 없고 바이올린을 했는데, 그것도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루마씨는 "프로나 아마추어나 음악 안에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며 "당신의 이름이 5월을 뜻하는 메이라고 하니 우리 5월이라는 주제로 연주를 해 보자"며 즉흥 작곡 연주를 했다.

메이는 이루마씨에게서 즉석으로 배운 반주 부분을 누르고 이루마씨는 거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선율을 연주했는데 2분 정도의 짧은 연주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고, 이루마씨가 메이를 포옹한 뒤 작은 선물까지 건네자 부러움의 탄식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분위기 속에 이루마씨의 대표곡 중 하나인 '리버스 플로우스 인 유 (Rivers flows in you : 당신에게 흐르는 강물)이 소개돼 관객들에게서는 또 한 번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날 여러 곡에 참여 한 김상현(바이올린), 김상진(첼로) 형제와 함께 한 프레임드(Framed)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고 깊은 인사와 함께 무대가 끝났으나 관객들은 앙코르를 연호하며 객석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두 번의 커튼 콜을 했으나 여전히 객석에서 아쉬움과 감동에 젖어 움직일 줄 몰라 하던 관객들은 '다음 공연'을 벌써 기대하는 마음으로 추스리며 하나 둘 공연장을 떠났다.
 
다문화국가 호주답게 세계 각국 출신으로 이루어진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루마를 연호하며 '이루마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제가 연주를 할 때는 늘 비가 와요. 왜 그럴까요? 알아요. 지금도 밖에 비가 오죠?"

키스 더 레인을 연주하기에 앞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3년 전 첫 콘서트에서도 그랬다. 공연이 끝난 뒤엔 비가 그쳐 있었다. 지난 공연에서 그랬듯 빗줄기들은 그의 선율을 타고 또 다른 프레임을 찾아 여행을 떠났나 보다.

"안녕하세요? 여기 한국분들도 많이 오셨죠?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참 좋겠는데요."

당당한 한국어 인사, 그리고 똑같이 영어로 풀어 설명해 준 그 사람, '한국인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그렇게 아름다운 밤을 선물해 주고 브리스번과 시드니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여정을 떠났다(브리스번 1600 석, 시드니 2700 석도 완전 매진으로 성황을 이뤘다).
 
 한곡 한곡 관객들에게 힐링 파워를 선물한 이루마 호주 콘서트

한곡 한곡 관객들에게 힐링 파워를 선물한 이루마 호주 콘서트 ⓒ MindTailor

덧붙이는 글 조금 다른 각도의 내용이 첨부된 글이 멜번저널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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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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