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편한 티셔츠에 카디건 차림으로 터덜터덜 캐리어를 끌고 법원으로 들어오는 문소리의 모습에서는 여성 판사의 고달픈 일상이 느껴진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소신 있는 재판장 김준겸으로 분한 문소리는 사무실에서 급하게 법복으로 갈아입는 장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양형을 놓고 고민하는 장면만으로도 김준겸이라는 인물에 현실감을 불어 넣었다.

그동안 문소리가 연기한 캐릭터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소 극적인 설정이거나 개연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인물도 문소리는 생활감이 묻어나는 연기를 통해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 표현해 냈다. 그게 문소리의 힘이고, 많은 감독들이 문소리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는 신인 감독 홍승완과 함께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을 그리는 신선한 법정 영화 <배심원들>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문소리를 만났다. 영화는 '배심원들'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위주로 진행된다. 그렇다 보니 영화에서 김준겸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고, 문소리는 일상적인 장면을 통해 김준겸의 됨됨이를 표현해야 했다.

"인물을 표면적으로, 배심원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무서운 판사만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영화가 빌런(악당)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법원 바깥에 있는 배심원들이 볼 때는 무서운 판사님일 수도 있고 자신들과 다른 인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배심원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줄 알고 다시 한번 피고의 입장에서 사건 전체를 들여다볼 만큼 품도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의 판사다. 영화에 이것이 잘 표현되기를 바랐다."

그는 홍승완 감독과 여러 번 만나 3~4시간씩 재판장 캐릭터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눴고 여러 여성 판사들을 만나며 김준겸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나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소리는 결국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다양한 판사들을 만나며 가장 첫 번째로 느낀 점은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판사마다 달랐다. 나는 문소리의 판사를 만들면 되는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꿋꿋하고 강단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판사
 
 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CGV아트하우스


문소리가 만들어 낸 판사 김준겸은 꿋꿋하고 강단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고 상사가 "중단하라"고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내 재판이다"라며 재판을 강행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차이무 이상호 연출가 <야생연극> 책에 보면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전체를 느껴라. 어떤 모양인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색깔인지 이 나무 하나하나가 아니라 숲 전체를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작품 분석의 시작이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되게 인상적이었다. 이 직업군과 김준겸이란 인물을 고민하면서 전반적으로 한 길을 꿋꿋이 걸어온 사람들의 단단한 힘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특히 반전이 담긴 마지막 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문소리는 마지막 촬영을 할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실제로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살짝 붉히기도 했다.

"감독님은 혼자 집중할 수 있게끔 내 단독 신을 가장 먼저 찍자고 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실제 법정과 똑같이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이 선고를 내려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 연기가 달라질 것 같다'고 부탁드렸다. 늦게 나와도 되는 보조출연자분들까지 모두 아침 일찍 촬영 현장에 모였다. 아침 6시 반에 도착해서 8시쯤 촬영을 시작했는데 다들 졸린 눈을 비비고 앉아 계시더라.

피의자, 배심원들, 법정을 지키는 경위까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연기를 했다. 촬영이 끝나고 방청석에 앉은 보조출연자분들과 모든 스태프들이 '컷' 소리와 함께 굉장히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그 순간 뭉클했다. (중요한 신이라) 걱정했는데 박수를 진심으로 쳐 주셔서 '내 마음이 전달됐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화면에도 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동적인 캐릭터에 덜 끌리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판사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인터뷰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CGV아트하우스

 
영화를 위해 문소리는 여러 번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해 판사와 배심원들을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재판과 사건에 몰입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했다. 난생처음 얼떨결에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게 된 배심원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것 역시 영화적인 설정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배심원들이) 너무 열심히 임하지 않냐'고 감독님께 물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에 가면 배심원들이 사건에 몰입해서 정말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열심히 임한다고 하더라. 나도 재판을 참관해보니까 남의 일인데 거기에 빠지게 되더라. 스케줄 때문에 재판을 끝까지 못 본 적이 있는데 결과가 너무 궁금해 감독님께 알아봐달라고 하기도 했다. 무죄가 선고됐다. 정말 생판 모르는 남의 일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갔다."

그동안 문소리가 맡은 역할들은 주체적이고 분명한 주관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JTBC 드라마 <라이프>에서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신경외과 센터장에 오른 의사 오세화로 분했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문소리는 시골집에 딸 혜원을 혼자 두고 본인의 삶을 찾아 떠났다.

최근 드라마,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에 주체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커졌다. 문소리 역시 여성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에 끌린다고 했다. 그는 "그게 (작품을 선택할 때)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작품 전체의 색깔과 전체 느낌이 가장 중요하고 감독님의 마인드도 중요하다"라면서도 "너무 갇혀있거나 수동적인 캐릭터에 덜 끌리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배우는 사실 어떤 감독님의 어떤 작품인가에 따라 캐릭터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대학원 동기 류덕환이 문소리를 안쓰러워한 이유
  
영화에는 김준겸이 권남우(박형식 분)를 향해 "나처럼 적당히가 안 되는 사람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문소리는 자신 역시 "적당히가 안 되는 사람"이라며 그런 점에서 본인과 김준겸이 닮았다고 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도 동기였던 배우 류덕환이 안쓰러워할 정도였다고.

"한 번 엔진이 돌면 끝이 어딘지 몰라도 가봐야 되는 성격이다. 열심히 살고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면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도 재미있다. 대학원 다닐 때도 공부하는 게 재밌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평생을 살 것처럼 배워라'는 말을 누가 했는데 누구더라(스태프가 마하트마 간디라고 알려주자 문소리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내일 모레 죽을 건데 이걸 배워서 뭐 하겠어'가 아니라 공부할 때는 내가 앞으로 평생 살 것처럼 (하라는 이야기다). 배워서 어디에 써먹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배우는 과정이 재밌다. 앞으로도 오늘을 살아야지. 그 글귀가 떠오른 거 보면, 한동안은 그렇게 살 것 같다. 다 싫어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연출을 다시 재미있게 느낄 날은 없을까. 그의 첫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가 워낙 호평받았기에, '문소리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영화 팬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예상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놓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굉장히 재밌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잘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다.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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