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JTBC 금토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 JTBC


1.
김지우 작가의 작품을 박찬홍 감독이 연출하는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학교 폭력 가해자 집단의 위선과 피해자 가족의 애환을 다룬다. 중학교 3학년 학생 박선호(남다름 분)는 학교 옥상에서 추락하여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선호의 같은 반 동급생이자, 가해자측 주동자인 오준석(서동현 분)의 아버지 오진표(오준석 분)는 둘이 다니는 학교의 이사장이다.

하지만 추락사건이 일어난 당일은 물론이고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준석 일당이 선호를 괴롭힌 정황은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은 없는 상황. 더구나 사고 당시 추락한 선호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 등 몇가지 유력한 증거물도 석연찮게 사라져 버렸다.

2.
문제는 준석의 아버지 오진표 이사장과 그의 아내 서은주(조여정 분) 부부를 비롯한 가해자 가족들이 뻔뻔하다는 점이다.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피해자 선호와 그의 가족들의 아픔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은 커녕 아무런 죄의식조차 없다.

선호의 아버지 박무진(박희순 분)과 어머니 강인하(추자현 분)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역부족이다. 가해자 가족들은 증거물을 없애거나 정황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의를 하는 등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남의 자식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제 자식의 학업, 제 자식의 미래만이 걱정일 뿐이다.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준다.

연극 <대학살의 신> 떠올라
 
대학살의 신 연극 <대학살의 신> 포스터

▲ 대학살의 신 연극 <대학살의 신> 포스터 ⓒ (주)신시컴퍼니

 
3.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올해 초(2019.2.26-3.24)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 대학살의 신(God of Carnage) >을 연상시킨다. <대학살의 신>은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상대방 어린이의 이를 두 개나 부러뜨린 가해 소년의 부모 알랭과 아데뜨 역할은 각각 남경주와 최정원이 맡았다. 피해 소년의 부모 미셀과 베로니끄 역할은 송일국과 이지하가 각각 맡았다. 이들은 2017년 이후 다시 모였다.

이 연극은 놀이터에서 벌어진 11살 어린이들의 싸움 이야기다. 아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이야기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서처럼 어른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입장밖에 모른다. 겉으로 학식과 교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들의 가면은 연극이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지없이 벗겨진다.

4.
연극 <대학살의 신>은 중간 휴식시간없이 90분간 공연이 이어진다. 무대도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오로지 4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쉴 새 없이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그런만큼 긴 시간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중간 중간에 코믹한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어서, 내용은 진지한데 형식은 마치 코미디극을 방불케 한다.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보가 터진다.

역시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을 바탕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한 같은 내용의 영화 <대학살의 신>(2012). 이 영화는 우리나라 연극과 달리 시종일관 진지한 사실주의 정극(正劇)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탁월한 연기력에 힘입어 런닝타임 80분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피해자 부모는 각각 존 라일리와 조디 포스터가, 가해자 부모는 크리스토프 왈츠와 케이트 윈슬렛이 각각 맡았다.

5.
침팬지도 싸움이 끝나면 자신이 상처를 낸 상대방 침팬지의 상처부위를 어루만져 준다고 한다. 상대방이 어디가 왜 아픈지를 안다는 소리다. 하물며 사람들은 어떠랴. 하지만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의 주인공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연극 <대학살의 신>의 제목이 내용에 부합한다.

인정사정없는 학살극의 주인공들처럼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입장뿐이며, 타인의 입장과 타인의 감정은 여지없이 학살하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공감능력이 제로인 것처럼 보인다.

6.
왜 그럴까? 작가 한나 홈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들이 집단 내에서는 사교적이고 협력적이라고는 하지만 외부인들 앞에서는 철저하게 안면을 몰수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집단 밖'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최악이라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서 선호 가족과 준석 가족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같은 집단 즉 내집단(in-group)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 그들은 전혀 다른 집단, 즉 외집단(out­group)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경쟁심과 적개심뿐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존재마저 부정하려 든다.

7.
한나 홈스는 그런 현상에 대해 놀라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집단은 뭔가를 먹고 사는 한 영역을 방어해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짝짓기를 하고 사는 한 잠재적인 짝에 대한 접근로도 안전하게 확보해야한다."

그녀의 결론은 이렇다. 

"요지는 우리 인간은 현재 침팬지들이 사는 방식으로 선사시대를 살았다는 것이다. 외부인의 수가 많으면 도망치고, 적으면 가서 부수었다."

8.
핏줄, 학연, 지연, 피부색, 이해관계 등에 따라서 부단히 무리짓기,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 자신과 동일한 내집단(Us)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이면서도, 다른 외집단(Them)에 대해서는 적대감과 유무형의 폭력을 휘두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의 본성 앞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기 힘들다.

우리는 침팬지처럼 강한 다수 앞에서는 도망가고, 소수의 약자한테는 떼지어 몰려가서 때려 부수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살의 신>에서 작가 야스미나 레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11살 아들이 남의 아들 이를 두 개나 부러뜨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서 작가 김지우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들 때문에 남의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국 시민기자의 페이스북에 동시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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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역임. 융합심리학연구소장(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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