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 잔나비 인스타그램 캡처

잔나비 ⓒ 잔나비 인스타그램

  
때로 들리는 '음원 차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주요한 이유는 음악의 다양성 확보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는 음원사이트를 열면 곧장 맞이하게 되는 차트 100위 내의 곡들을 주로 플레이하는데, 차트의 대부분을 아이돌의 댄스곡이 차지하고 있으니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음원차트 풍경이 좀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언제부턴가 인디뮤지션의 노래들이 음원차트 100위 안에 꽤 많이 분포해 있다. 변방에 있던 그들이 주류의 한가운데 어느새 자리 잡고서 리스너의 사랑을 받는 모양새다.

요즘 인기가 폭발해버린 대세 중의 대세 잔나비를 살펴보자. 최근 앨범의 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차트 1~3위를 오가며 방탄소년단과 겨루고 있고, 이들의 예전 곡들인 'She'(2017),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2016),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2014)도 역주행을 달려 차트 중상위권에 안착해 있다.

잔나비, 볼빨간사춘기, 폴킴, 멜로망스... '음원강자' 된 인디가수
 
'볼빨간사춘기' 대놓고 봄 저격! 여성듀오 볼빨간사춘기(안지영, 우지윤)가 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새 미니앨범 <사춘기집1 꽃기운>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함께 하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사랑스런 마음을 담은 타이틀곡 '나만, 봄'과 신곡 '별 보러 갈래?'를 선보이고 있다.
볼빨간사춘기의 새 미니앨범 <사춘기집1 꽃기운>에는 타이틀곡 '나만, 봄'을 비롯 '나들이 갈까', '별 보러 갈래?','Seattle Alone', 'Mermaid' 등 총 5곡이 수록되어 있다.

볼빨간사춘기 ⓒ 이정민


그러고 보니, 인디뮤지션이 음원강자로 부상하여 큰 인기를 지속하는 것은 몇 년은 된 일이다. 대표적으로 볼빨간사춘기가 있다. '우주를 줄게'(2016)가 홈런을 치고, 이후 그들이 음원만 냈다 하면 차트 상위권 직행 열차를 탄다. 롱런은 당연한 수순처럼 이어졌다.

폴킴 역시 근래 무섭게 떠오른 뮤지션이다. 새로운 음원강자로 자리 잡은 그는 음원차트 100위 안에 자신의 곡을 흩뿌려놓다시피 하며 저력을 보이고 있다. 잔나비의 사례처럼 예전 곡들까지 역주행-롱런 중이다. '비'(2016), OST인 '모든 날, 모든 순간'(2018), '너를 만나'(2018), '초록빛'(2019)까지 총 4곡이 멜론기준, 100위 안에 머물러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멜로망스는 또 어떤가. '선물'이란 노래로 급부상하며 이름을 각인시킨 후에 내는 노래마다 족족 주목받고 있다. '동화', OST '좋은 날' 등 히트곡 행진을 이어가며 인기가수로 자리 잡았다. 선우정아, 치즈, 카더가든 등 전보다 위상이 높아진 인디뮤지션은 그밖에도 많다.

물론 인디다, 아니다를 구분 짓는 것이 모호한 일이긴 하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으로, 지난 2017년 9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인디 페스티벌 특집에 출연했던 가수들을 위에서 언급한 것이다. 

당시 특집방송에 나온 인디가수는 무려 잔나비, 폴킴, 멜로망스, 선우정아, 치즈 등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들의 인지도는 낮았고 "인디지만 노래 좋다, 많이 들어봐달라"는 기획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2019년 그들이 이런 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한다면 아마도 '대세 특집' 혹은 '음원강자 특집' 혹은 '가요계 주류 특집'으로 나오지 않을까. 참 흥미로운 변화다.

인기차트에서 자주 보게게 된 뮤지션들, 흥행 비결은?
 
 지난 7월 발매된 멜로망스의 '동화' 앨범 재킷

▲ 멜로망스 지난해 7월 발매된 멜로망스의 '동화' 앨범 재킷 ⓒ 로엔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인디가수의 흥행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방송과 입소문의 힘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지난 4월 MBC 예능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잔나비는 인기가 급상승했는데, 앞서 2015년 혁오 밴드가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큰 화제를 모으며 자신들의 음악성을 보여줄 기회를 얻은 것과 닮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TV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뮤지션들이 사랑하는 뮤지션 선우정아는 '유스케' 인디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당시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제 곡 '비온다'를 추천곡으로 꼽으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며 "아이유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삼보일배라도 할까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입소문도 또 다른 배경일 것이다. 요즘 시대의 입소문이란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소문이라기보단 SNS나 유튜브 같은 매체로 인한 소문을 말할 수 있는데, 볼빨간사춘기의 경우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꾸민 무대의 영상이 온라인에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탔고, 음원차트에도 진입했다.

방송이든, SNS 채널의 입소문이든 그 도화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사람들이 노래를 들어야지 좋아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폭탄이 무조건 애쓴다고 터지는 것도 아니며 운이라는 불씨가 심지에 붙어야만 도화선을 타고 폭발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무엇보다 분명해 보인다. 좋은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 사랑받는 인디뮤지션들의 히트곡을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다. 방송과 SNS 등 그 모든 요소보다 더 뿌리에 있는 배경은 결국 '좋은 노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 만한 감성이 없다면 방송에 나온다고 한들, 조회수가 터진다고 한들 지속적으로 사랑받지는 못할 것이다.
 
 얼마전 싱어송라이터 폴킴은 드라마 OST 녹음 섭외 과정에서 벌어진 한 에이전시 측의 협박 및 폭언 등을 폭로해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음원강자로 떠오른 폴킴 ⓒ 뉴런뮤직

  
며칠 전에 한 음원 어플에 들어가서 노래를 듣다가 평소와 달리 '인디차트'란 게 눈에 띄어서 눌러봤다. 잔나비, 볼빨간사춘기, 장범준 등의 노래가 1위부터 번갈아가며 흘러나왔다. 아니, 이들 노래가 인디였어? 하고 나는 그때서야 자각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통합차트와 인디차트의 풍경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통합차트에도 이들의 곡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돼 있으니, 정말 인디의 시대가 온 것인가 하는 실감이 들었다. 슬슬 차트의 다양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다.
 
멜론차트 2019년 5월 13일자 음원사이트 멜론차트 캡처

▲ 멜론차트 2019년 5월 13일자 음원사이트 멜론차트 캡처 ⓒ 멜론차트 캡처

잔나비 볼빨간사춘기 폴킴 멜로망스 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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