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 (주)영화사 진진

 
1.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말이 쉽지 그 말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극히 일본적인 데서 출발한 오사카 출신의 건축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계의 거장. 안도 타다오(安藤忠雄1941-)가 바로 이 명제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고교시절 복싱선수이기도 했고, '사무라이 건축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팔순을 바라보는 백전노장.
그는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늙어서 체력이 떨어지면 싸울 마음이 사라져요. 창조적 근육이 없어질 경우에도 마찬가지에요. 신체적 근육과 창조적 근육은 둘 다 단련해야해요. 그래야 매일 치열하게 살지."

2.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안도 타다오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몇 년전의 일이다. 한국에도 그가 설계한 건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한솔뮤지엄, 제주도에 있는 본태박물관, 글래스하우스와 지니어스 로사이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서울에는 대학로에 재능문화센터(JCC)가 있고, 강서구 마곡지구에 건립중인 LG문화센터도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라고 한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마임비전빌리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몇 군데 건축물을 둘러보면 노출콘크리트를 소재로 고도의 선택적 집중과 절제를 통해 단순성의 극치를 추구하는 그의 건축 미학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높게 혹은 낮게 쌓아올린 벽과 벽사이에 길다랗게 난 통로. 그 벽의 틈새로 스며들듯 들어오는 한줄기 빛과 그림자. 혹은 그 벽 전체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 아니면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물 등이 그의 작품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3.
안도 타다오. 그의 건축 생애를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으레 그가 대학 건축학과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고졸 출신임을 빼놓지 않는다. 학력이 중요할까? 여기서는 중요하다. 특히 안도 타다오의 생애를 말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대학 건축학과를 들어갔더라면 그 역시 자칫 기존 학문의 상투성과 진부함에 짓눌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오늘날 그의 창조적 건축미학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는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구한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책에 심취했다.

"그냥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도면이나 드로잉을 베끼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도판을 기억해 버렸을 정도로 르 코르뷔지에 건축도면을 수없이 베껴 보았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57쪽)
 
안도 타다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가 오는 25일 개봉한다.

▲ 안도 타다오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 (주)영화사 진진

  
4.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 역시 독학으로 성공한 건축가이고, 기성체제와 싸우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게 르 코르뷔지에는 나에게 단순한 동경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중)

실제로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설계했던 건축물과 안도의 건축물을 비교해 보면 과연 안도 타다오가 그를 사숙(私淑)했음을 알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하고 흠모하여 거의 모든 설계도판을 외울 정도였던 안도 타다오는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처럼 독학을 결심했던 것일까?

안도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건축여행을 떠난다. 모스크바를 거쳐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돌아보고 아프리카 케이프 타운, 마다가스 카르, 인도 필리핀을 경유한 7개월 남짓의 대장정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여러 해를 여행하며 건축사적인 안목을 키워 나간다. 그의 청년기는 여행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안도 타다오는 이렇게 말한다.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체험으로 아는 것은 같은 지식이라도 그 깊이가 전혀 다르다. 첫 해외여행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았다. 지구의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이 있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중)

물론 여행만이 지식과 지혜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평생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었다. 베네치아가 낳은 마니에르슴의 대표적인 화가 틴토레토(1518-1594) 역시 70 평생 그의 고향 베네치아를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6.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던 것일까?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고,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멀리 나갈수록 더욱 적게 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노자, <도덕경> 47장)

노자의 말처럼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 수도 있겠지만, 안도의 말처럼 역시 실제체험으로 아는 지식이 훨씬 깊이가 있을 것이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로 불리는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젊은 시절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은 독일 회화사의 한 획을 긋는 계기를 만든다. 마치 안도 타다오가 젊은 시절 여행을 통해 얻은 통찰로 세계 건축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은 것처럼 말이다.
 
안도 타다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가 오는 25일 개봉한다.

▲ 안도 타다오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 (주)영화사 진진

 
7.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처럼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의 압도적 영향권 아래서 출발했지만, 그가 도달한 세계는 이미 그의 스승을 뛰어넘었다. "빛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 증명"(같은 책 99쪽)했다고 그는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게서 배운 빛의 철학의 연원은 어디서 왔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우리집 2층을 수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목수 곁을 지키며 간단한 작업들을 신명나게 도왔다. 공사가 시작되자 집안 풍경이 금세 바뀌었다. 지붕에 창을 내자 축축하고 컴컴하던 집에 새하얀 빛이 비춰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중)

8.
요컨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 오사카에서의 추억과 감동이 르 코르뷔지에의 구체적인 건축철학과 만나면서 그의 빛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는 빛과 물과 바람과 소리 등 자연을 건축 안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안도 타다오가 물을 그의 작품속에 끌어오는 방식을 그의 고향에 소재한 오사카성(大阪城)의 해자(垓子)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내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세계를 접하기 훨씬 전에 오사카성을 구경한 인상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조만간 안도 타다오의 고향이자 그의 수많은 작품이 산재한 오사카를 다시 방문하여 그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오사카성과의 연관성도 밝혀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9.
그는 노출 콘크리트 같은 투박하고 거칠며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집을 짓지만, 그가 지은 건축물 안에 일단 들어서면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자신이 만든 건축물을 떠받쳐 주는 배경으로 변해버린다.

그가 만든 건축물 속에 들어가는 순간 자연의 빛은 그 집의 조명이 되고, 물은 그 집의 연못이 되고, 바람은 그 집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무대장치가 되고, 소리는 그 집의 음악이 된다.

10.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건축물 몇 개를 보고나면 그의 설계 패턴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만큼 그는 절제의 미학, 단순함의 극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처음 접한 순간 그의 마니아가 된 것은 아마도, 나의 인생 모토가 안도의 건축미학과 상통하는 '쉽고 간단함(Easy & Simple)'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건물은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가 다르다. 안도의 건축들은 보는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고, 보는 계절에 따라 그가 계산해 넣은 풍경이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도의 작품을 보는 나의 시각도 마음도 따라서 변한다. 그가 끌어들인 빛과 물과 바람이 인공이 아니라 자연의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안도 타다오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자연 소재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형되고 때가 묻어서 거기에 기억을 새겨 넣을 수 있다."

11.
영화 <안도 타다오>는 이러한 심오하지만 심플한 그의 건축철학, 건축미학을 깊이 있게 인문학적으로 탐구하는 예술영화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게 그의 작품이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을 쉽고 단순하게 풀어낼 뿐이다. 아마도 안도 타다오의 작품세계를 좀 아는 이들에게는 다소 건조하고 밋밋하여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장의 육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다.

몇 년 전 암에 걸려 췌장과 비장을 떼내는 큰 수술을 하고도 건강을 되찾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거장을 바라보면서 그가 왜 사무라이 건축가로 불리는지, 그가 왜 명장(名匠)이자 명장(名將)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좋은 필름이다.

안도 타다오가 '치열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서 더 좋은 작품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신체 근육도 '창조적 근육'도 안녕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예술영화로 분류되어 상영관이 많지 않다. 놓치지 말고 보시기를 강추한다.)

 
안도 타다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가 오는 25일 개봉한다.

▲ 안도 타다오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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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융합심리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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