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댓글부대> 포스터.

연극 <댓글부대> 포스터.ⓒ 극단 바바서커스

  
사회부·정치부·산업부 기자로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였던 장강명은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단숨에 인기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기자 특유의 취재력을 바탕으로 현장감 있고 정확한 문체와 거침없이 핵심을 파고드는 구성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지나치기 힘든 현실 감각 투철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느덧 데뷔 10년에 가까워 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새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임에 분명하다. 

지난 2015년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해다. 2011년 <표백>으로 등단한 이후, 2015년까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2015년 장강명은 3권의 소설책을 내놓는다. 그것도 중장편으로, 그 중 2권이 문학상 수상작이다. 모두 흥행했고 장강명은 한국문학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다. <댓글부대>도 그때 내놓은 소설이다. 

데뷔 5년도 되지 않았지만 자그마치 6번째 장편소설이었던 <댓글부대>. 그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었는지 또 풀어내고 싶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는 소설 <댓글부대>는 출간 2년 만인 2017년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호평을 받으며 2018년에도, 2019년에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세대 댓글부대

온라인 마케팅업체 '팀-알렙'은 이십대 청년 세 명 '삼궁', '찻탓캇', '01査10'으로 이루어져 기업 상품평과 가짜 유학 후기 등을 지어내며 용돈을 벌었다. 그들은 그 돈으로 유흥업소나 드나들 뿐이었다. 어느 날 삼웨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고, 회사 측이 고용한 홍보업체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려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하지만, 팀-알렙은 이 방법이 먹히지 않을 거라 판단해 역제안을 한다. 노동자 인권을 다룬 영화사가 오히려 스태프를 착취했다는 루머를 퍼뜨리자는 것. 

하지만 삼웨이는 팀-알렙의 역제안을 거절한다. 그때 '합포회'라는 단체가 나타나 일을 성사시킨다. 결국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 세 청년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확고히 하는 와중에, 합포회를 이끄는 '이철수'라는 인물은 그들에게 현금으로 돈다발을 안기며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일을 맡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무력화시키라는 것. 

한편, 찻탓캇은 팀-알렙의 리더격인 삼궁의 과도한 생각과 행동에 불만을 품고 진보 성향 신세계일보의 잘 나가는 기자 임소진에게 자신들이 한 일을 폭로한다. 이에 신세계일보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2세대 댓글부대의 실체를 터뜨릴 특종에 더욱 골몰한다. 팀-알렙과 합포회가 작당해 한 일들은 한국 사회에 어떤 파란을 몰고 올까. 찻탓캇과 신세계일보의 폭로 또한 어떤 파란을 몰고 올 것인가. 

비루한 청년세대의 서글픈 자화상

연극 <댓글부대>는 빠르고 거침없고 정곡을 찌르는 현실극인 원작소설 <댓글부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대신, 연극이라는 장르로 바꾸며 연극만이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장치를 통해, 자칫 단조로울 법한 원작을 보완했다. 

원작과 연극 모두 '국정원 댓글부대'를 연상되게 해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그 이면의 치열하고 치졸한 뒷이야기를 들춰내는 이야기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작품은 그 이후의 댓글부대를 다룬다. 작가가 지명한 '2세대 댓글부대'인 이들은 팀-알렙으로 대표되는데, 보다 '능구렁이' 같이 작전을 짠다. 어느 한 업체나 콘텐츠나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시대 사회의 뿌리를 흔들고 바꿀 수 있는 작전이었다. 

극 중 작전을 행하는 실무자는 사회에서 실패한 청년들이다. 그들은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며, 여자를 모두 '김치녀'라고 비하하고 자신들이 우위에 서 있는 줄 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은 이 청년들을 이용하려 한다. 많은 돈을 쥐여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이런 면면들의 밑바닥 끝까지 보여주려 하는 이 작품을, '비루한 청년세대의 서글픈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한편, 연극의 톤 앤 매너는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누군가에게는 강렬함과 충격을 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한테는 불쾌감이 남는 연극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필자에게는 전자와 후자가 함께 다가왔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가장 재미있게 본 연극인 건 맞지만, 가슴속에 오래토록 남아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기성세대의 파렴치한 욕망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작품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기성세대의 파렴치한 욕망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옳게 바꾸겠다는(사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겠다는 또는 유지하겠다는) 미명 아래 자신들이 당하고 행했던 짓을 청년세대에게 그대로 하게 만든다. 청년세대는 그 짓을 자라나는 새싹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것이다. 

작품은 이런 행태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극 중에서는 보수를 상징하는 '합포회'나 진보를 상징하는 신세계일보나 비슷하다. 또한 보수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팀-알렙이나 유력 진보 커뮤니티들도 매 한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게 아닌가 싶다. 정작 이야기 속 실상은 보수가 진보를 공격한 것이고, 공격 작전으로 진보의 빈틈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다만 빈틈이 하필이면 보수나 진보나 매한가지일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극 중 '똑똑한' 진보들은 자기 함정에 빠져버린다. 흔히 여기서 논쟁을 끌고 가면 끌고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버리며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또한 보수가 원하는 상황이었다. 그 반대로 진보가 빈틈없이 똘똘 뭉친다면 그 또한 보수가 원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독재 체제라고 몰아붙일 수 있지 않은가. 

보수가 옳으냐 진보가 옳으냐는 애초에 잘못된 물음이다. 보수도 옳을 수 있고 진보도 옳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든 그를 수도 있다. 문제는, 보수나 진보가 행하고 향하는 길이 옳은지 그른지이다.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며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저 한통속으로 몰아서 통째로 구렁텅이로 보내버리는 게 또는 그렇게 보이도록 비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또 작품 속 찻탓캇의 폭로가 '사실'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실이 섞여 있거나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실'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암약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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