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형제> 포스터.

<나의 특별한 형제> 포스터.ⓒ 명필름, 조이래빗

  
신체가 불편한 지체장애인과 신경 계통이 불편한 지적장애인의 동거를 다룬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이 영화는 좀 특이한 작품이다. 배우 신하균이 지체장애인 세하를 연기하고 배우 이광수가 지적장애인 동구를 연기하는 이 작품에서는, 장애인을 다룬 기존 영화들에서 자주 나타나던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의 비장애인들은 세하와 동구에 대해 별다른 편견을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대한다. 또, 장애인에 대한 의식적인 친절도 잘 표출되지 않는다. 영화 속의 비장애인들은 두 사람을 비교적 무덤덤하게 대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세하와 동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의 상호 협력 내지는 분업이 두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그 정도로 세하와 동구는 서로에게 완벽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두 개의 몸을 가진 하나의 사람처럼 지내면서, 그들은 장애를 조금도 의식할 필요 없이 살고 있다. 
 
 세하(신하균 분).

세하(신하균 분).ⓒ 명필름, 조이래빗

  
지체장애인인 세하는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다. 그는 그런 두뇌로 동구의 머리가 되어준다. 그래서 동구는 세하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정신적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 세하가 제시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동구는 유치원생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하의 협력 덕분에, 동구는 가스레인지를 쓰거나 기타 집안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관공서나 은행에 가서도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완벽하게 한 몸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
 
 동구(이광수 분).

동구(이광수 분).ⓒ 명필름, 조이래빗

   
지적장애인인 동구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다. 그는 그런 몸으로 세하의 몸이 되어준다. 그래서 세하는 동구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신체적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 동구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의탁하기만 하면 된다.
 
세하는 혼자서는 휠체어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동구의 협력 덕분에, 세하는 양치질을 하거나 용변을 볼 때는 물론이고 집 밖으로 외출해서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에는 장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완벽한 한 몸처럼 움직인다. 관찰자들의 눈에도, 함께 있는 두 사람한테서는 그 어떤 장애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이상적인 상태로 이들은 '책임의 집'이란 보호시설에서 10대 때부터 20년간 함께 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도전적 요소들이 영화에 갑자기 등장한다. 박 신부가 하늘로 떠나면서, '책임의 집'을 해체하는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할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이들 앞에 등장한다.
 
수영 강사 미현(이솜 분)이 등장한 뒤 동구는 자신 말고도 세하의 휠체어를 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20년 전에 생활고 때문에 동구를 버렸던 엄마 정순(길해연 분)은 지난날을 후회하고 동구와 다시 함께 살려 한다. 엄마는 동구를 세하한테서 떼어내 자기가 직접 보살피고 싶어 한다. 이를 거부하는 세하를 상대로 엄마는 소송까지 제기한다.
 
<나의 특별한 형제>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세하와 동구가 협력하며 사는 경우와, 이들이 갈라져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경우를 비교하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이 분업을 이루며 한 몸처럼 살아가는 경우와, 이들을 차별 없이 대하며 열심히 보살펴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 두 가지 경우의 차이점을 제시하면서 세하와 동구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장애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으로 인식했던 조선시대
 
 <나의 특별한 형제> 스틸컷.

<나의 특별한 형제> 스틸컷.ⓒ 명필름, 조이래빗

  
세하와 동구가 구축한 시스템은 장애인 정책의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 옛날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장애인 정책의 목표를 제시하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이전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상당 수준의 장애인 정책이 있었다. 음력으로 세조 3년 9월 16일자(양력 1457년 10월 4일자) <세조실록>에서도 나타나듯이, 옛날에는 신체장애인을 잔질(殘疾) 혹은 독질(篤疾) 등으로 불렀다. '질병' 할 때의 '질'자를 붙인 것은 장애를 질병의 일종으로 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문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위 실록에 따르면, 한성부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후견인 혹은 도우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의료기관인 활인원에서도 이들을 보살폈다. 또 정부가 나서서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점을 치거나 기우제를 하거나 악기 연주할 공무원이 필요할 때는 이들에게 우선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
 
세종 13년 12월 25일자 (1432년 1월 28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음악가 출신 관료인 박연은 시각장애인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청하면서 "옛날 제왕들이 시각장애인을 악사로 임명해 연주를 맡긴 것은 그들이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조선시대 장애인 정책이 단순히 장애인을 보호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문제를 고민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과 사회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까지 정책 패러다임이 접근해 있었던 것이다.
 
장애의 원인, 사회 환경에도 있다고 여기게 된 시점

정책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 시대에는 장애인 정책이 잠시 퇴보했다가 1960년대부터 다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시대에는 1961년부터 장애인을 보호하는 일에, 1977년부터 장애인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일에, 1988년부터 장애인 생계를 보장하는 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높아지다가, 1998년에는 조선시대를 확실히 능가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이게 됐다.
 
물론 물질적 투입량이나 제도적 정비라는 면에서는 이미 그 전에 조선시대를 능가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정책 패러다임에 관한 것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정책 패러다임이라는 면에서 1988년부터 조선시대를 능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견 없이 확실히 능가한 시점은 1998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장애인 정책이 1998년에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지에 관해 김용득 성공회대 교수의 논문 '한국 장애인복지 변천과 대안 담론 모색'은 이렇게 말한다. 이 논문은 1961년 이후를 제1단계, 1977년 이후를 제2단계, 1989년 이후를 제3단계로 규정한다.
 
"네 번째 단계는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의 시행, 1999년의 장애인복지법 개정,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의 시기로, 경제적 지원에 더불어 사회환경의 개선 및 차별 해소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시기다. 이 시기는 장애인 문제의 원인을 개별적인 장애·지체뿐 아니라 사회적 방해 요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사회에 내재해 있는 물리적·심리적 장애 요소들의 제거를 강조한 시기다."
-한국장애인복지학회가 2004년 발행한 <한국장애인복지학> 제1권.
 
장애의 원인이 장애인 본인뿐 아니라 사회환경에도 있다고 판단하고 사회환경 속의 장애 요인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끼는 단계로까지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발전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생긴 시점이 불과 20여 년 전이다.
 
2008년 5월 3일 발효된 '장애인 권리 협약'도 사회환경에 숨어 있는 장애 요소의 제거를 강조한다. 유엔 인권협약의 하나인 이 협약은 전문(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물리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환경 및 보건과 교육, 그리고 정보와 의사소통에 대한 접근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영역에서 장애인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을 촉진할 것을 확신하면서"
 
장애인 정책의 궁극적 지향점 보여주는 영화

대한민국도 그렇고 유엔도 그렇고, 현대 세계는 장애인에게 불편을 주는 사회환경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에 관심을 쓰는 단계에 와 있다. 장애인을 지원하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환경에 신경을 쓰는 단계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이런 변화가 생긴 점은 슬픈 일이지만, 뒤늦게나마 인식상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과 세계가 최근에 도달한 상태는 <나의 특별한 형제> 속의 세하와 동구가 이룩한 상태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세하와 동구는 둘만의 분업 혹은 협력 시스템 속에서 물리적·심리적 장애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이다. 장애인과 사회의 조화를 운운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완벽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위에서 말한 제4단계에 진입해 있지만, 이 단계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영화 속의 세하와 동구는 제4단계의 완성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특별한 형제>는 두 장애인의 진한 우정만 다루는 게 아니라 장애인 정책의 궁극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장애인이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느낄 일이 전혀 없으며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국가적으로 노력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