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 '이끼녀' 리뷰입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말]
잔나비 잔나비 'She' 뮤직비디오 캡처(원더케이)

▲ 잔나비잔나비 'She' 뮤직비디오 캡처(원더케이)ⓒ 잔나비 뮤직비디오 캡처


잔나비의 'She'를 처음 들은 건 삼청동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였다. 장소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내 마음에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잔나비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됐고, 또한 이들의 노래를 너무 늦게 알게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알고보니 'She'는 2017년 9월에 발표된 노래였다. 

지금 음원차트 상위권에는 잔나비의 또다른 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지만, 'She' 역시 차트 안에 머물며 역주행뿐 아니라 롱런을 달리고 있다. 'She'에는 독특한 탄생비화가 있다. 이 곡은 처음부터 음원으로 발표된 게 아니라, 네이버 '히든트랙 No.V 1월' 선정곡으로 뽑히고, 또 V앱으로 공개한 후 팬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정식 음원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혹은 우리를 사랑해주는 모든 '그녀'를 위한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잔나비 최정훈

이 곡을 만든 잔나비의 보컬이자 리더 최정훈은 위와 같이 말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곡은 '그녀를 위한 노래'고, 멜로디에서도 가사에서도 포근한 이미지의 '그녀'가 뚜렷하게 그려질 정도로 색깔이 짙은 곡이다. 삼청동에서 처음 들었을 땐 멜로디와 보컬에 반했지만, 다시 들었을 땐 가사가 마음을 흔들었다. 결정적 단어 몇 개로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마음에 그려낸다는 게 놀라웠다.

신화 속에 나올 법한 신비로운 여성이 그려졌다
 
잔나비 잔나비 인스타그램 캡처

▲ 잔나비잔나비 인스타그램 캡처ⓒ 잔나비 인스타그램


닻, 무지개, 여전사. 

그렇게 길지도 않은 가사 속에는 신선한 단어들이 뿌려져있었다.     

"she is everything to me/ 지친 나를 감싸 안아줄 그대/ 나를 반겨줄 천사 같은 이름/ woo she

she 그 미소 위로 닻을 내리고/ 내 하루가 쉬어가고/ she 어떨까요 그대 없는 나는/ all of my life is you"


잔잔한 물위에서 닻을 내리고 쉬고 있는 배 한 척이 떠올랐다. 미소 위로 닻을 내렸으니 그녀의 미소는 한없이 넓고 반짝이는 수면을 닮았을 것이다. 

"무지개가 떨어진 곳을 알아/ 내일은 꼭 함께 가자는 그녀/ 내 손을 감싸 쥐는 용감한 여전사여/ woo she"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부분이다. 무지개가 떨어진 곳으로 이끌고 가는 여전사의 몸짓을 떠올리자 신화 속에 나올 법한 신비로운 여성이 그려졌다. 초반 가사에서 천사라는 단어가 나와서인지 개인적으로 순백의 고결한 여전사의 모습이 상상됐다.

이 곡의 가사를 읽으며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건, 당연해져버린 일상의 단어를 새롭게 보이게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단어와 단어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고, 개별의 단어 자체도 신선했다. 특히 여전사라는 단어가 꼭 시어처럼 보였다. '그녀'를 비유하는 세상의 수많은 단어들, 대부분 관용적으로 쓰여버리는 지루한 단어들을 이렇게 근사하게 피해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힙한 거, 쿨한 거 싫어요"라고 적힌 이들의 SNS 프로필 메시지는, 이들의 노래를 하나만 들어도 납득이 된다. 잔나비의 감성은 2019년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레트로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애매한, 무지개가 떨어진 어디쯤에 있을 법한 독특한 감성이다.

그들의 노래가 역주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는 건 힙해지고 쿨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제 나름대로 멋질 수 있다는 것과, 두 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꼭 쥐고 노래하는 보컬의 모습처럼 진지하고 낭만적이어도 세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잔나비 잔나비 'She' 뮤직비디오 캡처(원더케이)

▲ 잔나비ⓒ 잔나비 뮤직비디오 캡처

 
잔나비 잔나비 'She' 뮤직비디오 캡처(원더케이)

▲ 잔나비ⓒ 잔나비 뮤직비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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