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9일 개봉한 영화 <걸캅스>는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 라미란의 첫 주연작이자 충무로에선 흔치 않은 여성 투톱 버디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예고편이 공개되자 일부에서는 '기존의 공식을 답습하는 뻔한 영화'로 예상된다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조금 이른 비난이 일기도 했다.
 
여성 중심의 상업영화를 두고 기대와 의심의 눈초리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걸캅스> 개봉 이틀 전 시사회를 통해 관람했다. 이 영화, 흥행하지 말란 법이 없고 지지받아 마땅하다.
 
넷페미니즘 시대의 여성영화
 
<걸캅스>는 여성 오디언스들의 1차 적인 흥분지점을 영리하게 파악한 작품이다. 이러한 영화적 시도는 넷페미니즘 시대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 일망타진'을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두 여성의 탐정활극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예민한 촉수를 두고 분노하는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성범죄는 여타 페미니즘 이슈들에 비해서도 중요성의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가장 오래되었으나 가장 끈질긴 여성혐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 관객들의 감정적인 지지를 기다리면서도, <걸캅스>는 결코 나태해지지 않는 영화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여성의 처지를 쉽게 동정하거나 스스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성범죄에 분노하는 이유를 단순히 '여자니까'로 설명하지 않으며, 사건해결자의 여성성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도 않는다.

앞서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2017)가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면,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2018)은 이 지점에서 성공한 바 있다. <걸캅스>는 같은 여성 중심의 상업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미쓰백>의 연출적 성공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분노한다'라는 나태함에서 벗어난 <걸캅스>는 성범죄, 그 중에서도 디지털 성범죄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불법촬영 등의 성범죄 문제는 페미니즘의 영역, 여자들의 영역에서 그 해결이 촉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악이고 범죄이며 범사회적 공조가 필요한 문제임을 이해시키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말하는' 영화, '주장하는' 영화 
 
 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이와 같은 맥락에서 <걸캅스>는 그 자체로 공익광고, 캠페인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실제로 서울시와 함께 '서울여성안심' 공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주연 배우들이 서울시의 '여성안심귀가 서비스'를 홍보하고, 시사회를 찾은 관객들에게는 '불법촬영 감지카드'를 배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익성'은 비슷한 장르 영역의 남성 주연 영화 <청년경찰>(2017) <베테랑>(2015)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의 작품들이 오락성을 제1의 가치에 두고 왁자지껄하게 폭주했다면, <걸캅스>는 그보다 더 많은 요소들을 사려 깊게 신경 쓰며 가벼운 걸음으로 빨리 걷는 영화다.
 
<걸캅스>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엔 정치적 시공간의 형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상업-독립영화를 막론하고 충무로에서 쉽게 무시되곤 하는 정치적 시공간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코믹적인 대사들 속엔 작금의 시대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김영란 법, 사법고시 폐지, 방탄소년단 등)이 숨어있다. 심혈을 기울여 구현한 정치적 시공간 속 이야기들은 최근의 버닝썬 게이트 등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려 상상하고 해석하는 재미를 더한다.
 
물론 이렇게 뚜렷한 영화의 공익성은 연출적 세련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설명적으로 일관하는 대사나, 다소 직설적으로 비쳐지는 연출자의 정치적 지향점 등은 영화의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CJ라는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상업영화판에 등장한 젊고 진보적인 성향의 신인 감독을 새롭게 맞이하는 즐거움 역시 이와 같은 지점에서 증폭됨을 부인할 수 없다.
 
실패보다 더 큰 성공 
 
 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 오마이뉴스


<걸캅스>는 여느 영화들처럼 자잘한 실패와 성공을 오간다. 이 작품의 렌즈가 과연 페미니즘적 카메라였는지는 의문이 든다.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목숨을 끊는 여성들을 굳이 보여주는 트라우마틱한 연출이나, 영화 초반 여성 인물의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이 불편감을 준다는 사실은 지적받아야한다. 
 
그러나 기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혐오적 클리셰를 변용하는 대사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거나, 서사의 전개 과정에서 쓸데없는 남성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선 '여성 영화' 영역에서의 <걸캅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느끼게한다. 대사의 쓰임에서 위트가 돋보이고, 깜짝 놀랄만한 카메오들이 등장하며, '맨몸 액션'과 '구강 액션'이 힘을 모은 코미디의 타율도 좋다. 팝콘 무비로써도 적격인, '재밌는' 영화라는 말이다.
 
<걸캅스>는 충무로의 여느 상업영화들이 가진 단점을 그대로 이어받기도, 때로는 극복하기도 하는 영화다. 우리는 이것의 '극복'에 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여성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에 더 관대해야하는가'라는 재질문이 되돌아온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걸캅스>는 모든 측면에서 '지지받아도 괜찮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걸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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