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블 시리즈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늘 기분이 좋아졌다. 통쾌함에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쿠키 영상의 비밀을 생각해보는 일도 즐거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영화 시작 초반, 전편에 해당하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패배를 어벤져스가 멋지게 설욕했건만, 이상하게도 통쾌하지 않았다. 어딘지 애잔하고, 허무했으며, 동시에 따스해지는 묘한 감정이 일었다. 
 
함께 영화를 본 '마블 덕후' 남편은 "아, 뭔가 너무 허무한 느낌이 들어. 영화 보고 우울해지거나 삶의 무상함을 느끼는 나 같은 팬들이 많을 것 같아"라며 한동안 힘들어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자 이 복잡한 감정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필연적인 인간의 조건, '죽음'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런 반응은 바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건과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인간의 조건을 상징하는 존재는 '타노스'다. 극 중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킨 타노스는 이름부터 그리스 신화 속 죽음의 신이자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를 연상시킨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의 본능, 타나토스와 에로스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타나토스는 죽음을 향한 본능을, 에로스는 생명을 향한 본능을 뜻한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삶의 에너지인 에로스를 따라 살아가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근원적인 삶의 조건인 죽음을 늘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인간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타노스의 "나는 필연적인 존재야"라는 대사는 죽음은 삶에서 필연적인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극 중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도 타노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를 직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영화 속 토르(크리스 헴스워스)가 타노스를 언급한 헐크(마크 러팔로)에게 "그 이름은 여기서 금기어야"라고 경고하듯,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때문에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겪는 모든 불안은 근본적으로 '죽음'이라는 삶의 조건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불안을 보다 잘 다스리며 삶을 온전하고 생기 있게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 즉 타노스에 대한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어벤져스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들을 살려내기 위해 과거 중요한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죽음, 즉 타노스에 대한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어벤져스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들을 살려내기 위해 과거 중요한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편부터 이어진 타노스의 '생명체 소멸 작전'은 영화 속 모든 생명체들에게 죽음을 직면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져가는 경험은 죽음의 체험이나 다름없다. 어벤져스 멤버들이 힘을 모아 대항해도 타노스를 이겨낼 수 없던 장면은 '죽음'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어벤져스 : 엔드게임> 속 모든 생명체들은 온통 슬픔과 절망, 두려움에 빠져있다.

누구보다 강한 어벤져스 멤버들 역시 타노스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특히, 직접 타노스를 대면하고 싸우다 실패한 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어벤져스들은 상실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마다 다른 대처방법들을 사용한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살아남은 이들을 모아 치유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쓴다.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가족과의 안락한 삶만을 생각하는 회피전략으로 상처를 이겨내려 한다. 토르는 알코올에 의존해 직면한 두려움들을 잊으려 하고, 호크아이(제레미 러너)는 악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실패와 상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어벤져스 멤버들의 이런 모습들은 실제 깊은 슬픔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처해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대처 전략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할 뿐 현실을 개선하지도, 상처를 치유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 '양자영역에서 다시 살아온' 앤트맨(폴 러드)의 증언을 계기로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 스톤들을 모아오는 '시간강탈 작전'을 펼친다. 영화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택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기

정신역동 지향의 심리치료에서는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탐색한다. 과거로 돌아가 자기 자신 및 중요 타인(대부분 부모)과 화해하고 감정들을 재경험한다. 자신과 타인을 보다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이런 과정은 현재를 변화시킬 원동력이 되어준다.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도 바로 과거의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대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벤져스 멤버들이 각자의 중요한 과거로 되돌아가 펼치는 '시간강탈 작전'은 사실상 심리치료의 과정과 유사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의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고 자신이 탄생한 자리에 다시 가보며, 마음 깊숙이 밀어두었던 사랑하는 여인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아이언맨은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뜨겁게 포옹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아이언맨은 이때 "대의를 위해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을 듯하다. 그리고 이 대화는 마지막 순간 아이언맨의 선택에 힘이 되었을 것이다. 토르는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해 '자기 자신으로 살라'라는 귀중한 조언을 얻고, 술로 자신을 망치는 행위를 중단한다.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고,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다시 만난 어벤져스들은 마침내 6개의 스톤을 모두 찾아낸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이들은 헐크를 자신 안에 수용해낸 브루스의 용기에 힘입어 사라졌던 이들을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아이언맨은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이겨낸다.

아이언맨은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이겨낸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리고 죽음을 수용하기

사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는 계속 이어졌다. 헐크가 손가락을 튕겨 사라진 모든 생명들을 살려내던 순간, 타노스가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사라졌던 어벤져스 멤버들까지 모두 모여 죽음에 대항해 총공세를 펼치는 장면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타노스는 끈질겼다. 마치 죽음은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반복해서 알려주는 듯이 말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심지어 또다시 패배할 것만 같았던 전쟁. 죽음과의 전쟁을 마무리 지은 것은 아이언맨의 죽음이었다. 어벤져스 멤버들이 각자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언맨은 조금 더 특별한 면이 있는 캐릭터였다. 정의를 위해 싸우긴 하지만, 지난 <아이언맨>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는 늘 인간적인 갈등을 해왔다. 가족과의 안락한 삶,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픈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초능력을 보유하거나 유전자 변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갖게 된 다른 어벤져스들과 달리, 아이언맨은 특수 제작된 수트를 벗으면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아이언맨이 스톤이 박힌 장갑을 끼는 순간은 그가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수용했음을 의미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음을 수용했을 때, 죽음의 세력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졌던 생명들이 다시 돌아와 세상엔 생기가 가득 찬다. 이는 죽음을 직시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 삶을 더 풍요롭게 가꿔갈 수 있다는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의 설명과 일치한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렇듯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고, 미래의 죽음을 수용할 때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부터 마음에 밀려들었던 복잡한 감정들은 아마 이런 인간의 조건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 과거로 돌아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노인이 되어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 역시 늙음과 죽음을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의 생명과 젊음이 새로운 세대로 이어짐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끝내 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었던 '늙음'과 '죽음'. 지금 나는 이것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끝이 있음을 알고 주어진 시간을 충만하게 살아내고 있는 걸까.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남긴 묵직한 감정들을 따라 삶을 다시금 돌아봐야겠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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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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