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72회 칸영화제가 개막했다. 개막작은 짐 자무쉬의 <더 데드 돈트 다이>다. 입버릇처럼 "매스컬처에 속하기보단 서브컬처로 남고 싶다. 메인스트림이 되는 것엔 관심이 없다(2005년 7월 31일 <뉴욕타임스> 'The Last of the Indies')"고 말해온 짐 자무쉬지만 칸영화제는 그를 하위문화의 범주에 남겨둘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자무쉬의 신작 <더 데드 돈트 다이>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좀비를 내세운 코미디란 점부터가 그렇다. 칸에서 최초공개 되기에 멀리 한국에서 어떤 영화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단 한 차례도 자신의 색깔을 포기한 적 없는 자무쉬의 스타일이 좀비에게까지 뚝뚝 떨어지리란 예측 정도는 가능하다.
 
익숙한 멤버인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아담 드라이버, 스티브 부세미에 더해 셀레나 고메즈, 클로에 세비니 등이 자무쉬의 영화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친다. 생각해보면 자무쉬가 셀레나 고메즈를 출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던진다. 만약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누군가 내게 셀레나 고메즈가 출연하는 자무쉬의 좀비영화가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될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를 미친놈이라 여겼을 게 분명하다.
 
'씨네만세'에선 그간 두 차례에 걸쳐 칸 영화제 경쟁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감독을 소개했다.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에 이어, 세 번째 소개할 감독으로 자무쉬를 선택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작가가 몇은 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자무쉬의 영화가 칸영화제 개막작이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신의 거장, 칸의 선택 받나
 
 14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영화 <더 데드 돈 다이>라는 작품으로 참석한 짐 자무쉬 감독의 모습이다.

14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영화 <더 데드 돈 다이>라는 작품으로 참석한 짐 자무쉬 감독의 모습이다.ⓒ 타스/연합뉴스

 
자무쉬는 1953년생으로, 올해 나이 66세다. 직장인이라면 정년을 넘긴지 오래지만 켄 로치·클린트 이스트우드·스티븐 스필버그·마틴 스콜세지·조지 밀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노장이 즐비한 세계 영화판에선 한창의 젊음이다. 저 사무엘 울만이 말했듯, 때로 청춘은 육십 대 아재들에게도 발견되는 법이니 말이다.
 
자무쉬는 소위 말하는 배운 감독이다. 명문으로 손꼽히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문화학부를 졸업하고 곧장 유럽으로 넘어가 닥치는 대로 유럽 거장의 작품을 섭렵했다. 1년 여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그 유명한 뉴욕대학교 티쉬예술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맞다.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 이안, 찰리 카우프만, 케네스 로너건이 나온 바로 그 학교다.
 
짐 자무쉬는 졸업작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영화 <천국보다 낯선>으로 일약 1980년대 미국 인디신이 낳은 스타로 떠오른다. 미국 영화판에 할리우드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린 이 영화는 최고의 데뷔작을 선정하는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자무쉬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1984년작인 이 영화는 뉴욕 빈민가의 낡은 아파트에 살던 윌리(존 루리 분)가 헝가리에서 오는 사촌 에바(에스터 벌린트 분)를 맞이하며 겪는 일로, 일상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과 신 사이에 컷이 거의 없는 롱테이크로 촬영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제작비는 불과 10만 달러 내외였다.
 
<천국보다 낯선>으로 미국 인디영화계의 얼굴로 떠오른 자무쉬는 이후 십 수 년 동안 <커피와 담배> 연작을 발표하며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11개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커피와 담배가 공통적으로 등장할 뿐, 일관성이 없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대화하는 내용을 찍어 붙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수많은 유명인들이 등장해 소소하면서도 친숙한 대화를 이어가는 점에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생각나는 이들만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인2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을 포함해 이기 팝, 톰 웨이츠, 알프레드 몰리나, 스티브 쿠건, 힙합그룹 우탱클랜 멤버들, 빌 머레이, 로베르토 베니니 등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극중 캐릭터가 아닌 본인 자신을 연기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3년 전엔 무관으로 돌아섰지만...
 

1986년엔 톰 웨이츠와 로베르토 베니니가 출연해 관심을 모은 <다운 바이 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촬영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로비 뮐러가 맡았는데, 그는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 마이클 윈터바텀의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등 영화사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긴 작품의 촬영을 맡았던 거장으로 자무쉬에겐 적잖은 자극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특히 뮐러가 자무쉬와 만난 건 빔 벤더스의 걸작 <파리 텍사스>가 나오고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후 자무쉬는 인기스타 조니 뎁을 내세운 <데드 맨>, 빌 머레이가 주연한 <브로큰 플라워>, 틸다 스윈튼이 출연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아담 드라이버가 나오는 <패터슨> 등 저만의 색깔이 잔뜩 묻은 작품을 연이어 내놓는다. 그동안 평단과 인디영화계에서만 알아주던 인지도와 평가 역시도 크게 높아졌다. 작은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자무쉬의 강점이 결코 좁지 않은 팬층을 형성한 것도 물론이다.
 
짐 자무쉬는 스스로 "나는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엔 관심이 없다(2016년 11월 25일 <더 가디언> 'I shy away from sex in my films. It makes me nervous')"고 말한다. 이와 같은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영화로 이어져, 그의 영화는 이렇다 할 극적인 일 없이 이야기를 전개해낸다.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영화를 빚는 대다수 작가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자무쉬의 스타일이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길을 형성한 것이다.
 
플롯에 관심 없이 캐릭터에 집중하며 느긋하게 영화 속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무쉬에게 신작 <더 데드 돈트 다이>가 커다란 도전이 되었을 건 분명한 사실이다. 플롯에 관심을 두지 않는 좀비영화란 이제껏 단 한 편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적 전개로 승부하는 장르에 투신해서 전격적인 전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도 제 스타일을 관철해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자무쉬는 누구보다 진득하게 캐릭터에 집중하며 컷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줄 아는 스타일이다. 이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취향과 얼마쯤 접점이 있는 듯도 하다. 어쩌면 올해 칸영화제는 자무쉬와 그의 좀비들이 장악할 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팟캐스트 '이진우의 씨네필리아(http://www.podbbang.com/ch/9078)'의 동의를 얻어 참조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