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은 성평등 수업을 하는 초등학교를 찾았다. 제작진이 들른 교실의 풍경은 이랬다. 

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에서 열린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마주보고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같은 성 고정관념을 얘기하는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 남성 팀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성팀이 들었던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팀은 할 말이 바닥났는데, 여전히 여자아이들 팀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를 말한 여자아이들 팀.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 KBS

  
이어지는 두 번째 수업.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것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 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다. 하지만 만약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와 같이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성평등 교육, 고정관념 깨는 수업을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 KBS

  
최근 뉴스 속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건들을 자극적으로 포장하곤 한다. 아이들은 그런 기사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응 니 X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 무분별하게 혐오 표현이 나온다. 별다른 교육 없이 이런 표현을 습득하고,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선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다른 아이에게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까지 방송에서 지적됐다. 이런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 속 내용을 넘어선 '성평등' 교육이 '백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포르노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라는 표현이 어느 유튜버로부터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파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나온 초등학교 교사들은,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으로 성평등 교육을 통해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든 현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역할의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TV 리뷰] KBS <거리의 만찬> 어린이날 특집 '아이들이 묻습니다'편 ⓒ KBS


물론 이런 교육 몇 번으로 당장 아이들을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진다. 이들은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여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여전히 있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라는 식의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초등학교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졌기에,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을 한다는 소회 끝에 이들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성평등 수업 이후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린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운동을 덜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에 체육 활동을 덜하는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꾸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체육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예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말하던 선생님들의 관행에 대해 선생 스스로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선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 신록 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처럼 따뜻한 소식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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