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서핑 다이어리>의 한 장면

<죽도 서핑 다이어리>의 한 장면 ⓒ 전주영화제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기는 감독이 연출을 했다. 배우들 역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다. 장소는 서핑 명소 죽도해변이 자리한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모든 촬영은 그 주변에서만 했다. 엄격히 따지면 메이드 인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영화인 셈이다.
 
3일 오후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시월애> <푸른소금> 이현승 감독의 <죽도 서핑 다이어리>는 여러모로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영화다. 흥행 상업영화를 만들었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이현승 감독이 오랜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라는 특별함과 강원도의 면 단위 지역에서 만든 로컬영화라는 특이점이 있다.
 
상업영화로 잔뼈가 굵은 감독이 독립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눈길을 끄는 일인데, 지역주민들을 배우로 기용한 것도 파격이었다. 한국영화 중견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다.
 
서핑의 매력 

<죽도 서핑 다이어리>는 제목 그대로 서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중심축으로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파도가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서핑을 즐기러 뛰어나가는 12살 소녀 비주와 서퍼는 아니지만 도시에서 들어와 서핑에 매력을 느끼는 수정,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투기꾼들이 나타나는 모습 등등 서핑의 본거지 죽도해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상을 잔잔하게 담고 있다.
 
물론 영화의 핵심은 서핑이다. 파도가 있는 날이면 바다로 뛰어 나가는 사람들은 서핑의 즐거움과 매력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표현한다. 파도를 즐기는 과정에도 필요한 예의가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극영화로 담아냈다.

영화는 인간이 바다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도드라지게 묘사함과 동시에 서핑에 대한 영상 해설서 역할을 한다. 서핑을 주제로 한 다양한 해외영화들이 많고 단편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오직 서핑만을 주제로 한 첫 장편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죽도 서핑 다이어리> 감독과 배우들이 3일 전주영화제 상영에 앞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죽도 서핑 다이어리> 감독과 배우들이 3일 전주영화제 상영에 앞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전주영화제

  
이현승 감독은 "도시의 문화운동처럼 젊은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희망을 갖는 모습을 그렸다"고 영화에 담은 서핑을 설명했다. 실제로 이현승 감독은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이주한 감독은 2017년부터 그랑블루페스티벌이라는 영화제와 서핑이 만나는 문화행사를 시작했다.
 
감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지역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으로, 영화에는 감독의 시선으로 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죽도 서핑 다이어리>를 만들게 된 바탕에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영화와 지역영화(로컬 시네마)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서퍼 배우
 
 <죽도 서핑 다이어리>의 한 장면

<죽도 서핑 다이어리>의 한 장면 ⓒ 전주영화제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 모두가 서퍼들이라는 점이다. 오광록, 전혜빈, 정태우 등의 주연배우들은 오래전부터 양양을 오가며 서핑을 즐기고 있다. 3일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태우 배우는 "서퍼로서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파도를 만났을 때"라고 서핑의 매력을 전했다.

정 배우는 "3년 전부터 영화에 출연한 현지 주민 형님의 서핑 매장에 드나들다가 이현승 감독과 마주치게 됐다"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한 달간 양양에서 살았고, 이거 찍자고 하면 찍고 저거 찍자고 하면 그대로 따랐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수정 역으로 나오는 전혜진 배우도 파도를 즐기기 위해 양양을 찾는 서퍼다. 전혜진 배우는 "영화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서핑 배우고 죽도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평소 이현승 감독님을 존경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영화 촬영 과정에서 기다림이 많았다"면서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영화를 촬영할 수 없었기에 날씨 변화에 따라 기다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함께 했던 분들의 열정 덕분에 영화가 완성됐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오광록 배우도 역시 3년 전부터 서핑을 즐기고 있는 서퍼다. 현지 주민으로 영화배우가 된 출연자들은 동네 이야기가 나오니 다큐 같은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완성된 영화에 대해 놀라움을 나타냈다. 12살 소녀 비주와 서핑 매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실제 죽도해변의 큰 형님들이다.
 
이들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극영화라고 하지만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 배우들 역시 이날 상영에서 영화를 처음 본 것이었는데, 감독이 원하는 대로 조금씩 촬영했던 게 멋진 영화로 완성되었다며 현지 주민 배우들 모두 놀랍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컬 시네마의 가능성 
 
 3일 오후 전주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죽도 서핑 다이어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3일 오후 전주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죽도 서핑 다이어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 전주영화제

 
이날 상영에는 이천희 배우 등 다른 서퍼배우들도 함께 했고, 서핑을 배경으로 단편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도 함께해 이현승 감독의 독립영화 신작을 축하했다. 현지주민과 배우들은 영화 상영 후 축하 파티를 열고 영화의 완성을 자축했다. 박호산 배우는 영화 속 기타 연주 장면을 재현하며 흥을 돋웠다. 양양 서퍼들의 열정이 잠시 전주로 옮겨온 것이다.
 
<죽도 서핑 다이어리>는 전주영화제가 끝난 뒤 영화에 나오는 마을 야외극장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이현승 감독은 독립영화의 어려운 환경을 잘 알고 있는 탓에  개봉 관련해서는 신중한 입장으로 보였다.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 독립영화 제작과 배급의 구조 고민에 중견 감독이 동참했다는 점만으로도 영화가 갖는 의의는 커 보인다.

영화 제작 환경이 대도시에 집중된 현실에서 바닷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로컬 시네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죽도 서핑 다이어리>가 주는 무게감이다.  
죽도 서핑 다이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