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씨가 생전에 썼던 3대의 휴대전화.

고 장자연씨가 생전에 썼던 3대의 휴대전화. ⓒ MBC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지난 13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 장자연 사건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가운데, 장자연 사건 조사 당시 고인의 통화기록과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기록, 압수수색 자료 등 핵심 수사자료의 원본이 모두 사라졌다고 MBC < PD수첩 >이 보도했다.

또 방송은 장자연씨의 지인의 증언과 복수의 참고인 진술을 바탕으로 고인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자주 접촉한 사이로 보임에도 10년 전인 2009년 당시 경찰이 확보한 자료에서 둘 사이의 통신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학수 앵커는 최근 대검 진상조사단도 같은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며 "방정오와 장자연이 통화 또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14일 방송된 < PD수첩 > '고 장자연, 누가 통화기록을 감추는가'는 이와 같은 의혹을 취재·방송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수사 당시 경찰은 장씨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하고 통신사로부터 1년치 통화내역을 제출받았다. 그러나 방송은 경찰이 통화 발신·역발신 내역자료를 정리해 주요 증거자료와 기록을 검찰로 송치했는데, 통신기록 원본이 검찰로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것은 경찰이 편집하고 수정한 통신기록 '사본'뿐이었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사라진 통화기록 원본과 압수수색 자료 원본

또 이날 방송에선 장자연씨의 휴대전화 3대 중 1대에 대해 디지털포렌식 작업(휴대전화 안의 삭제된 자료를 복구하는 등 저장된 모든 자료를 조사·분석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포렌식 분석을 했던 나머지 2대의 원본기록도 사라졌다. 장씨의 죽음 뒤 자택과 소속사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원본 자료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경찰은 이에 대해 "통화내역을 분석한 걸 남겨야 하는데, 한 대도 (포렌식을) 안 할 수는 없고 (담당자가) 빼줘야 하는 폰을 아는 것"이라며 "(누락이 되었다면 수사) 담당자 입장에선 '이거 왜 안했느냐' 물어야 정상"이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경찰이 2009년 당시 확보한 방정오 전 대표의 통화기록은 2008년 10월 28일을 전후한 2일치 기록이 전부였다. 장씨가 어머니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불려 나와 술접대를 해야 했다고 울며 호소했던 그 당시다. 당시 2일치 기록에서 장씨와 방 전 대표 사이에 통화나 문자를 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일보>에서 30년간 근무했다는 한 관계자는 당시 방정오의 이름을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제작진에게 밝혔다.

"방정오 통화기록 나온 거 빼라, 지시 같은 건 변OO(당시 <조선일보> 간부)한테 받으면 이동한(당시 사회부장)이 법조팀장이나 지역 캡한테 지시했을 거다. (중략) 이 친구가 나보고 방정오가 (장씨에게) 매일 전화를 해서, 통화기록이 나와서 빼려고 하고 있다, 뺀 사람은 <조선일보> 간부다. (중략) 많이 나와서 빼려고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다고 그랬다. 방정오가 장자연한테 문자까지 보냈다는 데 왜 통화기록이 없겠나. 장자연한테 욕하는 문자까지 보냈다고 한다. '야, 너 얼마나 비싸냐' '얼마면 되냐'까지 했다는 거 아니냐."
 
 14일 <피디수첩>에 출연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면 캡처.

14일 <피디수첩>에 출연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면 캡처. ⓒ MBC

 
<조선일보> 전 관계자는 이 내용을 교대역 인근 커피숍에서 <조선일보> 검찰 담당 간부에게 직접 들은 얘기라고 밝혔다. 방 전 대표가 경찰조사에서 "장자연을 소개받은 기억도, 본 기억도 없다"고 진술했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다.

제작진은 위와 같은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다른 진술도 확보했다. 지난해 < PD수첩 >의 취재에 응해 양심선언을 했다가 <조선일보>사에 고소당한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해 최원일 경기청 형사과장,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모두 이동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자신들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이에 대해 "강 청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장자연 사건 관련 피고인측 변호인이었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 관련 기록들이 유실됨으로 인해서 (장자연 사건이) 정말 미궁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라며 "(관련기록이 없어진 것으로) 혜택을 본 사람은 누구였을 것이고, 이토록 많은 기관이 연루되는 것이었다면 어느 단위에서 함께 이런 행위에 부응을 했는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각종 영장심사까지 직접 챙긴 지청장, 왜 그랬을까

한편 장자연씨와 생전에 가깝게 지낸 지인 김아무개씨는 재조사가 결정되고 진상조사가 시작되자,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김씨는 최근 제작진을 만났다.

