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이런 명대사가 등장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다. 열어서 꺼내기 전까지 무엇을 가질지 알 수 없다."

남들보다 조금 낮은 지능과 불편한 다리를 지닌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강한 의지를 지닌 어머니와 그를 사랑해주는 여자 제니를 만났다. 그렇기에 포레스트 검프는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극 중 포레스트 검프에게 비록 탄생이란 초콜릿은 쓰디쓴 맛이었을지 몰라도 이후 달콤한 초콜릿을 맛보며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인생의 페이지를 채워나갔다.

씁쓸함과 삶의 아이러니 보여주는 영화 <수성못>
 
 <수성못> 스틸컷

<수성못> 스틸컷ⓒ 인디스토리

   
하지만 이런 달콤한 순간은 포레스트 검프 같은 순수함과 노력만으로 모두에게 허락되는 게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상자에서 쓰디쓴 초콜릿만 뽑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러하기에 삶에는 아이러니가 있고 멜랑꼴리가 있다.

유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수성못>은 이런 삶의 블루, 우울한 순간을 젊은 청춘들을 통해 풀어낸 작품이다. 극 중 희정(이세영 분)은 수성못 오리배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구를 떠나 서울로 편입을 준비 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수성못 매표소에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희정은 꿈을 향한 열정을 불태운다.
 
반면 그녀와 맞닿아 있는 두 남자, 영목(김현준 분)과 오빠 희준(남태주 분)은 죽음과 더 가까운 인물들이다. 영목은 상담센터에서 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다시 한 번 집단자살 시도를 꿈꾼다. 희준은 희정과 달리 그리는 꿈도 살아가고 싶은 동력도 없다. 그는 희정에게 헛된 꿈을 그만 꾸라며 괴롭히고, 자신이 군대에 가지 않을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인생이 공정한 레이스라면 희정은 희준과 영목을 앞서 탄탄대로를 뛰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물은 희정의 앞길을 막는다.
 
희정은 자신이 잠깐 졸아버린 사이에 몰래 오리배에 탄 남자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그녀는 몰래 수성못에 구명조끼를 던지다 영목에게 발각되고, 공부하기도 바쁜 시간에 그를 따라 상담 업무를 돕게 된다. 여기에 집에서의 대우도 희정을 괴롭힌다. 어머니는 희정의 꿈을 무시한다. 열심히 사는 딸을 나무라고 게으른 아들만을 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희정의 편입시험 날이자 희준이 집단 자살을 위해 영목과 만나는 날이다.
 
 <수성못> 스틸컷

<수성못> 스틸컷ⓒ 인디스토리

 
아침부터 홀로 힘겹게 일어나 서울로 향한 희정은 지하철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폭행당한다. 반면 희준은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식탁에 올려둔 사과를 마주한다. 영목과 함께 집단 자살을 시도한 그는 자살에 실패하게 된다. 희정의 새벽과 희준의 새벽은 같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의 공기는 다르다. 희정은 마음 속 끓어오르는 열정과 달리 서늘한 공기를 느낀다. 반면 희준은 마음 속은 공허하지만 주변의 따뜻한 공기를 통해 억지로 삶을 연장하게 된다.
 
이런 삶의 아이러니는 작품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박씨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박씨는 바람 난 아내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는 아내 때문에 자신이 죽는 건 억울하단 생각에 더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박씨가 살기로 결심한 순간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삶의 동력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지닌 아이러니는 멜랑꼴리라는 장기적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을 가져온다. 다음에 소개할 영화 <브로큰>의 도입부가 그렇다.
  
밝은 미소의 소녀 스컹크가 마주한 불행한 날, 영화 <브로큰>
 
 <브로큰> 스틸컷

<브로큰> 스틸컷ⓒ 판씨네마(주)

 
영화 <브로큰>에는 주인공 소녀 스컹크(엘로이스 로렌스)가 태어나고 아버지 아치(팀 로스)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다. 화면 속 인물들은 웃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이는 이 영화가 지닌 근원적인 멜랑꼴리의 감정 때문이다.

극 중 스컹크는 당뇨병이 있어 시간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스컹크의 앞집에는 정신지체가 있지만 마음이 착한 청년 릭(로버트 엠스)의 가정인 버클리 가가 있다. 어느 날 스컹크는 이웃집의 남자 오스왈드(로리 키니어)가 릭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 순간은 스컹크에게 인생이 지닌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내가 죽은 뒤 자신을 고립시키고 성격이 괴팍해진 오스왈드는 수잔을 비롯한 세 딸을 키우고 있다. 첫째 딸 수잔은 호기심에 콘돔을 사고, 이를 발견한 오스왈드는 수잔을 추궁한다. 이에 수잔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이웃 릭과 섹스를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미성년자인 딸이 꼬드김을 당했다는 생각에 열이 받은 오스왈드는 릭을 폭행한다. 변호사인 아치는 이웃인 두 사람이 연관된 이 사건을 맡으려고 하지만 버클리는 오스왈드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스왈드에게 당할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스컹크는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피해자인 릭은 수잔 자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오스왈드의 위협에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가해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떵떵거리며 피해자는 방에 숨어 고통을 혼자 인내한다. 버클리는 이런 릭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이 문제가 있다며 릭을 몰아세운다. 이런 삶의 우울함은 스컹크의 사랑에서도 비롯된다. 스컹크는 학교 선생인 마이크(킬리언 머피)를 짝사랑한다. 그리고 제드(빌 밀러)라는 소년은 그녀를 좋아한다. 마이크에게는 카시아(자나 마자노빅)라는 애인이 있는데 그녀는 스컹크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이다. 헌데 카시아는 아치와 사랑에 빠져 마이크를 배신한다. 스컹크는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를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카시아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미워해 보기도 하고 마이크에게 다시 집에 와 달라고 부탁해 보기도 하지만 근원적인 우울의 감정은 가시질 않는다. 영화는 세 번의 순간을 통해 삶이 지닌 아이러니와 우울한 순간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스컹크의 당뇨병이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유년기를 보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뒤 생존과 관련된 병을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밝은 웃음과 넘치는 사랑에도 불구 불행한 운명과 맞닿아 있음을 조명한다.
  
 <브로큰> 스틸컷

<브로큰> 스틸컷ⓒ 판씨네마(주)

 
두 번째는 릭에게 가해진 오스왈드의 폭력이다. 그 가혹한 폭력 후 오스왈드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두려움에 떠는 릭에게 오히려 강해지라 말하는 버클리의 모습은 우울한 정서를 강화시킨다. 세 번째는 그녀가 좋아하는 마이크와 카시아의 행복한 모습을 망친 게 아버지 아치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법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스컹크는 알지만 자신을 둘러싼 삶의 우울 속 행복 중 하나였던 마이크와 카시아의 결별은 아이러니와 멜랑꼴리의 느낌을 심화시킨다.
 
어찌 보면 인생은 무엇을 뽑을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와 같다. 이 초콜릿 상자는 두근거리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불확실성 때문에 멜랑꼴리의 감정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마음에 품은 열정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고 그 좌절감이 주는 아이러니는 멜랑꼴리의 정서로 연결된다. 영화 <수성못>과 <브로큰>은 삶의 초년 단계인 20대 여성과 10대 소녀를 통해 삶이 지닌 아이러니와 멜랑꼴리를 무게감 있지만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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