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글로버 테세이라(사진 왼쪽)와 젊은 피 이온 쿠텔라바의 승부는 노련미의 승리로 끝이 났다.

베테랑 글로버 테세이라(사진 왼쪽)와 젊은 피 이온 쿠텔라바의 승부는 노련미의 승리로 끝이 났다. ⓒ UFC


'더 헐크(The Hulk)' 이온 쿠텔라바(25·몰도바)는 28일(한국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선라이즈 BB&T 센터서 있었던 'UFC on ESPN 3' 대회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선수 중 하나다. 성적도, 인지도도 아직 스타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특유의 개성을 앞세워 차츰차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쿠텔라바는 헐크라는 콘셉트를 밀고 있다. 헐크는 만화와 영화로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어벤져스>에서 괴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단순하지만 임팩트있는 색깔을 가지고 있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기 쉽다.

평소에는 점잖고 순박한 과학자 브루스 배너는 화가 나서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또 다른 존재로 돌변하고 만다.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닌 온몸의 근육과 골격이 커지면서 누구든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녹색의 엄청난 근육 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성격마저도 거칠어지는지라 그를 화나게 한 상대들은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물론 쿠텔라바는 변신형 캐릭터는 아니다. 시종일관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에서 나온 헐크와 닮아있다. 해당 영화 속 헐크는 더 이상 분노로 인해 변신하는 형태가 아닌 헐크의 외모와 배너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컴벳 삼보를 베이스로 하는 쿠텔라바는 계체량 현장에 종종 헐크 분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전신에 녹색 칠을 한 채 헐크처럼 포효한다. 분장을 하고 나오지 않을 때도 고함을 지르고 상대 선수의 사진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헐크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젊은 나이, 톡톡 튀는 개성,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 등 쿠텔라바는 차기 라이트헤비급 스타로서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 맞붙었던 글로버 테세이라(39·브라질)와의 승부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테세이라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면 체급 내에서 떠오르는 강자로 이미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였다.
 
완급조절 부족했던 쿠텔라바, 노련미에 잡아먹히다
 
경기가 시작되자 젊고 기동력이 좋은 선수답게 쿠텔라바는 경쾌하게 스텝을 밟으며 흐름을 잡아가려 했다.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하이킥을 날리고 부지런히 앞 손을 뻗었다. 이에 테세이라는 거리를 좁히며 더티복싱이나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쿠텔라바는 근접거리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는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싶으면 니킥공격을 통해 주도권을 가져갔다. 이어 쿠텔라바는 플라잉니킥에 백스핀블로우까지 다양한 기술을 구사했다.

쿠텔라바는 테세이라의 공격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카운터로 백스핀블로우를 선보였다. 이 공격으로 인해 테세이라는 결국 다운을 허용했다. 기회다 싶은 쿠텔라바는 계속해서 맹공을 펼쳤으나 아쉽게도 피니시에는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쿠텔라바의 체력이 상당 부분 소모됐다. 1라운드 넉아웃 승리경력이 많은 선수답게 화력을 몰아 쓰는 경향이 있어 완급조절에 부족한 약점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2라운드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경기가 흘러갔다. 쿠텔라바의 체력에서 약점을 본 테세이라는 과감하게 치고 들어갔다. 1라운드 때처럼 쿠텔라바의 강력한 기동력 발휘는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쿠텔라바의 움직임은 둔해지기 시작했다. 둘은 근거리에서 치고받는 경우가 잦아졌고 결국 진흙탕 싸움 형태로 시합이 전개됐다.

여전히 쿠텔라바가 유효타를 좀 더 맞췄으나 테세이라의 공격도 함께 들어갔다는 점에서 양상의 변화가 느껴졌다. 같이 치고받는 것만으로도 테세이라 입장에서는 역전의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결국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던 승부는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계속해서 테이크다운을 실패하던 테세이라는 지친 쿠텔라바를 뿌리치듯 밀쳐냈다.

쿠텔라바가 맥없이 옥타곤 바닥에 넘어졌고 테세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달려가 상위 포지션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파운딩 공격을 쏟아내는 듯하더니 쿠텔라바의 목 쪽에 두꺼운 팔을 집어넣으며 초크 공격을 시도했다.

잔뜩 지친 상태에서 쿠텔라바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고 결국은 테세이라가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성공시키며 대역전승을 거뒀다. 쿠텔라바가 완전체 헐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한판이었다.
 
 
  ‘카우보이’ 알렉스 올리베이라(사진 왼쪽)와 ‘플레티넘’ 마이크 페리

‘카우보이’ 알렉스 올리베이라(사진 왼쪽)와 ‘플레티넘’ 마이크 페리 ⓒ UFC

 
플레티넘 페리, 근성 앞세워 카우보이 잡아내다
 
앞선 웰터급 경기에서는 시합 전부터 이른바 댄스 배틀을 펼치며 관객들에게 큰 볼거리를 준 '카우보이' 알렉스 올리베이라(31·브라질)와 '플레티넘' 마이크 페리(27·미국), 둘의 뜨거운 승부도 있었다.

댄스 배틀시 좀 더 유연하고 리듬감이 돋보였던 올리베이라는 신장의 우위를 앞세워 경기를 풀어나가려는 모습이었다. 사이드스텝을 살려 원거리에서 포인트를 쌓아가다가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클린치 싸움이나 테이크다운을 노렸다. 반면 펀치가 주특기인 페리는 주먹을 낼 수 있는 거리를 원했다.

1라운드를 주도해 나간 쪽은 올리베이라였다. 펀치 위주의 페리에 비해 공격 옵션이 훨씬 다양한지라 자신의 거리를 만들어가며 인·아웃 파이팅을 통해 페리를 힘들게 했다.

올리베이라의 리듬감 있는 플레이는 2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올리베이라는 원거리에서 앞 손과 프런트킥을 내다가 상대의 허점이 보인다 싶으면 지체 없이 연타를 휘두르며 치고 들어갔다. 그는 영리하게 클린치 상황을 만들어내어 펀치와 엘보우를 짧고 예리하게 날렸다.

페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의 눈빛이 죽지 않았다. 호시탐탐 올리베이라의 허점을 노렸다. 일방적으로 흐름을 뺏긴 듯하다가도 들어오는 올리베이라에 좋은 타이밍의 카운터를 맞추는가 하면 2라운드 막판에는 상위 포지션을 빼앗아 파운딩 연타를 쏟아부었다.

그 가운데 문제가 생겼다. 킥을 차던 올리베이라가 발가락을 다친 것이다. 현지 카메라도 2라운드 종료 후 올리베이라의 다친 발가락 부분을 비춰줬다. 그러나 올리베이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도 근성을 끌어올리며 페리와 공방전을 펼쳤다. 하지만 발 쪽 부상으로 인해 스텝을 밟거나 킥을 차는 것은 물론 펀치를 낼 때 이동하는 발의 움직임에서도 어려움이 드러났다.

뜻밖의 부상으로 인해 올리베이라는 전체적 밸런스가 확 깨져버렸다. 애써 웃고 있었으나 당황스런 표정이 묻어났다. 이를 놓칠 리가 없는 페리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효타 싸움을 펼쳐나가며 점수 차이를 냈다.

적극적으로 넉아웃을 노리기보다는 혹시 모를 올리베이라의 한방을 의식해 무리수는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승부는 페리의 판정승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올리베이라 입장에서는 예상 밖 부상이 두고두고 한탄스러운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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