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 박은옥의 콘서트가 열렸던 목요일 저녁.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로비는 왁자지껄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오늘의 주인공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음반과 정태춘의 책을 사는 사람들과 한쪽에 전시된 정태춘의 붓글을 감상하는 사람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공연 10분 전, 객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오랜만에 동창회를 찾아 따뜻했던 추억에 젖은 듯 행복해보였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공연에 다녀왔다.

환상의 콤비, 40년 세월을 노래하다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박은옥이 돌리는 뮤직박스 소리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맑고 아련한 오르골의 멜로디가 흐르고, 곧 기타와 함께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들뜬 객석과 달리 차분한 모습의 두 사람은 정태춘 1집 <시인의 마을>의 수록곡 '서해에서'를 첫 곡으로 선보였다.

키보드와 드럼을 비롯해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두 사람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 소리 등, 어느 하나 튀는 소리 없이 조화를 이뤘다. 특히 공연 내내 연주된 현악기의 소리는 따뜻하고 풍성하게 공연장을 채웠다. 

박은옥은 관객과 친근하게 소통하며 편안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는 "저희가 기타 튜닝을 할 때 기침도 하시고 이야기도 편하게 하시라"며 "제발 저희만 뚫어지게 보고 계시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객석에 소소한 웃음을 안겼다. 

두 사람의 호흡은 빛났다. 박은옥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에 정태춘의 거칠면서 무게감 있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상대가 노래할 땐 허밍을 넣어주면서 다정한 울림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태춘 1집, 박은옥 1집에 실린 노래부터 함께 발표한 노래, 가장 최근에 발매한 40주년 기념앨범의 수록곡까지 40년동안 쌓아온 노래들 17곡을 불렀다. 박은옥은 자신의 1집 <회상>에 실린 '윙윙윙'을 부르면서 "나의 딸, 딸의 딸이 이 노래를 듣게 될 줄 몰랐다"며 "다같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듣자"며 명랑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날 공연에서 이들은 신곡 '연남, 봄날'도 선보였다.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두 사람은 40년의 노래뿐 아니라 40년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연이어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는 대신, 한 곡을 시작할 때마다 그 곡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줬다.

"정태춘씨가 노래를 더 이상 안 만든다고 했을 때 놀랐다. 그럼 본인의 노래 말고, 나를 위해서 만들어주면 안되냐고 했는데 일언지하에 '안 돼' 하더라. 섭섭했다. 그렇게 8년이 지나고 어느날 '당신을 위해서 내가 노래를 만들어줘야겠다' 하더니 2달 동안 8곡을 만들어주더라." (박은옥)

툴툴대듯 재미있게 말하는 박은옥의 이야기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태춘 역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15년 전부터 노래를 안 만들기 시작하고, 사진찍고 가죽공예도 하고 한시공부를 하면서 붓글을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박은옥씨를 위해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만들었다. 성취감도 높았고 만족스러운 앨범이었다." (정태춘)

관객과 마음과 꿈을 나누다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이날 공연은 두 사람 외에도 국악인과 성악가(바리톤)와의 합동무대도 꾸며지며, 다양하고 풍성한 음악으로 채워졌다.

2부 첫곡은 '빈산'이었다. 박은옥은 이 곡에 대해 "정태춘씨는 이 노래를 비극적 서정의 백미라고 부르더라"며 소개했고, 정태춘은 "저의 경우는 어떤 풍경이 떠올라서 노래를 만드는데, 사실 그대로를 옮기는 건 아니고 꾸며내어 막 그린다. 빈산처럼 쓸쓸한 풍경을 만들고 내가 거기에 풍덩 빠진다. 그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듣는 분들도 함께 느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들려줬다. 

'시인의 마을'을 불렀을 때 객석의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어 '양단 몇 마름'을 선보였는데, 박은옥은 이 곡에 대해 "정태춘씨가 19살에 만든 노래인데, 어떻게 19살이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싶었다"며 "재수할 때 누나 집에 머물면서 그때 누나를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하더라"며 설명했다. 

이어서 '정동진3'을 정태춘은 독무대로 꾸몄다. 그는 이 노래를 소개하며 "8분짜리 노래라서 방송에서도 꺼려하는데 이걸 방송에서 부르게 해준 PD님이 이 자리에도 와 계신다"고 말했다. 정태춘은 8분 동안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는 박력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세계 곳곳의 바다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8분이었다. 

관객은 이들의 40년 노래를 따라가며 자신의 지난 세월을 추억하고 회상에 젖는 듯했다. '회상', '촛불', '북한강에서', '꿈꾸는 여행자', '떠나가는 배', '92년 장마, 종로에서' 등을 부른 두 사람은 마지막 곡으로 '수진리의 강'을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끝으로 박은옥은 미리 준비해온 편지를 관객에게 읽어주며 마음을 전했는데, 편지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여러분의 가수로서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객석은 오래도록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앙코르를 기다리는 긴 박수로 이어진 가운데, 잠시 후 다시 등장한 두 사람은 앙코르 곡으로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박은옥의 바람대로 관객은 떼창하며 함께 호흡했다. 앙코르까지 모두 끝나자 객석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이렇게 정태춘 박은옥의 40주년 공연은 막을 내렸다.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서울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사업단

정태춘 박은옥 날자오리배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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