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영화 <김군>.ⓒ 1011 필름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수많은 광주 시민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1980년 5·18 현장에서 사진에 찍힌 광주 사람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부여해줬다. 바로, 광수라는 이름이다. '광(光)주에 파견된 특수(殊)부대원'이라고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런 광수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지만원씨는 '광수' 앞에 순번을 붙이고 있다. 제1, 제2 등의 번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올해 1월 27일 제600광수를 작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만원의 시스템 클럽>에 따르면, 600번째 광수로 명명된 인물은 5월 광주에서 어른들 틈에 끼어 얼굴만 사진에 찍힌 신원 불상의 소년이다.
 
지만원씨는 이 소년이 1968년 태생의 북한인 리철만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어린이가 광주에 파견돼 시민군 틈에 끼어 있었며, 이 소년이 북으로 돌아가 2012년 내각 부총리가 되고 2016년 노동당 중앙위원이 됐다는 것이다. 지만원씨는 자신의 오차 확률이 0.5~1.5%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적중 확률이 최소 98.5%라는 것이다.
 
지난 7일 MBC < PD수첩 > '2019 광주가 분노한 이유' 편에서 그는 황장엽과 입꼬리가 비슷한 광주 시민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최고인민회의 의장 황장엽이 5월 광주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무래도 '0.5~1.5%'에 동그라미 두세 개는 붙인 게 그의 진짜 오차 확률일 듯하다.
 
제1광수로 지목된 인물

지만원씨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가는 오는 23일 개봉되는 5·18 다큐 영화 <김군>에서도 확인된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김군'은 지만원씨에 의해 제1광수로 지목된 인물이다. 5·18 시민군인 그는 1980년 5월 22일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가 찍은 사진에 포착됐다. 이 사진을 보고 지만원씨가 '제1광수'란 이름을 부여하게 됐던 것이다. 
 
 이창성 기자의 사진에 찍힌 제1광수. 이창성,

이창성 기자의 사진에 찍힌 제1광수. 이창성,ⓒ 1011 필름

  
사진 속의 제1광수는 빼앗은 전경 모자를 쓰고 기관총이 장착된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탄 채 쏘아보는 듯한 시선으로 옆을 돌아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창성 기자는 사진 속 남성이 쏘아보는 인상을 보인 것은 자신이 의도치 않게 찍히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지만원씨는 '오차 확률 0.5~1.5%'의 방법을 동원해 제1광수의 신원을 특정해냈다. 눈 주변이 제1광수와 비슷한 인물을 뉴스 속의 북한 사람들 사진에서 찾아낸 것이다. 북한인 김창식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김창식은 1975년 10월 농업위원회 간척지 설계사업소 기사장이 된 이래 오랫동안 농업 분야에서 활약했다. 2011년까지 두 차례나 농업상을 역임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두 차례나 역임했다. 특수요원들도 많았을 텐데 뭐하러 농업 기술자를 5월 광주에 보내 페퍼포그차에 타도록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만원씨는 그가 북에서 내려온 요원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를 추적하다
 
 지만원씨가 동일인이라고 주장한 제1광수와 김창식.

지만원씨가 동일인이라고 주장한 제1광수와 김창식.ⓒ 1011 필름

  
제1광수는 수많은 광수들에 비해 신원 특정이 유리한 편이다. 페퍼포그 차에 올라탄 것이나 전경 모자를 쓴 것이나 기관총을 든 것이나, 다른 사진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여타 시민군들과 함께 트럭에 올라탄 모습으로 보나, 그는 도청을 중심으로 한 시민군 본부에서 투쟁한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페포포그 차나 기관총이 확보돼 있었던 장소에서 활약했던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제1광수를 찾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도청에서 항전한 시민군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광수 1호로 지목했으니, 다른 광수들은 몰라도 제1광수만큼은 좀더 철저히 수소문하는 공을 들이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지만원씨는 그 같은 기본적인 과정을 생략했다. 시간과 돈을 들이며 광주 시민군들을 수소문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제1광수의 눈가에 마우스를 갖다 대어본 뒤, 인터넷에서 수집한 북한 사진 속의 김창식과 동일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만원씨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그 과정을 영화 <김군>은 시도했다. 도청 주변에서 투쟁했던 시민군들을 수소문해 제1광수의 흔적을 추적한 것이다. 영화는 그런 추적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제1광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관객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다.
 