"달력을 보면 영화 봄, 방정오 영화(라고 씌여 있었다). 내가 본 것은 2번 정도. 영화 봤다는 건 7시 정도다. (중략) 방정오란 이름을 내가 알고 있었다. 문건을 쓰고 온 날 내가 그 이름을 들었다. (중략) 내 눈으로 (만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자연이가 없는 말을, 공주병 걸려서 저 사람이 나한테 들이댄다 그러진 않는다."

최근 진상조사단 조사 과정에서도 비슷한 증언이 나왔다. 현재 투자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는 예비 오너 모임에서 만난 방 전 대표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으로부터 직접 장자연씨에 대한 말을 들었다고 진상조사단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조사에서 임 전 고문과 장씨 사이에 35개의 통화기록이 나왔음이 보도된 바 있다. 이렇듯 복수의 증언은 있으나 고인과 방 전 대표 사이의 통화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면서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화면 캡처.

강희락 전 경찰청장. 화면 캡처. ⓒ MBC


방송에 따르면, 방 전 대표는 "김성진 대표와는 주주로 몇 차례 만났을 뿐 개인적인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면서 "어머니 기일 외에 (고인과)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제작진의 취재 결과에 수사 관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박진현 검사는 불만을 드러냈다.

"왜 다른 사람들의 더 심한 것들은 다 용서가 되면서 <조선일보> 관계자랑 같이 알고 지내는 것도 그렇게 다 거짓말이고, 문제가 되고, 공개를 하고, 욕을 해야 되는 것인지 너무 형평에 맞지 않는다. (중략) 취재를 광범위하게 많이 했으면 알 게 아니냐. 보시고 객관적으로 이런 필요성이 있음에도 검사가 기각했다고 하라. (중략) 나중에 기자들이 수사하라."

이날 제작진은 당시 수사를 맡았던 지청장, 차장검사, 부장검사의 실명을 모두 공개했다. 이들은 모두 제작진의 답변 요구를 거부했다. 특히 지청장은 당시 각종 영장심사를 직접 챙겼는데, 이는 검찰수사 관례상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한학수 앵커는 "장자연씨가 문건에 기록한 피해는 10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국민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나약하고 힘없는 피해자가 생겼을 때 국가기관이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덮어버리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방송을 마쳤다.

원본기록 은폐, 대체 누가 주도했을까

이날 < PD수첩 >이 보도한 것들은 지난 13개월간의 대검 진상조사단 재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엽적인 것에선 새로운 진술도 나왔지만, 이미 시청자들이 충분히 인지하는 부분들이었다. 사건 은폐와 윗선 개입 등 시청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에선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간의 조사내용 및 언론 보도를 차분히 정리해주는 역할은 필요하다. 또 고 장자연 사건에서 보여준 < PD수첩 >의 근성 있는 연속 보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원본기록 은폐 정황이 나왔다면 누가 주도해 은폐한 것인지를 밝혀내지 못한 선에서 방송이 마무리된 것은 다소 아쉬웠다.  
 
 장자연 문건 관련 메모들.

장자연 문건 관련 메모들. ⓒ MBC

 
개인적으로 당시 수사 검사가 취재에 응하는 태도가 충격적이었고, 여타 국가기관이 시민친화적 태도로 바뀌어왔음에도 검찰은 여전히 고압적이고 비밀이 많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현재 시점에서 사법 처리는 불가능하더라도 가해자들의 실명과 가해 행위가 숨김없이 드러나길 시민들이 바라고 있음을 검경 등 관계 당국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론 통신기록과 포렌식 분석, 압수수색 등 자료 원본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것들에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 줄 가장 핵심적인 증거와 진실이 담겨 있다는 뜻도 된다. 진실은 끝까지 묻히지 않고, 정의는 바로 세워진다는 믿음을 다음 세대가 가질 수 있도록 수사기관과 언론이 진실을 명확히 가려주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방정오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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