그를 기억하던 사람의 등장

그 추적 과정에서 등장한 인물이 5월 광주시민 주옥(당시 21세)씨다. 5월 광주 하늘 아래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배급했던 분이다. 임산부의 몸으로 그 일을 해냈다고 한다. 관객을 숙연하게 하는 분이다. 
 
 주옥씨.

주옥씨.ⓒ 1011 필름

  
바로 그 주옥씨의 기억 속에 제1광수의 이미지가 저장돼 있었다. 양은대야에 담아 주먹밥을 날라주던 그는 트럭 위에 올라탄 김군을 발견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발견'이라 할 필요도 없다. 주옥씨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버지 가게에 단골로 드나들던 손님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를 '김군'으로 불렀다. 주옥씨는 트럭 위의 김군과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군의 직업은 넝마주이였다. 거리에서 종이나 폐품 등을 수집했다. 넝마주이들은 대나무 망태기를 등에 메고 다녔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게로 집어 등 뒤의 망태기에 집어넣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돼 있다. 김군은 예닐곱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 일을 했다. 고아인 데다가 가난했기 때문에, 다리 밑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김군은 계엄군의 야만적 학살에 분노했다. 그래서 총을 집어들었다. 제대 군인이었는지, 페퍼포그 차에 올라타 기관총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김군은 주옥씨처럼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로부터 "자네도 왔는가?"란 말을 들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반가워했던 것이다.
 
그해 5월 이후 그 남자는

5월 이후 김군은 주옥씨 가족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길에서 넝마를 줍는 그의 모습을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 <김군>은 5월 이후의 김군을 추적해간다. 영화 후반부는 5월 이후의 김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기막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지만원씨는 제1광수가 북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영화는 이처럼 전라도 광주에서 그의 흔적을 속속들이 찾아낸다.
 
영화는 제1광수의 신원은 물론이고 다른 광수들의 진짜 신원도 밝혀준다. 일례로, 제36광수 즉 북한 2인자 최룡해로 지목된 시민군은 실제로는 당시 19세인 양동남씨다. 재수학원에 다니던 그는 계엄군에게 살해된 시신들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시위대에 합류했다. 5월 27일 최후까지 도청을 사수한 32명의 기동타격대원 중 한 분이다. 
 
 ‘제36광수’ 양동남 씨.

‘제36광수’ 양동남 씨.ⓒ 1011 필름

   
<시경> 소아(小雅) 편에 실린 시에 "저, 남을 참소하는 자여/ 누구를 겨냥해 함께 도모했는가"라는 첫 구절이 있다. 지만원씨는 허위 주장으로 광주시민들을 '참소하는 자'다. 전두환의 불법 독재에 맞서 싸운 광주시민들을 내란 동조자들로 몰고 있다.
 
사실, 지만원씨뿐 아니라 한국 보수는 숱한 허위의 논리, 허구의 논리를 퍼트려왔다. 말도 안 되는 5·18 북한 개입설을 퍼트리는 지만원씨처럼, 한국 보수는 예컨대 '친일 청산은 빨갱이' 같은 엉터리 논리들를 유포하면서 이 땅을 지배해왔다.
 
너무나 빈약한 그런 논리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정치권력이 그런 논리들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다. 권력의 지원 사격이 아니었다면 허무맹랭한 주장들이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의 시에서는 "저 참소하는 자를 집어 시호(豺虎)에게 던져주리라"고 했다. 승냥이와 범에게 던져주라는 것이다. 보수 권력을 지탱해온 수많은 허위 논리들은 시호에게나 던져줘야 할 것들이다. 말 같지 않은 소리라고 무시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더는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허위 주장을 시호에게 던져주는 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영화를 보며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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